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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 J Jan 06. 2017

[간송과 백남준의 만남 展]
낙천주의가 숨쉬는 예술

(윤제이 칼럼 ; 이번 주말에는 이 전시회가 어떨까요)

낙천주의와 유희가 일상이 되는 예술

낙천주의와 유희가 일상이 되는 예술

원시부터 초고속 미래로 달려가는 인류의 역사를 단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표현 해 낼 수 있는 작가가 있다면 누구일까? 이 질문에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면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보자.

다양성이 공존하는 범우주적이고 복잡한 현대문명을 지극히 일상적인 오브제로 표현해 낸 작가는 누구일까? 

그리고 그가 한국인이라면? 

이제 슬슬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범람하는 영상물, 비디오, 인터넷… 2017년을 사는 우리의 일상을 이미 지배해 버린 영상매체를 예술작품으로 만든 - 그것도 이 모든 것을 30-40년 전에 가능하게 한 - 미디어/비디오 아트로 이름을 전세계에 알린 사람은?


정답은 바로 백남준.


2017년 돌아오는 1월 29일은 백남준의 11주기이다.  백남준 아트 센터와 간송미술재단이 주관하여 오는 2월 5일까지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에서는 “간송과 백남준의 만남 - 문화로 세상을 바꾸다”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전시회의 입구에 들어서면 간송재단을 창시한 전형필의 약력과 함께 하마터면 훈민정음 원본이 일본의 소유가 될 뻔한 가슴 쓸어내릴 역사도 간단히 살펴볼 수 있고, 간송재단에서 유지 보존 하고 있는 김명국,심사정, 최북, 장승업의 작품과 함께 백남준의 작품을 함께 볼 수 있다는 친절한 설명도 게재되어 있다. 연관성이 적어 보이는 다섯명의 작가들을 공통된 주제로 엮어낸 전시로 이미 막이 오를 때부터 이색 기획전으로 주목을 받아온 전시회를 살펴보자.



백남준 '비디오 샹들리에 1번 ' (1989) /  장승업 '기명절지도'


백남준의 비디오 샹들리에 (1989) 가 전시회장 입구에 전시되어 있는데 그 존재감만으로 전시장이 환해진다. 

흑백 화면의 티비들이 제각각 깜빡이고 있다. 흑백의 대조가 눈의 착각을 불러 일으키게 하고 쉴새 없이 돌아가는 소용돌이도 영원의 시간에 갇힌것 같다. 천장에 연결되어 있는 끈으로 연결된 수십대의 비디오는 빛을 밝히는 조명이 된다. 이 조명은 그 자체로도 아름답기 그지 없다. 비디오를 연결한 색색의 전선은 화려하고 다채로우며 또 작은 소형 색색의 전구들이 어우러져 샹들리에 답게 분위기를 내고 있는 중이다. 샹들리에는 조명으로서의 실용성보다는 그 장식물로서 상류층을 대변하는 전유물이다. 이제 굳이 계층을 나누지 않더라도 문명의 혜택을 받는 인간에게 영상매체는 빛, 조명 그 자체다. 어두컴컴한 곳에서도 TV를 틀어놓으면 그 자체로도 조명이 되지 않는가?  


장승업 '기명절지도' - 사진출처 (네오룩)


백남준의 ‘비디오 샹들리에’와 뒤쪽의 어두운 벽면에 빔으로 비추는 장승업의 ‘기명절지도’와 함께 복록과 수명 상징, 부귀의 상징을 기원하는 주제로 이 둘은 함께 자리잡고 있다. 기명절지도에 담긴 연꽃, 물고기, 수선화와 향로, 가을열매들이 군자와 자손의 번창, 경사를 바라는 마음에서 복의 상징이라 비디오 샹들리에 또한 부의 상징이라는 공통점으로 엮어낸 것이다. 비디오 예술이 중산층의 조롱의 역할도 했었던 전례를 굳이 찾아보지 않더라도 장승업의 기명절지도의 네폭과 비디오 샹들리에를 복록으로 연결점을 찾은것이 이 전시의 큰 주제라면. 많은 이들에게 얼마만큼의 공감을 불러 일으킬것인지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백남준 '코끼리 마차'

이 대단한 생명체를 인간이 언제부터 지배 하게 된 것일까. 코끼리는 부처를 태우고 (친절하게 우산을 씌우고) 그 거대한 몸짓으로 세상에 그 위용을 전파하러 머나먼 길을 떠나는 선각자가 된다.  힘의 상징인 코끼리. 그 위의 비를 피할수 있는 부처가 선두로 나선다.  종교의 숭고화 거룩함은 조금 미뤄놓고 인간의 지배와 피지배물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 하는 백남준 작가의 기묘한 유머가 보인다. 이미 우리는 영상물의 지배자인 동시에 피지배물이다. 지배자와 피지배를 알수 없게 된 영상매체에 대한 선각자의 웃음인걸까.

심사정 '촉잔도권'

 

함께 전시되어 있는 심사정의 ‘촉잔도권' 작품은 산새의 굴곡진 굽이굽이에 인생이 걸려있었다. 산을 오르고 내리고 또다시 바위를 타고 중간에 누각에서 쉬어갔다가 가파른 절벽을 오르고 그렇게 이 8미터 길이의 대형 산수도를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험준한 산을 타고 오르면 끝에는 유유히 고요한 물결에 떠있는 배들과 마주하게 된다. 



