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현부 Oct 30. 2023

결혼기념일 : 스물다섯 번째

특별한 날 : 사실 모든 날이 그러하다 : 해피엔딩


사람의 일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고,
언제 죽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게 인생이라지만...


2022년 7월26일 아침,

나는 아내를 만나러 중환자실로 갔다.


면회 시간보다 한참 일렀지만, 대기실은 사람들로 붐볐다. 슬프고 불길한 이야기들이 그림자처럼 오고 갔다. 환자 보호자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아내의 이름은 불리지 않았으면 했다.


"김형미 환자, 보호자분, 김형미 환자 보호자분"


줄을 서서 간호사를 따라갔다. 복도에서 방호복을 입고 비닐장갑을 끼고 마스크 끈을 귀 뒤로 넘겼다. 슬라이딩도어 넘어, 저기 멀리 아내가 보였다. 손을 두어 번 흔들었다. 나를 본 아내는 웃는 것인지 괴로워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기괴한 표정을 지었다.


"차라리 죽는 게 더 나을 것 같아. 너무 괴로워. 나 죽었으면 좋겠어."

아내는 말했다.



2022년 7월 25일 월요일

자전거사고

영어 캠프에 참여하는 작은 딸을 배웅한 후 아내와 나는 자전거를 타고 나왔다. 항상 산책하는 코스를 넘어 자전거 수리도 할 겸 좀 멀리까지 갔다. 조금을 기다려 수리를 마치고 항상 산책하는 코스로 다시 와서 언덕을 넘어 집으로 갔다.


내가 조금 빨리 오기는 했나 보다. 아내가 보이지 않았다. 자전거를 멈추고 숨을 고르며 물을 조금 마셨다. '무슨 일이 있나?' 자전거를 돌려 아내에게 갔다. 페달을 몇 번 밟지도 않았는데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 많이 다친 것 같아"


심각한 일이 벌어졌음을 직감했다. 왔던 길을 미친 듯이 달렸다. 내리막길 중간에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그 사이로 길 바닥에 앉아 있는 아내가 보였다.


아내의 왼쪽 얼굴은 아스팔트에 갈려 엉망이 되었고 얼굴에 엉긴 피는 바닥으로 흘렀다.


"나 너무 어지러워, 너무 아파, 나 많이 다친 거지?"


119에 전화를 했다. 그리고 앰뷸런스가 왔다. 출발하며 응급요원들은 다급히 병원을 알아보았다.


"아주대병원 응급실에서는 오지 말라는데요?" 한 응급요원이 말했다.

"뭔 소리야! 가! 일단 가!" 다른 한 응급요원이 나무라듯 말했다.


응급실에 도착했다. 휠체어를 타야 하는데 아내는 어지러워 몸을 주체하지 못했다. 아내를 조심스럽게 안아 옮겨 휠체어에 앉혔다. 절차에 따라 코로나 검사를 하고 응급실 대기실에서 기다렸다.


안내하는 사람이 다가와 아내를 한번 본 후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많이 기다려야 할 수도 있으니 급하면 다른 병원으로 옮기셔도 됩니다."


아내의 상태를 보고도 저런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아니 이 상태를 보고도 그런 말을 합니까? 머리랑 얼굴이라 다쳐서 어지럽다고 합니다! 너무 어지럽다고 토할 것 같다고 합니다! 상태를 보세요!"


지켜보던 다른 안내하는 사람이 심각한 상태 같으니 바로 들어가자고 했다. 응급실에 들어가 아내는 침대에 누웠다. 의사를 기다렸다. 몇 번이고 담당간호사에게 가서 아내의 상태를 이야기했고 의사가 언제 오는지 물었다. 한참을 지나 응급실 담당의사가 왔고 아내는 엑스레이, CT촬영을 하러 갔다.


