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상 단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ere Jul 13. 2023

일상단상 #15. 눈빛이 가는 이

저도 그러는 것이 좋고 꽤 마음에 듭니다

마음이 복잡할 땐, 알찬 하루를 보내고 싶어 진다.  


그럴 때면 자주 가는 카레집이 있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카레집을 갔다가 주변 카페에서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바다를 보고 산책을 하고 책방도 둘러보고 나면 돌아오는 길엔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카레집은 제주 동쪽 구좌라는 마을에 있다. 작은 카레집이지만, 인스타그램을 통해 꽤 유명한 곳이라 여행자도 많이 찾고 주말엔 웨이팅도 심심찮게 생기는 집이다. 나는 이 집의 시금치 카페와 야채카레를 좋아하는데, 맛있으면서도 자극적이지 않고 먹고 나면 든든하게 배가 차는 것이 마음에 든다. 


그날도 그런 날 중에 하나였다. 

혼자 카레집을 찾아가 야채카레를 주문했던 날. 

점심시간이 한참 지나, 조금만 귀를 기울여도 옆 테이블 말소리가 조곤조곤 들리던 시간.

카레는 아직 나오지 않았고, 그날따라 주변엔 혼자 온 손님이 많았다.


그중엔 내 시선을 사로잡은 할머니가 계셨다.  

빨간색 꽃무늬 외투가 잘 어울렸던 백발의 할머니. 

할머니는 카레 한 그릇을 싹싹 비우시고는 휴지로 입가를 훔쳐 닦아냈다.


'할머니가 혼자 오셨나?' 


궁금증이 생길 때쯤.  

카레집 직원이 할머니에게 다가갔다. 


그는 허리를 한참 굽혀 할머니와 눈을 맞추었다. 

"맛있게 드셨나요?" 라는 질문과 함께. 


할머니는 혼자 제주살이를 하러 내려오셨다고 한다. 보름에서 한 달 정도의 기간이었는데, 카레집 주변에 숙소를 얻으셨다고 했다. 이전에 제주로 놀러 왔던 아들 가족이 이 카레집이 맛있다고 소개해줘서 왔다고. 너무 맛있었다고. 


할머니는 그렇게 자리를 뜨셨다. 

"고마워요."라는 말과 함께.


오늘 하루는 이것으로 되었다 싶을 만큼

참 예쁜 장면이었다. 


카레집 청년도.

백발의 할머니도. 

맛있었던 야채 카레도. 


그날의 기억은 꽤 오래 기억에 남아 

나를 따뜻하게 했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꽤 오래 시선을 끄는 이들이 있다. 


개인 취향이지만, 

그런 사람들을 좋아한다. 


허리를 굽혀 눈높이를 맞추는 이

흔들리는 마을버스 안 노약자석을 비워두는 이

영화 엔딩크레딧을 끝까지 보기 위해 앉아 있는 이 


나도 그러는 것이 좋고 꽤 마음에 든다. 


**

Where?

카레집은 톰톰카레. 





매거진의 이전글 일상단상 #14. 여름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