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잠깐만 아무 말 안 하고, 이렇게 있어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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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간이 좋았다.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너와 전화기를 맞대었던 그 시간. 바짝 말린 도톰한 이불속에서 뒹굴거리며 보냈던 그 밤. 바스락 거리는 이불에 발가락을 꼼지락 대면 손 끝까지 전해지는 부드러운 감촉. 그 언저리엔 너와 나눈 전화가 있었다. 그 시간이 다른 어느 때보다 더 좋았다. 늦은 밤. 대화가 끝나갈 때면, 나는 항상 물었다.
"우리 잠깐만 아무 말 안 하고,
이렇게 있어도 될까?"
그럼 나는 뜨거운 핸드폰을 볼 위에 올려놓고, 눈을 감았다. 가만히 숨을 들이켠다. 잔잔한 숨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내쉬어졌다 들어오곤 했다. 신기하게도 그리고 나면 꼭 함께 누워있는 기분이 들었다. 잠시 감았던 눈을 찬찬히 뜨면 내 앞에 네가 누워 우리가 마주 보고 있을 것만 같은 느낌 말이다.
규칙적으로 들려오던 우리의 숨소리는 어느 수면 음악보다도 내게 큰 안식을 주었다.
어떤 너는 왜 이러고 있어야 하는지 물었고,
또 다른 너는 몇 분 지나지 않아 먼저 잠들기도 했고,
오늘의 너는 무슨 일이 있는지 내 마음을 묻는다.
그래서일까. 숨소리 듣는 걸 좋아하게 되었다. 지난날 그 밤늦은 전화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은 내가 적막 속에 울리는 숨소리를 좋아한다는 것. 정확하게 말하자면, 좋아하는 것 중에서도 매우 아끼는 영역에 들어간다는 것. 가만히 보면 스킨십 중에서도 껴안는 것을 가장 좋아하는 것도 이런 이유 중에 하나가 아닐까 싶다. 아마 숨소리를 가장 가까이서 들을 수 있기 때문일 테다. 숨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를 허용했으니, 이 사람을 믿어도 된다는 안정감이 드는 걸까.
가끔은 눈을 감고 크게 숨을 들이켰다 내쉬며 숨이 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렇게 숨이 오가는 길목에서 지금 내가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생각한다. 그렇게 전화를 붙들고 내가 먼저 잠이 드는 날이면, 편안한 꿈을 꾸었던 듯하다.
덕분에 전화비는 만만치 않았지만, 아까울 이 없었다.
<반듯한 숲> '밤늦은 전화와 우리의 숨소리'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