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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부 Feb 25. 2024

난 할 수 있다. 다시 다짐한다.

나의 다짐. 2024년 2월 25일 일요일, 날씨 : 나쁘지 않음

오늘, 일요일, 늦지도 이르지도 않게 일어나 아침을 먹었다. 아침을 먹고 난 후 냥이들 화장실을 치우고 청소기를 돌렸다. 냥이 털과 먼지는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다. 냥이들 털을 밀어볼까 생각을 해 봤는데 냥이들 옷값과 난방비가 겁이 나서 그냥 몸으로 때우기로 했다. 청소기 먼지통은 금방 냥이털과 먼지로 채워졌다. 청소기를 청소하는 청소기청소기에 청소기를 넣고 먼지통을 비우고 다른 배터리를 끼운 후 청소를 하다만 아이들 방과 부엌을 청소했다. 그리고 더 이상 두면 안 될 것 같은, 묶는 손잡이까지 가득 찬 20리터 종량제 봉투 2개와 박스 가득한 재활용 쓰레기를 큰 아이와 함께 처리를 했다. 아파트 주민 아저씨도 아이를 데리고 왔는데 그 아이의 표정이 우리 집 아이와 너무나 똑같았다. 표정을 보아하니, MZ세대는 분리수거를 사랑하는 것이 분명했다. 지구의 앞날이 밝아 보였다.


그동안 아내는 친구의, 지인의 아들 결혼식 축가를 위해 외출 준비를 했다. 기분 좋은 표정이다. 화장이 아주 잘 먹었다. 그리고 새로 산 헤어 드라이기가 말아 준 커브 역시 아주 우아했다. 투 스텝으로 외출하는 아내를 배웅하고 설거지를 했다. 아이가 점심을 언제 먹냐 물었다. 점심을 준비했다.


점심은 까르보나라 파스타이다. 만들기도 간단하고 맛도 좋은 착한 파스타이다. 마늘 한 줌 수돗물에 씻어 끝을 다듬고 얇게 썰어 밥공기에 담아 두었다. 어제 이마트에서 사 둔 긴 훈제 통삼겹살 2/3는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르고 남은 1/3은 냉동실에 넣어 두었다. 통삼겹살을 가르는 칼날이 무디게 느껴졌다. 칼을 갈고 싶었지만, 점심 차리다 뭐 하냐 핀잔을 들을 것이 분명하기에 칼은 나중에 갈기로 했다. 소금과 올리브이파리를 넣은 물이 끓기 시작했다. 파스타면 400g을 끓는 물에 넣고 9분 타이머를 맞추었다.


큰 후라이팬을 중불에 달구고 올리브기름을 넉넉하게 부었다. 페파론치노를 넉넉하게 넣고 썰어둔 마늘 한 공기를 후라이팬에 부었다. 촤악하는 소리와 함께 마늘향이 올라왔다. 언제 맡아도 좋은 냄새다. 실리콘 주걱으로 마늘을 이리저리 골고루 섞었다. 마늘이 약간 노릇해지기 시작해 잘라둔 훈제 통삼겹살을 넣었다. 멋진 냄새다. 파스타면이 붙어 버리면 아주 곤란해지니 끓고 있는 파스타면을 이리저리 저어 주었다. 면수 간을 보았다. 약간 짜서 나중에 조금만 넣어야겠다 생각했다.


계란 4개를 꺼내었다. 계란을 싱크대 모서리에 쳐서 손에 올리면 노른자는 남고 흰자는 손가락사이로 빠져나간다. 처음엔 노른자만 빠져나가 황당과 당황사이를 오가기도 했다. 노른자를 중간크기의 보울에 담아두고 마늘과 훈제 통 삼겹살을 한번 저어 주었다. 노른자위에 파마산 치즈를 듬뿍 올리고 후추도 아주 넉넉하게 갈아 올렸다. 몇 달 전 알리에서 산 전동후추그라인더는 평생 내가 잘한 일 중에 손에 꼽을 만한 일이라고 아내가 칭찬해 주어,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른다!


9분 타이머 알람이 울렸다. 파스타면을 건져 페파론치노, 마늘, 훈제 통삼겹살이 끓고 있는 후라이팬에 부었다. 촤아~악 소리가 났다. 바질후레이크를 뿌리고 이리저리 섞어주었다. 면수 몇 국자를 후라이팬에 부었다. 후라이팬 불을 끄고 계란노른자 소스를 잘 섞어 후라이팬에 골고루 뿌리며 섞어주었다. 꾸덕꾸덕해지면 면수를 부어야 하지만 면수가 좀 짜서 미지근한 물을 부어주었다. 계란 노른자 소스와 미지근한 물이 만나 아이보리색 소스가 만들어졌다. 면 한가닥을 올려 맛을 보고 이번엔 면수 한 국자를 넣었다. 까르보나라가 완성되었다.


