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리 Mar 30. 2021

그렇게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를 표현해야 하는 이유


나는 왜 글을 쓰기로 했을까?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한지는 오래되었다. 학생 때는 소설을 좋아했기 때문에 내 이야기를 바탕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하고 싶었다. 집안이 기울고 엄마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기고 아빠를 원망하던 한창 우울하던 시기였다. 소설을 읽으며 현실을 도피하면서도 언젠가는 내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위저드 베이커리>라는 소설을 고2 때 읽고 주인공이 처한 현실에 너무나도 공감이 되어 한참을 펑펑 울었다. 속이 시원하면서도 위로가 되는 기분이었다. 그 책을 읽고 언젠가 내가 소설을 쓴다면 그 첫 문장은 '언제 깨질지 모르는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다.'이 될 거라고 정해두었다. 하지만 생각하는 것과 글로 쓰는 것은 다른 문제였고 결국 이 첫 문장 이후로 글을 구상한 적도 써본 적도 없다.


 그 답답한 상황 속에서 글을 쓰면서 감정 소모를 하고 싶지 않았다. 이야기를 만드는 데는 에너지가 필요했고 그 당시는 무기력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속마음을 남에게 털어놓는 사람이 아니다. 내가 처한 상황이나 답답함을 누군가에게 말하기가 어려워 가벼운 주제의 이야기만 하거나 친구들의 말을 들었다. 내성적인 성격도 한 몫해서 아무에게도 내 답답함을 털어놓지 못했다.


 평소에는 잘 참았지만 가끔씩 참기 어려울 때가 있었다. 속이 터져버릴 거 같고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순간이 오면 가슴속에서 치밀어 오는 그것을 밖으로 꺼내고 싶었다. 하지만 누구에게 말할 것인가? 나와는 달리 평범한 가정에서 살아가는 친구들? 나보다 힘든 상황에 처해있는 엄마? 내 원망의 주된 원인이었던 아빠? 조금 친해진 학교 선생님? 청소년 심리 상담 센터까지 찾아봤지만 용기가 나질 않았고 결국 아무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었다. 그래서 빈 종이에 펜으로 몇 장이나 빼곡하게 내 안에 있는 감정을 터트렸다. 차마 남에게 보여줄 수 없는, 누군가를 원망하기도 하는, 말 그대로 감정의 배설 같은 내용이었다. 이렇게 글을 써 답답함을 털며 대학생이 되었다. 그 뒤로 과제나 리포트 외에 딱히 글을 써본 적은 없었다. 상황이 나아져 그때처럼 감정적으로 힘들지 않기도 했고 일에 치여 다른 걸 생각할 겨를이 없기도 했으며 딱히 글을 써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사회인이 되어 다니기 시작한 회사는 정말 힘들었다. 분명히 좋아하는 일이었지만 나 자신은 사라지고 있었다. 스스로는 판단을 내리지도 생각을 표현하지도 못했다. 회사에서 내가 가장 많이 했던 말은 아마 '네,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다시 하겠습니다.' 이 두 가지가 아니었을까? 그렇게 또다시 나는 표현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저 시키는 일에 대답하며 알겠다고 하고 다시 하겠다고 하며 그저 일을 하고 매출을 올리기 위해, 팀장의 커리어를 쌓는데 필요한 사람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게 일을 하다가 번아웃이 오고 결국 우울증까지 오게 되었을 때, 내 오랜 친구가 말했다. 



"내가 알던 예전에 너는 좋아하는 것도 많고 긍정적이고 즐거운 사람이었는데, 지금의 너는 자신을 잃어가고 있는 거 같아. 네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어. 너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게 어떨까?" 



