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는 은근히 좋은 남편이 아닌 것 같아.
아내가 말했다.
내가 뭐 먹고 싶다고 하는 말을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리는 것 같아.
내가 임신기간 동안 먹고 싶다고 한 게 몇 개 되지도 않는데.
엄마한테 먹고 싶다고 하면 바로 먹게 해 줬을 텐데.
역시 엄마가 나를 제일 사랑하는 거 같아. 엄마 보고 싶어.
엄마가 보고 싶다는 말을 하면서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아내의 말이 하나 틀린 것이 없었다.
해운대에서부터 먹고 싶다고 했었지만 타이밍을 놓쳤던 스시 오마카세.
한두 달 전쯤 먹고 싶다고 했던 삼겹살도 그냥 지나가버렸고..
닭갈비 먹고 싶다고 한지도 벌써 몇 주 전인데 어제 아내가 다시 언급하지 않았다면 또 그냥 넘어갈 뻔했으니.
남들처럼 새벽에 싱싱한 과일이나 대단한 요리가 먹고 싶다고 한 것도 아니고
그냥 간단한 검색만 하고 잠깐만 시간을 내면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었는데
그 사소한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는 것이 후회스럽고도 미안하다.
임신기간에 서러웠던 점은 평생 간다고 하는데, 먹고 싶은 음식 한번 제대로 챙겨주지 못한 기억이 평생 남을 것만 같다.
그뿐만이 아니고 비록 일 때문이라고는 해도 임신초중기 떨어져 있던 기간 혼자서 감당해야 했을 시간들.
또 서울로 이사와서 함께 살게 된 후에도 매일 이어지는 야근과 업무 스트레스로 아내에게 힘이 되기는커녕 내 힘든 점만 토로했던 기억들.
이런 부분들로 인해 몇 주 전인가 임신 기간이 좋았던 기억보다 안 좋은 기억으로 더 남을 것 같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지나간 시간들은 돌이킬 수 없고, 평생 두고두고 원망을 듣더라도 그것은 내가 감당해야 할 업보이다.
다만 더 중요한 것은 남은 임신기간, 이어지는 육아와 앞으로 살아갈 나날 동안 지금과 같은 상황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몇 배는 더 섬세한 관심과 신경을 기울여야만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 회사일에 쏟는 시간과 심력을 지금보다 몇 배는 줄여야 한다. 그 방법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고민은 이번 연휴기간 동안 해봐야겠다.
그리고 내 기억을 너무 믿지 말고 기록을 일상화, 습관화할 것. 이런 글도 쓰면서 하루 일과를 갈무리해 보는 것도 좋은 것 같다.
아내가 엄마 보고 싶다는 말, 다시 울면서 하는 일 없도록 오늘을 항상 기억하자.
2024. 6. 6. 현충일 오후
@ 연남동 바람커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