대기실에서 기다렸다. 형미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떻게 전화했지?' 환자 도와주는 분이셨다. 환자가 보호자 보고 싶어 한다며 CT 찍기 전에 잠시 나올 테니 CT 촬영실 문 앞으로 오라고 했다. 아내가 누워있는 침대가 나왔다. 아내의 손을 꼭 잡았다. 아내는 눈물을 흘렸다.


환자 도우미분이 말했다.

"환자가 남편 보고 싶다고 그래서..."

"감사합니다."


아내는 다시 CT촬영실로 들어갔다.


뇌출혈

뇌출혈이라고 했다. 출혈량이 적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어떻게 될지 모르니 24시간 환자를 지켜볼 수 있는 중환자실에 가야 한다고 했다. 나는 알았다고 했다. 응급실에 도착한 지 8시간이 지나서야 아내는 중환자실로 갔다. 나는 중환자실 입구까지만 같이 갈 수 있었다. 아내에게 괜찮을 거라고 말했다. 눈물이 고인채로 아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간호사들이 아내 침대를 끌어갔고 나는 손을 흔들었다.


면회시간 10분, 9시 40분에서 9시 50분. 담당교수 상담할 수도 있으니 8시까지는 와서 기다리라고 했다.



2022년 7월 26일 화요일


집에 와서 보니 새벽 1시 정도였다. 이런저런 준비를 하고 씻고 내일 일정을 확인을 하니 새벽 3시가 되었다. 잠은 오지 않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6시 30분, 다시 씻고 짐을 챙겨서 병원으로 갔다. 7시 30분, 대기실에서 기다렸다. 회진 오기로 했던 담당교수는 오지 않았다. 면회시간이 되어 아내를 만났다.


아내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아내는 너무 괴롭다고, 너무 어지럽다고, 너무 아프다고 했다. 아내에게 괜찮아질 거라고 했다. 고개를 돌려 심호흡을 하고 조금만 참자고 했다. 괜찮아질 거라고... 아내는 알았다고 했다. 간호사가 돌면서 면회를 마무리하라고 했다.


"내일 다시 올게. 조금만 참아. 다 괜찮아질 거니까. 보고 싶어도 조금만 참아."


웃으면 말했다. 아내는 대답 대신 눈물을 흘렸다. 손을 꼭 쥐었다. 나오는 길에 고개를 돌려 아내를 보았다. 아내는 계속 나를 보고 있었다. 나오는 길에 간호사는 담당교수가 지금 회진 온다며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대기실에서 기다렸다. 전공의가 나를 불렀다. 담당교수를 만났다. 의식이 없어지거나 다른 증상이 보이지 않아 다행이라고 했다. 그래도 모르니 다시 CT를 찍고 경과를 지켜보자고 했다. 나는 알았다고 했다. 그리고 집으로 왔다.


하루는 더디게 흘렀다. 뭘 했는지 뭘 해야 하는지 모르는 채로 하루가 흘렀다.



2022년 7월 27일 수요일


다행인 소식

아침 7시 30분, 중환자 대기실로 갔다. 이번에 회진하는 담당교수를 먼저 만날 수 있었다. 몇 시간 전에 찍은 CT에는 더 이상의 출혈은 없다고 했다. 그래서 머리를 열어야 하는 수술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어지러운 건, 뇌가 충격을 받아서 그런건데 안정되려면 적어도 2~3주 정도가 걸린다고 다른 검사를 좀 해봐야겠다고 했다. 그리고 광대뼈 금이 간 건 붓기가 가라앉아야 알 수 있겠다고 했고 찢어진 부분은 성형외과에 의뢰하겠다고 했다. 나는 몇 가지 질문은 했고 담당교수는 나름 열심히 대답해 주었다. 마음이 좀 가벼워졌다.


