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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쓰는 이작가 Jul 10. 2018

한낮의 고독한 방에서 벌어진 일.

아마 생각한 거랑은 다르겠지만.

요즘의 한동안 나는 우울감에 좀 시달렸다.

특별한 일이 있던 것은 아니고, 마감 하나가 끝나고 결과가 개운치 못한 데다 오늘이 어느새 7월이란 것에 소리없이 소스라치기도 했고, 김빠진 콜라가 돼버린 또 하나의 시나리오가 마감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 의욕상실의 작가를 재기불능의 피겨스케이팅 선수 처럼 불운한 기분에 빠지게 만든 것이다. (...라고 썼지만, 그냥 존나 막연히 우울했다.)


그리고, '고독한 방'에 입장했다.


일단 '고독한 방'에 대해 설명해야 할 것이다. 이 방은, 무슨 '직방' 같은데 올라오는 실존 공간이 아니다. 특정 연예인의 팬들이 모인 카카오톡의 단톡방으로서 오로지 하나의 강력한 규칙을 갖고 있는데, 절대로 말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오로지 사진만 올릴 수 있다. 말(톡)을 하면 강퇴당한다.

사실 이미 철지난 놀이터이긴 한데, 그날 나는 이 놀이의 이름처럼 고독했기에 정원이 400명인 이 방에 399번째로 입장한 것이다. 참고로 그 고독한 방의 주인공은, 방탄소년단의 '진'이었고, 그래서 그 방의 이름은 '고독한 석진방'이었다.

방탄소년단의 청년 김석진 (27세)

나는 사실 작년 겨울부터 방탄소년단의 김석진을 좋아했는데 부끄러워서 어디에 얘기하지 못하다가 지금의 우울을 빌어 아무 말이나 하는 김에 이런 것까지 털어놓게 되는 것이다. 아무튼 그날의 고독한 석진방은 이름처럼 고독했다. 김석진의 탓이 아니라, 고독한 방 자체가 철지난 유행인 것이 가장 크고, 그럼에도 여전히 김석진의 방은 그곳 말고도 수십여개의 단톡방으로 존재하고 있었기에 무기력한 400여명이 숫자만 채우고 있었을 뿐이다. 이때-


"석진 오빠 사진 좀 주세요"


라고, 누군가 말했다.  (고독한 방에서 말 할을 할 때는, 반드시 사진이나 텍스트콘을 이용한 이미지파일을 사용하는 것이 또한 규칙이다)

한 낮이었다. 토요일이었고, 이런 주말 도대체 누가......이런 고독한 요구에 응하겠는가.

그게 나였다.


한낮의 토요일, 작업실로 가는 지하철에 앉아있는, 절대로 석진을 오빠라고 부를 수 없는 내가, 핸드폰 사진첩을 스크롤하여 사진을 골라냈다. 근래에 본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 하나를 올리고 그 와중에 좋은 일이라도 한 것 같은 작은 기쁨마저 느꼈다.

우울한 기분에는 바로 이런 작은 성취감이 필요한 것이라고, 나는 새삼 고독한 방의 존재와 내가 저장한 괜찮은 사진과 그런 사진을 올려준 팬들과 김석진 자체의 존재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사슬처럼 연결해 갔다.  


"더 많이 주세요"


아이돌을 좋아하는 팬의 마음은 결코 채워지지 않는 밑빠진 독 같은 것이라, 내가 근래 가장 귀한 사진을 주었음에도 십대 후반 혹은 이십대 초반의 김석진팬을 만족시킬 수 없었다. 나는 더 많은 사진을 보내주었다.


"고화질은 없나요?"

"........"


고독해지고 싶었다. 고독했지만 더 고독해지고 싶게 만드는 곳이 고독한 방이었다. 이건 절대로 김석진의 탓이 아니라 저화질 사진만 가지고 있던 그날의 내 기분 탓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 날, 한낮의 토요일, 까마득 어린 친구와 잠깐의 대화를 나누며, 나는 거창하게도 인터스텔라 같은 기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이런 시간, 미지의 누군가와 따지고보면 쓸모없는 어떤 것을 이토록 소중하게 나누는 찰나에 대해서 말이다.


결국 별일은 커녕 아무 일도 아니었던 그날 오후의 기억을 무슨 대단한 일이라도 벌어진냥 끄적이는 이유는, 어쨌거나 오랜만에 글을 쓰자니 각 잡기도 쑥스럽고, 뭐라도 좀 꾸준히 쓰는 게 낫겠다 싶은 생각이 우울감 끄트머리에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다시 열심히. 시나리오를 쓰고. 마감을 끝내고. 사람들에게 상냥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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