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지친 자, 모두 마제소바 앞으로
10년 지기는 언제 한 번 나한테 신신당부하듯이 "너는 철들지 않았으면 좋겠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을 듣고 나서 몇 년이 지난 뒤, 영원히 철들지 않을 것 같은 나는 철이 들었고 10년 지기 친구도 나름의 변화를 겪었다. 좋게 말하면 성숙해지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아주 반듯한 사회인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스스로도 내가 변했다고 느낄 때가 있는데, 바로 타인의 마음을 헤아릴 때였다. 나는 나를 "파도가 치는 사람"이라고 소개하는데, 그 말은 마음에 평정심이 존재하지 않다는 것이다. 무엇이 됐든 외부 자극이 받으면 마음이 요동치고 그 마음을 스스로 감당하지 못해 주변 사람들한테 다 말하고 다녔다. 나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는 타인에게 기대야 했고, 타인의 배려와 관용이 반드시 필요했다. 그게 어느 순간부터 타인이 나에게 시간을 내어주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고 미안해지고 조심해지는 순간, 나는 아 철들었다!라고 느꼈다.
철이 들었다고 했지, 마음이 요동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혼자서 이 마음을 달래야 했다. 마음처럼 일이 안 풀렸을 때, 개복치 신입사원이라 상사한테 한 소리 들었을 때, 사무실에서 내가 민폐만 끼치고 있는 것 같을 때 등등 하루에 한 번씩 멘탈 털리고 나면 이제 나는 종종 그냥 에키소바로 향한다. 가서 혼자 마제 소바랑 생맥주를 먹으면 그나마 진정이 된다.
그 날도, 하루종일 털린 뒤 에키소바를 갔다. 금요일 밤이었던 것 같은데, 나 포함해서 4-5명 정도 있었는데 모두 혼자였다. 일본 노래와 먹는 소리가 전부였다. 아무 말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각자의 방식으로 충전하고 있는 시간이라고 혼자 생각했다. 30분 동안 '함께' 밥 먹는 시간이 좋았다. 주제넘지만 우리 이렇게 밥먹고 함께 하며 또 내일을 살아가는 구나라고 생각했다. 애틋했다.
마음이 턱하고 막힐 때면, 에키소바를 떠올린다. 연신내 역 공사중이라 돌아가야 하는 번거로움(사실 겁나 귀찮음)이 있지만, 그 귀찮음을 뚫고 에키소바를 간다. 그저 바램이 있다면, 밤에는 조명이 조금 어두웠으면, 맥주가 아주 차가웠으면 좋겠다는 것...라는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의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