면회시간이 되어 아내를 만났다. 아내는 여전히 괴로워했지만 담당교수와 나누었던 이야기를 듣고 조금은 안도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여기는(중환자실은) 지옥 같다고 했다. 24시간 밝은 형광등 아래, 의식 있는 것이 더 괴롭다고 했다. 이제 정말 조그만 참으라고 했다. 이제 정말 괜찮아질 거라고 했다. 아내는 알았다고 했지만 눈가는 금세 촉촉해졌다. 손을 꼭 쥐었다. 나오는 길에 고개를 돌려 아내를 보았다. 아내는 여전히 나를 보고 있었다.


뭘 했는지 뭘 해야 하는지 모르는 채로 다시 하루가 흘렀다.



2022년 7월 28일 목요일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아침 8시, 다시 대기실로 갔다. 이번에도 다행스럽게 회진 담당교수를 먼저 만날 수 있었다. 일반병실로 가도 되겠다고 했다. 너무나 감사하다고 했다. 회진상담을 마치고 아내를 만났다. 아내는 여전히 아파했고 어지러워했으며 또 괴로워했다. 일반병실로 오늘 옮길 거라고 했다. 아내는 다행이라고 했다. 나도 그랬다. 면회시간은 금방 끝이 났다. 아내에게 조금 있다 보자고 했다. 아내는 나를 보며 웃었다.


오전부터 기다렸지만, 오후 5시가 되어서야 일반병실로 올 수 있었다. 24시간 긴박하게 돌아가던 중환자실에서 일반병동으로 오니 아내는 이제 좀 살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어지러움 증상과 토할 것 같은 느낌으로 여전히 아주 힘들어했다. 이석증 치료를 하려 다녀왔다. 저녁으로 나온 야채죽을 약간 먹고 한참을 힘들어했다.


병원이라 9시가 되니 소등을 했다. 뒤척이며 힘들어하던 아내가 어느새 잠이 들었나 보다. 고로롱 아내의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야 쉬는구나’ 마음이 놓였다. 그 소리가 참 고마웠다. 그 소리를 들으며 나도 깜박 잠이 들었다.


밤이 지나는 동안 간호사들은 수액 확인을 위해, 약을 주사하기 위해 몇 번을 다녀갔다.



2022년 7월 29일 금요일


일반병실에서의 첫날

정신을 차려보니 아침이 되었다. 아내도 일어났다. 표정이 한결 편해졌다. 어지러움도 좀 좋아졌다고 했다. 모두 덕분이었다. 감사했다. 그동안 밀렸던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약간의 농담도 하며 약간은 웃기도 했다.


아침 죽이 나왔다. 아내가 아침을 시작하는 것을 보고 나는 샌드위치랑 커피를 사 와서 같이 먹었다. 아내는 어제보다 먹기다 편하다며 죽에 김가루를 뿌려 먹었다. 다 먹은 식판을 치우다 옆에 있던 커피를 바닥으로 쏟았다. 아내에게 핀잔을 들었다. 오랜만에 듣는 아내의 핀잔이었다. 미소가 지어졌다.


다시 커피를 사러 간 사이에 담당교수 회진을 왔다고 했다. 환자 전반적인 상태나 정신상태를 보면 CT검사나 MRI검사는 아직 필요 없다고 했다. 얼굴에 금이 간 건 한 달 이상 걸리거라고 경과를 보자고 하고 이석증 역시 물리치료와 약물치료를 병행하면 좋아질 거라고 했다. 큰 일 아니라는 듯 이야기하는 담당주치의의 말이 약간은 야속하고 불안했지만 오히려 감사하게 느껴졌다.


아내를 휠체어에 태우고 치료와 검사를 위해 여기저기 다녔다. 아내는 괜찮아하기도 힘들어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같이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감사했다. 수액이 잔뜩 걸린 링거를 끌고 화장실 앞까지 가서 기다리는 것도 감사했고 괴로워할 때 건낼 수 있는 손이 있는 것도 감사했다. 그런데 하루, 이틀 지나며 처음 일반병실에 왔을 때 보다 아내는 더 괴로워했는데, 진통제 때문이었다. 처음 일반병실에 왔을 때는 강한 진통제가 많이 투약된 상태였고 조금씩 줄여나가면서 통증이 더 느껴져 더 괴로워했던 것이다.