파스타 접시에 파스타를 담았다. 흰색 파스타 그릇은 역시 다이소다. 파마산치즈를 좀 더 뿌리고 후주도 좀 더 뿌렸다. 할라피뇨피클을 조그만 종지에 담고 아이를 불렀다. 이제 2캔 밖에 남지 않은 스프라이트 하나를 따서 2컵으로 만들었다. 아이는 맛있다고 했다. 먹어보니 당연히 그래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가 해주었던 음식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며 8년 전에 시작한 까르보나라 파스타, 아내도 좋아하고 나도 좋아한다. 다행이다.


점심을 먹는 동안 아이는 산책을 가자고 했다. 원래 난, 점심 먹고 칼을 갈 계획이었지만 그렇게 하자고 했다. 그렇게 하는게 좋을 것이라는 것을 나는 선험적으로 알고 있다. 점심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산책을 갔다. 뚜벅뚜벅 뚜벅이 둘이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쓰잘데 없는 이야기를 했다. 별것 아닌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를 하다 보면 조금은 별것인 그리고 약간은 중요한 이야기가 나오고, 조금은 별것인 그리고 약간은 중요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나름 중요한 이야기를 하게 된다.


아이는 지금 다니는 직장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왕복 4시간 출퇴근 시간도 힘들고, 하는 일도 자기랑 맞지 않는다고 했다. 사실 아직 직장은 아니고 인턴기간이다. 원래 3개월 인턴을 하기로 했는데 대표님이 정직원으로 채용할 확신이 서지 않는다며 인턴기간을 3개월 더 연장했는데 이제 그 3개월이 거의 다 되어 다시 정직원으로 채용할지 아니면 채용하지 않을지 결정할 시간이 와서 불안한 모양이다. 확실하지 않은 고용은 사람을 불안하게 한다. 아이는 그 시간을 지나며 하지 않았으면 하는 경험을 하고 있다. 아이는 아이의 이야기를 했고 나는 나의 생각을 말했다.


둘이 이야기한다고 해서 채용이 되는 것도 안 되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는 나름 진지하게 이야기를 했다. 아이의 기분이 좋아졌냐고? 나는 내 아이가 아니니 그건 나도 모른다. 짐작만 할 뿐이다. 웃는 걸 보니 기분이 더 나빠진 건 아닌 듯하다. 아이들이 가끔 나에게 ‘사람 기분 나쁘게 하는 재주가 있다’고 했다. ’나도 그런 재주가 있어 다행이라 생각한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어떤 반응이 나올지 뻔하기 때문에 그 말은 차마 하지 않았다. 우리는 한 시간 반정도 산책로를 따라 걷다 집으로 왔다. 집에 와서 아이는 이런저런 일을 했고 나는 드디어 칼을 갈기 시작했다.


산책 전에 물에 넣어 둔 1000방짜리 숫돌을 꺼내어 칼을 갈았다. 스윽 사악, 스윽 사악. 무뎌진 칼날이 선다. 잡념이 사라지며 칼 가는 소리만 남는다. 정신수양이 분명하다. 3000방짜리 숫돌을 꺼내어 다시 칼을 간다. 스으윽 사크크악? 숫돌이 뭔가 이상하다. 너무 저렴한 숫돌을 산 것이 분명하다. 처음 몇 번은 잘 되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날을 날카롭게 세우지 못하는 듯했는데 오늘에서야 확실해졌다. 다시 1000방짜리에 칼을 다듬어 정리를 했다.


칼을 정리하고 있으니 아내가 돌아왔다. 표정이 밝다. 즐거웠던 모양이다. 이 정도면 하루를 괜찮게 마무리 할 수 있을 것 같다.


날이 어두워졌다. 특별히 할 일도 없어 테레비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아내가 말했다.

"할 일 없어?"

"응, 할 일 없어. 음… 있어도 안 할 거야. 아무것도 안 할 거야!"

"잘 났다!"

"땡큐"

"글이라도 적지?"

"싫은데"


그렇게 난 오늘 하루를 적게 되었다. 거부할 수 없는 뭔가가 아내에게 있다. 나는 좀 더 용기를 내어야 한다. 다음에는 반드시 듣지 않을 것이다.


"할 수 있지? 암만! 할 수 있고 말고!!"


난 다시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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