 친구의 말을 듣자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그 당시에는 그저 힘들다는 생각 말고는 하는 게 없었다. 일이 힘들고 사람이 힘들고 좋아하던 취미도 흥미를 잃어버린 지 오래고 집에서는 그저 누워있고 타인이 잡은 약속이 있으면 일정에 맞춰 나가고 스스로 결정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살고 있었다. 결국 이 상태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고 몇 달 뒤 퇴사를 하게 되었다. 슬프게도 퇴사하는 순간까지 상사의 비위에 거슬리지 않게 또 내 감정과 생각은 표현하지 못했다.


 퇴사를 하고 드디어 나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생겼다. 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표현을 하지 않은 탓일까. 퇴사 후 몇 달이 지나도록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지금 하는 생각이 과연 온전한 나의 의지인지, 지금 세우고자 하는 목표가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인지 확신하지 못했고 방황했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나는 도대체 어떤 사람인 걸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무엇을 원하는 걸까?

이 질문의 답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그렇게 고민하며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도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누군가가 나에게 표현이 너무 부족하다고 했다. 말을 안 하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며 이런 식이면 나중에 가서 일을 할 때 힘들 수도 있다고 말했다. 살면서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포지션이었지만 인간관계에서 크게 트러블이 생긴 적도 없었고 대화하는데 어렵다고 느낀 적도 없었다. 오히려 사람들을 중재하는 입장이었다.


 갑자기 회사를 다닐 때를 상사가 나에게 말 좀 하라고 했던 게 생각났다. 답답하니 말 좀 하고 질문도 하라고 했는데 상사에게 무슨 말을 하면 부정적인 반응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나는 몇 번 말을 붙일 시도를 하다가 혼자 해결하거나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하고 항상 '네,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다시 하겠습니다.'라는 말만 하게 되었다. 그것이 문제였다. 좀 더 확실하게 내 생각과 의사를 표현했어야 하는 거였다. 내 상사는 딱히 토 달지 않는 나를 말 잘 듣는 부하직원이라고 생각하며 과할 정도의 일을 시켰고 못한다거나 안된다는 말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이렇게 표현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제대로 의사 표현을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은 자신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관심도 없는 것이다. 오해받지 않도록,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그리고 내 생각을 성장시킬 수 있도록 계속해서 표현해야 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생각과 의견을 표현하는 수단으로는 말과 글이 있다. 말은 빠른 피드백과 직접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내 상황에서는 어려웠다. 나는 생각 정리도 잘 안되고 말을 잘하는데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글은 말보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 직접적이고 빠른 피드백도 받을 수 없다. 하지만 생각을 하고 내용을 정리할 시간이 있어 더 밀도 깊은 내용을 표현하고 전달할 수 있다. 또한, 말과 달리 글을 기록된다. 언제든 다시 볼 수 있으니 내가 얼마나 발전하는지 전과는 다른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다. 생각을 정리하며 자신을 아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나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글을 선택했다.


 물론 글을 쓰는 것은 어렵고 힘이 들지만 글을 쓰면서 나 자신을 알아갈 수 있었다. 쓰는 동안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 생각이 발전하는 과정까지 보인다. 횡설수설하며 쓰더라도 다시 보며 내용을 정리하며 쓰게 된다. 그러다 보니 예전보다 말을 하거나 의견을 말할 때 자신감이 생겼다. 그전에는 머릿속에 생각만 많다 보니 그것을 꺼내거나 정리하기 전에 휘발되어 그래서 결론은?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이 뭐지? 이 상태가 되어 횡설수설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지금도 횡설수설하곤 하지만 한 번씩 글을 썼던 내용에 대해서는 전보다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다. 글을 쓰면서 나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다른 이들에게 내 생각을 전하면 그들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게 된다. 나에 대한 오해가 줄어들고 내 입장에 맞는 의견을 제시하며 나를 배려하게 된다.


 글을 쓰면서부터 다른 이를 중심으로 돌던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기 시작한다. 내가 느낀 것, 내 생각을 표현하니 아,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글을 쓸 때만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전보다 왜 이런 거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나라는 사람이 한층 선명해진다. 

이것이 글을 쓰며 나를 표현하고자 하는 이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