그래도 하루하루가 지나며 조금씩은 좋아지는 것 같으니 참으로 다행이었다.



2022년 8월 2일 화요일


퇴원처방

어제 아침을 먹고 한참을 지나 회진 온 담당교수는 이제 집에서 치료하는 것이 환자에게 더 나을 수도 있겠다고 했다. 오늘 CT를 찍어보고 결정하자고 했다. 점심을 먹고 CT를 찍었다. 병실에 있는데 간호사선생님이 오셔서 퇴원처방이 내려왔다고 내일은 퇴원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조금 있으니 전공의가 와서 처음 찍었던 CT사진과 오늘 찍은 CT사진을 비교하면서 피가 여전히 뇌에 있기는 하지만 많이 줄어들었다고 나머지는 시간이 필요한 거라고 했다. 아내는 여전히 머리가 많이 아프고 울렁거림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었지만 퇴원해도 될 정도이니 감사할 따름이다.


아내가 말했다.

"나 때문에 고생이다."


아내에게 말했다.

“고생 하.나.도. 아.니.다.”


지난 화요일 면회를 하기 위해 중환자실 문 앞에서 아내를 기다렸다. 문이 열리고 저기 아내가 보였다. 마음을 가다듬고 심호흡을 한 뒤 아내를 만났다. 삶과 죽음의 고비를 지나는 사람을 만나는 10분은 너무나 비현실적이었다.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 손을 한번 더 잡고 작별을 해야 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같이라도 있을 수 있으면 좋겠다’


퇴원을 위해 짐을 챙겼다. 퇴원 수속을 했다. 그리고 집으로 갔다. 병원에서 나오는 길에 백미러로 병원을 보았다. 묘한 느낌이 들었다.


같이라도 있을 수 있다면 그것은, 정말로 하.나.도. 고생이 아.니.다.



2022년 10월 31일

스물네번째 결혼기념일

아내는 퇴원을 했고 조금씩 나아져 결혼기념일을 함께 맞이할 수 있었다. 꽃을 들고 동네음식점 앞에서 아내를 기다렸다. 아내와 함께 저녁을 먹고 일찍 집으로 왔다.



2023년 10월 31일

스물다섯번째 결혼기념일

같이 있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분에 넘치게 감사하고 또 특별하다.


사실 모든 하루하루가 그러하다.



아내 사고때부터 퇴원때까지 경과를 지인들에 전한 편지


2022년 7월 27일


잘 지내고 계시죠?^^

가족 모두 건강하게 지내고 있기를 바래요.


그래도 우리 패밀리는 알고 계셔야 할 듯해서요.


놀래지 마시고…


형미가 많이 다쳤습니다.


월요일 광교호수 자전거 도로 내리막 길에서 내려오다가

쓰고 있던 모자가 날아가려고 해서 잡으려고  

자전거 핸들에서 손을 놓는 순간, 중심을 잃고 아스팔트 바닥에 머리를 부딪혔습니다.


사고 당시 나는 앞서 가 있는 상태라 사고를 보지 못했고

먼저 가서 기다리다가 오지 않아 다시 돌아가는 길에 형미 전화를 받았는데

가서 보니 머리는 붇고 얼굴 갈리고 코에서는 피가 나는 상태였는데

혼자 넘어져서 당황하고 무서워하면서 머리가 아프다고 어지럽다고 하더라구요.

바로 119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로 가서 ct를 찍어 보니 뇌출혈이 있다고 신경외과 의사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머리를 열어야 할 만큼 많지는 않다고 경과를 지켜보자고 그리고 24시간 경과를 지켜볼 수 있는 중환자실로 옮긴다고 했죠.


그렇게 기다려 중환자실로 와서 경과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면회는 하루에 한번 오전에 10분만 가능하네요.

어제 오늘 다녀왔습니다.

