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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haler Jul 22. 2024

대표와 멱살 잡을 뻔 했던 썰

다들 한 번쯤 그런 상상하잖아요?

영혼까지 습기에 절여질 것 같은 어느 장마철 일요일 오후, 나무가 뿌리째 뽑혀도 이상하지 않을 비바람이 몰아치던 어젯밤 일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는 듯 새침한 하늘이 오랜만에 연한 코발트 빛을 띠고 있었다. 어제 유난히 일찍 눈이 감겨 오후 6시쯤에 누워 오늘 아침 6시에 일어난터라 컨디션이 평소보다 축축 늘어지고 있던 참이었고, 어떤 굳은 결심을 하지 않는다면 난 침대 위로 다시 몸을 던져 잠이나 잘 게 분명했다. 얼른 며칠 전 크림에서 배송받은 영롱한 새 운동화 한 켤레를 꺼내어 곧 동네 근린 공원에 나가게 될 나의 발을 끼워넣었다.


자전거를 타고 동네 공원으로 향했다. 뿌듯하게 두 바퀴정도 걷고 적당히 고양된 자존감을 쓰다듬어주며 공원을 빠져나가려는 찰나, 뒤에서 한 모자의 대화가 들려왔다. 아이 목소리는 귀여운 꼬꼬마였다.


“아이고~ 우리 OO이 목말라 죽겠단다. 얼른 집에 가자!”
“엄마, 내가 언제 목말라 죽겠다고 했어. 죽겠다고까지는 안했어~~“



아니, 저 나이대의 꼬마가 이렇게 분명하다 못해 당돌한 의사표현을 하는 게 가능하다고? 내가 저 나이때 할 수 있었던 분명한 의사표현은 쥬쥬의 집 사달라고 드러누워 울며 생떼쓰는 게 전부였던 거 같은데…?!

나도 모르게 배어나오는 미소와 함께 뒤를 슬며시 돌아봤고 문제의 발언을 내뱉은 꼬마는 머리와 티셔츠가 온통 땀에 젖어 누가 봐도 목마른 모습을 한 채 엄마 손을 붙잡고 아장아장 사랑스럽게 걸어오고 있었다. 한국 출산율을 0.78 에서 0.79 언저리로 올리는 데에 기여해볼까라는 생각을 5초쯤 한 뒤 고개를 가로저으며 곰곰히 생각했다. 과연 이 대화를 다 큰 성인들이 회사에서 주고 받는다면 어떤 분위기가 연출되었을까?


상황 #1

상사: (익살스레 웃으며) 아이고, 우리 은지씨가 목말라 죽겠단다. 얼른 미팅 끝냅시다!

은지: 아이, 팀장님 제가 언제 죽겠다고까지 했어요~ (장난 섞인 푸념과 함께 입을 삐죽거리며)


상황 #2

상사: (빈정대는 말투로) 아이고, 우리 은지씨가 목이 말라서 죽겠다고 하시네.. (쩝소리를 내며) 오늘은 여기서 미팅 끝냅시다!

은지: (웃음기 싹 가신 얼굴로 무뚝뚝하게) 팀장님, 전 죽겠다고까지 한 적 없습니다만.


같은 메시지라도 메신저와 비언어적 요소에 따라 전혀 다른 뉘앙스와 분위기가 형성된다. 귀여우니 모든 게 용서되는 꼬꼬마 아가가 아니고서야 사회 생활을 하는 우리 으른들은 필연적으로 말을 내뱉을 때 어휘와 어조, 그리고 표정과 제스처 등을 신경쓸 수 밖에 없으며, 이러한 요소들을 잘 컨트롤할 때 똑같이 아쉬운 소리를 해도 미운털 박히는 대신 입에 떡 하나를 물고 회의실을 퇴장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우리는 때때로 '감정'의 반려견이 되어 이리 저리 목줄에 휘둘리며 원치 않았던 인간관계에서의 마찰을 빚어내곤 한다. 어린 나이부터 사업을 시작했기에 태어나서 회사 생활을 해본 기간이 2년 정도 되는데 그 당시 회사 대표는 각종 쌍욕을 비롯해 자신의 감정을 여과없이 드러내기로 악명 높은 사람이었다. 그 대표 때문에 퇴사한 직원들이 한 트럭은 될 정도로 화려한 평판을 자랑했다. 이 회사에서 먼저 입사 제의를 받고 들어갔던 나는 그 당시 꽤 큰 대외 행사의 총괄을 맡고 있었고, 행사 전날 밤 대표의 문자 하나를 씹었다. 딱히 중요한 내용도 아니었고, 사실 그 행사를 준비하면서 부족한 인력 지원과 사사건건 참견 및 가스라이팅하는 대표의 피곤한 성격탓에 살아생전 처음으로 정신과 문턱을 넘을 뻔한 순간들이 여러차례 있었기에 나 또한 그 문자를 씹은 행동이 전혀 감정적이지 않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다음날 아침, 행사를 오픈하기 직전 마치 약이 오를대로 오른 투우장의 황소 마냥 화난 콧김을 뿜으며 스탭 사무실 문을 박차고 들어온 우리의 대표는 왜 자기 문자에 답을 안했냐며 팀원들이 보는 앞에서 내게 막말과 고함을 시전했다. 그 상황에서 나의 선택지는 두 개였다.


1) 같이 막말을 퍼부으며 그간 쌓인 분을 시원하게 풀고 나는 이 시간부로 퇴사할테니 행사는 알아서 잘 해보라며 짐싸서 퇴장

2) '염병하네' 라고 속으로 뇌까리며 아무말 않고 들어주기


가까스로 2번을 택했으나 오랜 행사 준비로 몸과 마음이 누더기가 된 나였기에 조금만 평정심을 잃었더라면 저항감 없이 1번을 택했을 것이다. 사실 정답은 없다. 미친개에겐 더 미친개가 되어주는 게 때론 효과가 있기도 한 법이니까.. 하지만 감정을 배제한 선택을 할 경우 덜 피곤한 삶을 살게 되는 건 분명한 것 같다. 내일도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온갖 감정들을 다스리며 한 주의 회사 생활을 시작할 모든 회사원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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