백남준 '달에 사는 토끼' / 뒤편에는 장승업 '오동폐월'이 전시되어 있다.


인류 최초의 TV는 달(moon)이라고 말했던 백남준. 

달에 토끼가 산다고 믿었던  어릴적을 기억해 본다면 TV앞에서 달을 바라보는 이 토끼는 한없이 사랑스럽기도 하고 어딘가 우습기도 하다. 그런데 작품 이름이 재미있다. 어찌됐든 달에 사는 토끼다. 그런데 달에 사는 토끼가 TV로 달을 본다? 덩그라니 달덩이 하얗게 떠있는 화면 앞에서 앞발을 움켜쥐고 있는 토끼의 모양새가 엉뚱하기까지 하다. 이 작품 앞에서 백남준의 그 장난끼있는 미소를 떠올렸다.


토끼의 화면에 빛나는 눈동자가 지적호기심 가득한 인간의 단면 같다.

달에 사는 토끼와 함께 전시된 장승업의 오동폐월은 아름답고 천진난만하기까지 하다. 달이 뜬 밤.  달빛을 받은 국화는 연노란 빛을 더욱 은은하게 발산하고, 그 앞의 얼룩 강아지가 꽃이 피었다면서 그림을 그리는 장승업 화가를 돌아본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오동폐월을 넋놓고 바라보고 있노라면 꽃을 향해 컹컹 짓는 바둑이 소리가 들리는것 같다. 이 그림을 그릴때의 장승업은 아마도 달빛앞의 강아지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마음이 되지 않았을까.이 토끼와 오동폐월의 강아지는 서로 달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바라고 있을지도 모를 노릇이다. 그리하여 이 전시의 소주제는 "이상향을 찾아가는 두가지 방법"이다.



실제 작품과 유사한 오동폐월은 아래 주소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kansong.org/collection/odongpyewoel/





백남준 '슈베르트'
백남준 '로제타스톤-비디오 영상으로 나아가는 초석'


예술은 동시에 진지하거나 가볍기 어렵다. 백남준의 작품에서 진지와 가벼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은 그의 작품의 기저에 유머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대놓고 웃겨도 좋지만 그것은 우아함이 떨어진다. 

여기에 과거부터 미래까지 하나로 묶어버리는 강력한 주제가 있고, 그것을 표현해 낼 때 한 꼬집의 재치, 위트가 가미될 때 어떤 작용력이 생긴다. 그것이 낙천주의의 힘이다. 단단한 마음을 스며들고 녹게 하는 힘. 그 낙천주의는 소통이 되고 작품은 그렇게 관람객들의 마음을 품어준다. 백남준의 혜안은 그가 미술이나 음악에 조예가 깊은 아티스트이기도 했지만 결국 비디오 아트라는 숙명적인 길을 택했다는 것이고 이 실험성이 짙은 비디오 아트는 좀 더 즉각적이고 반응적인 오브제로 그 파급력이 강하면서도 아름답기까지 하다.


백남준 (전시회와는 관련 없는 사진입니다)


백남준 작품과 간송재단의 협업을 통해 기존의 전시를 보는 관람객들의 시야를 넓혀주는 느낌이다. 시대배경이 다른 작품안에서 같은 소재를 찾고 서로 엮어내서 공통의 주제를 찾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을 생각하니 이 전시의 기획과 연출을 무리였다는 식의 단정적인 표현은  삼가하고 싶다. 오히려 평소에 자주 접할 수 없는 조선시대의 미술품들을 현대미술작품과 함께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기회가 자주 있었으면 한다.  전시회장에 있다보니 백남준씨의 명성을 알고 알음알음 찾아오는 외국인 관람객들이 많았다. 이들이 백남준의 작품을 보고 감명을 받는 동시에 맞은편에 걸린 장승업의 '산수도나 도원상루, 암하분류'를 감상하면서 굴곡진 바위로 산새가 험준한 한국의 자연환경을 간접적으로 느낄수 있고, 그와 대비되는 산새의 고즈넉한 누각에서 찾아오는 평화 고요, 선불,도교의 사상도 어렴풋이 느낄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 고향으로 돌아오는 주인을 맞는 ‘귀거래도’의 앞에 서서 고국의 향수를 느낄 수도 있다. 이렇든 저렇든간에 한국의 미를 알릴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여러 방면으로 접목시켜서 생장해 낼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내야 한다. 특정한 사조에 국한 시킬것이 아니라 마음껏 자유롭게 갖다 붙이되 새로운 발상을 얻을 수 있는 다양한 시각의 이런 전시회가 더 많이 생겨났으면 좋겠다.





동대문 디자인 박물관



*이 전시회를 이런 사람들에게 추천합니다*


백남준, 조선시대의 작품들이 평상시에 이해하기 어려웠다면.

장승업의 오동폐월, 심사정의 촉잔도권, 백남준의 달에 사는 토끼. 적어도 이 세가지 작품을 직접 눈으로 보면서 인생의 척박함 속에서도 이상향을 그릴줄 알던 옛 선인들의 감수성을 느껴보고 싶으신 분.

그리고 백남준 작품속에서 자신만의 유머코드를 찾아내고 싶으신 분 .



*전시회 일정 : 16.11.09 - 17. 2. 5

*전시회 장소: 동대문 디자인 박물관 DDP 배움터 2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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