다행이 더 이상 출혈은 없는데 머리는 너무 아프고 계속 어지럽다고 하네요.

어지러움 증상때문에 음식은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있어요.

오늘은 이석증때문에 그럴수도 있다고 이비인후과 콜 해둔 상태이구요.

뇌가 한번 흔들리면 이런 증상은 꾀 오래 간다고 합니다.

얼굴의 상처는 왼쪽 눈 위쪽과 광대에 있는데 골절이 있어 나중에 수술해야 한다고 하네요.


당황스럽고 무거운 소식이라 전하면서도 마음이 어렵네요.


뇌에 이상이 없도록, 어지러움 증상이 호전되도록, 후유증이 없도록…

같이 기도해 주세요.


새삼 느끼네요.  

우리는 언제 죽어도 이상할것 없는 존재라는 것을  

그래서 하루 하루 지내는 일상과 즐거운 마음으로 만나는 사람들이 너무나 소중한 것을


항상 고마워요. Luv U



2022년 7월 28일


오늘 형미 면회갔다 왔습니다.

다행이 상태는 더 나빠지지 않았구요.


어지럽고 구토가 나오는 건 뇌충격이랑 이석증때문에 그렇다고 합니다. 의식은 또렷해서 일반병실로 가서 지켜보자고 했구요. 일반병실에 자리가 생겨 오늘 오후에 일반병실로 옮기려 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어제보다 괜찮아 보였는데, 형미는 여전히 너무 괴롭다고 하네요. 시간이 지나야 하는 문제인것 같습니다.


일반병실로 옮기면 제가 옆에서 계속 같이 있을거라 마음은 조금 편합니다.


소식 듣고 놀래셨을텐데 죄송하고 또 기도 해 주셔서 감사해요.


일반 병실로 옮겨서 또 소식 전할께요.


고맙습니다^^



2022년 7월 29일 목요일 오전 9시


형미 오늘 상태는 어제보다 훨씬 더 좋아졌습니다. 감사합니다.


어제 오후 5시경, 형미는 중환자실에서 신경외과 일반병동으로 옮겨왔습니다.


24시간 긴박하게 돌아가던 중환자실에서 일반병동으로 오니 형미는 이제 좀 살 것 같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석증 치료후라 어지러움 증상과 토할것 같은 느낌이 심히 여전히 힘들어 했습니다. 저녁으로 나온 야채죽을 약간 먹고 한참을 힘들어 했습니다.  


병원이라 9시가 되니 소등을 했습니다. 뒤척이며 힘들어 하던 형미가 어느새 잠이 들었나 봅니다. 고로롱 형미 코고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형미가 이제야 쉬는 구나’ 마음이 놓였습니다. 그 소리가 참 고맙습니다. 그 소리를 들으며 저도 깜박 잠이 들었습니다.  


밤이 지나는 동안 간호사선생님이 수액 확인을, 약을 주사하기 위해 몇번을 다녀갔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아침이 되었습니다. 형미도 일어났습니다. 표정이 한결 편해졌습니다. 어지러움도 덜 해 졌다고 하네요.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그 동안 밀렸던 이런 저런 이야기도 했습니다. 약간의 농담도 하며 약간은 웃기도 했습니다.


아침 야채죽이 나왔습니다. 형미가 아침을 시작하는 것을 보고 저는 샌드위치랑 커피를 사와서 같이 먹었습니다. 형미는 어제보다 먹기다 편하다며 야채죽에 김가루를 뿌려 먹었습니다. 먹은 식판을 지우다 옆에 있던 커피를 바닥으로 쏟았습니다. 괜찮습니다. 이미 다 식은 커피라 바닥만 더러워졌습니다.


다시 커피를 사러 간 사이에 담당주치의 회진을 왔다고 합니다. 환자 전반적인 상태나 정신상태를 보면 ct검사나 mri검사는 아직 필요없다고 합니다. 얼굴에 금이간 건 한달 이상 걸리거라고 경과를 보자고 하고 이석증 역시 치료하고 약물치료하면 좋아질 거라고 합니다. 큰 일 아니라는 듯 이야기하는 의사선생님의 말이 약간은 야속하고 불안하지만 오히려 감사하게 느껴집니다.


그동안 마음이 힘들고 무거운 소식을 전해드려 죄송한 마음입니다.

하지만 하루 하루 좋아지는 형미의 상태로 인해 감사합니다.

덕분입니다.


오늘도 하루 평안하고 무탈한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22년 8월 1일 오후 4시


퇴원해도 된다는 처방이 내려졌습니다.

염려해 주시고 기도해 주신 덕분입니다.

감사드립니다.


긴박했던 일주일이 일년과도 같이 느껴져졌던 시간입니다.


아주대 병원앞을 참 자주 지나 다녔는데 형미랑 병원에 같이 있으면서 ‘이 곳은 참 슬픈 곳이구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형미는 뇌 충격때문에 그리고 이석증때문에 너무나 힘들어 했습니다. 다행히 이석증은 아주 많이 좋아졌지만 머리가 아프고 속이 울러거리는 증상은 지속되었습니다. 일반 병실로 와서 잠시 괜찮은 듯 보였던 것은 강한 진통제 때문이었습니다. 약 기운이 떨어지면 너무나 힘들어 했고 다시 진통제를 맞으며 잠이 들었습니다. 먹은 것이 없는 터라 울렁거림은 더 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목요일이 지나고 금요일이 지나고 토요일이 지났습니다.


토요일이 되면서 형미는 더 괴로워했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해 미안하지만 그래도 옆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길고 긴 토요일이 지나고 더 길고 긴 주일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월요일 아침이 되었습니다.


아침을 먹고 한참을 기다리니 담당교수 회진시간이 되었습니다. 회복되기 위해서는 꽤 긴 시간이 필요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적어도 6주 정도는 걸린다고 합니다. 그래도 병원에 있는 것 보다는 집에 있는 것이 회복에 더 좋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ct를 찍어 보고 퇴원여부를 정하자고 했습니다.


점심을 먹고 ct를 찍었습니다. 간호사 선생님이 퇴원 처방이 내려왔다고 했습니다. 내일 퇴원하자고 합니다. 전공의 선생님이 와서 대략적인 설명을 해 줬고 처음으로 형미 ct 사진을 보았습니다. 피가 뇌 안에 여전히 있기는 하지만 많이 줄어 들었습니다. 나머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아직 머리도 많이 아프고 울렁거림 때문에 괴롭지만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괴로워하던 형미가 어제 저에게 말했습니다.  

“나 때문에 고생이다”  


형미에게 말했습니다.

“고생 하.나.도. 아.니.다.”


지난 화요일 면회를 하기 위해 중환자실 문 앞에서 형미를 기다렸습니다. 문이 열리고 저기 형미가 보였습니다. 마음을 가다듬고 심호흡을 한 뒤 형미를 만났습니다. 삶과 죽음의 고비를 지나는 사람을 만나는 10분은 너무나 비현실적입니다.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 손을 한번 더 잡고 작별을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같이라도 있을 수 있으면 좋겠다’


염려와 기도 덕분에 일반 병실에서 같이 있게 되었습니다. 이 또한 비현실적인 시간입니다. 아픔과 괴로움에서 벗어나 완치가 되기 위해서는 많이 시간이 걸리겠지만 감사한 날들이 될 것 같습니다.


계속 머리 아프고, 토할 것 같고 울렁거려 먹지 못해 기운이 없어 괴롭지만, 경과를 잘 지켜보고 지내다 보면 좋아질 거라 생각합니다.


그간 무거운 소식 전해 드려 죄송하고 조금이라도 가벼운 소식 전해 드릴 수 있어 감사합니다.


덕분입니다.


오늘도 평안하고 무탈한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김현부 드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