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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 J Dec 16. 2016

[르 코르뷔지에 展]
결핍은 인간을 어떻게 이끄는가

(윤제이 칼럼 ; 이번 주말에는 이 전시회가 어떨까요)

르 코르뷔지에 전시회를 가다 - 세계문화유산 등재 특별 기념전

예술의 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12.6 - 3.26)



기껏해야 백 년도 채 안된 역사를 가진 건물이 유네스코에 등재된다는 것이 가능한가? 그것도 17점이나?


르 코르뷔지에는 건축학에 있어서는 그가 있기 전과 후로 나뉠 만큼 큰 족적을 남겼다.

한국인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생소한 인물이어서 전시가 열리고 있는 고즈넉한 이 건물은

현재 오르세 전시회를 하고 있는 맞은편의

북적북적한 분위기와는 다른 비교적 한산한 분위기였다. 


그렇다고 해서 시시한 그저 그런 전시회는 결코 아니다.

일단 전시회 규모가 상당한데 이번 서울전에서 뉴욕 모마, 파리 퐁피두 센터, 서울 디렉터들이 

다 함께 참여하는 프로젝트라고 한다. 

더구나 500여 점의 다양한 주제의 전시물들과 안도 타다오의 특별전까지 동시 관람할 수 있다는 것은 

이제는 한국의 일반인들이 '르 코르뷔지에'를  알 때가 되지 않았냐는 경종의 울림이지 않을까.


(사진 촬영이 제한되어 있어서 전시회의 감상을 글로만 전하게 되는것이 아쉽기만 하다.)



르 코르뷔지에는 1887년 스위스 태생이며 시계 수공예자였던 아버지, 피아노 선생인 엄마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의 길을 따라 시계 세공인의 길을 걸었다.

그런데 예술학교에서 만난 교장이었던 샤를 레플라트니는 르 코르뷔지에가 단순한 시계장인으로

살아가기에는 재능이 아깝다여겨 전망이 그다지 밝지 않았던 스위스 시계업계를 내다보고

르코르뷔지에의 인생을 순간 건축학도로 바꾸어버린다. 

이래서 사람이란 자고로 때와 사람(귀인)을 잘 만나야 한다 했던가.


전시회장의 곳곳에는 르 코르뷔지에의 유년,청년시절의 스케치들을 볼 수 있었다.

소박하고 섬세했지만 과감한 면모나 색채가 뚜렷하지는 않았다.

인상깊었던 것은 숲모양을 단순하게 도식화 하려는 추상적인 시도와,

시계 세공인 다운 섬세한 터치와 세밀한 묘사들이었다.


그러던 그는 19세의 어린나이에 건축일을 가담하여 큰돈을 쥐게 되고 난 후

스무살이 된 때에 세계여행을 하게 되는데... 참 시기적절한 탁월한 선택을 했다는 생각이 들더라.

여행을 하면서 그린 회화에서 감명을 받은 흔적들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이질적인 문양들에 대한 탐닉과, 아프리카 같은 원시적 패턴에 매료된 그의 정신이 돋보였다.

이집트.파라오,힌두,페르시안의 다양한 모티브들과 특히 동방여행중 느낀 건축과 인간과의 관계를 심도있게 관찰한 흔적이 보였다. 술탄모스크,이슬람 비잔티움궁의 신을 위한 건축물로부터 역설적이게도 인간을 위한 시야를 넓히기도 하고,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와 파르테논에서 깊은 영감을 받았다 한다. 

멀리서 보는 파르테논을 가까이에서 봤을때의 느꼈던 그 간극과 건축물이 주는 압도적인 위대함에 대한 충격.

이 총체적인 경험들이 그 안에서 녹아 1910년대에 이르러 자신만의 형태를 좀 더 적극적으로 표현하게 되고,

색채도 강렬하게 변화하게 된다.

 이 세계여행이 스무살 청년의 가슴속에 예술에 대한 열정의 불씨가 되어 타오르게 되는 것이다.



"건축은 인간을 이해하는 방법이며

고전과 현대의 일관된 건축의 본질은 정신과 진실의 문제이다"


"위대한 시대에는 새로운 정신이 필요하다."



세계1차 세계 대전의 황폐한 시대를 겪으며 예술가들은

저마다 도식하고 있는 내면의 발전을 꾀하게 되는데...

르 코르뷔지에 역시 돔이노 프로젝트로 인한 기존의 조적식 벽돌 쌓기의 관습에서 탈피하는 방식을 생각해낸다.

이것이 발전하여 최소한의 공간에 최대한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고, 적은 비용으로도 살기 좋은 형태의 집을 제공할 수 있는  '유니테 다비타시옹'이라는 최초의 현대식 아파트를 건축하게 된다.


이 모든것은 어떻게 하면 저소득의 사람들이 이 전쟁의 황무지 속에서도 저렴한 비용으로도 사람답게 살 수 있는가.. 고심했던 그의 인간적인 본성과, 항상 본질을 논했던 사유의 결과물이다.


"집은 살기 위한 기계다."


집은 철저히 인간을 위해 만들어지는 기능을 담고 있는 '기계'라는 말이 재미있다.

집이 더이상 단순한 공간이 아닌 인간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변형될 수 있는 물질로 

구조화, 보편화시켜버린다.


이 전시회는 건축학을 꿈꾸거나 건축업계에 몸담고 있는 이들 뿐 아니라 미술과 건축의 그 긴밀한 미학을 체험해보고 싶은 일반 남녀노소에게도 꽤 의미가 싶을 것이다.


빌라 사보아 1931년 완공, 82 Rue de Villiers, 78300 Poissy, 프랑스


건축가로서 명성을 얻게 된 사보아 저택의 내부 전경, 그의 위대한 업적 중 하나인 롱샹성당도 모형이나 필름으로 볼 수 있고, 인간의 팔길이와 신체의 비율로 인해 최적화된 편안한 최소한의 공간을 고안해낸 ' 모듈러 이론'과 현대 건축의 5원칙에 대한 친절한 설명도 이 전시회에서 보고 느낄 수 있다. 


롱샹성당, 노트르담 뒤 오, 1955년


롱샹성당은 신의 구원이 목적이었던 기존의 성당 건축물의 구도에서 탈피해 인간이 기도를 하러 가는 곳. 즉, 구원자가 아닌 구원을 받으려 요청하는 자들의 시선에서 설계했다한다. 전시회장 입구 대각선에 있는 안도타다오의 특별전시장에서 롱샹성당에 대한 안도타다오의 시선을 느낄수 있는 색다른 경험도 할 수 있으니 안도타다오의 전시회를 꼭 둘러보고 나오자.




30세의 그는 파리에 정착하면서 시테섬, 노틀담, 곳곳의 파리 풍경이나 추상화 정물화들을 끊임없이 그려냈다.


전체를 아우르는 넓은 시야와 안정적인 정물 배치와 정물화 한장 한장 에서도 건축가 다운 구도가 돋보인다.


흰 사발에 대한 회화나 수직으로 놓인 기타에서도 그의 추상적인 사유가 돋보였는데 퓨리즘(순수주의)을 지향했던 그의 회화 기법은 그의 시각으로는 조금은 덜 인간적이었던 큐비즘과 대비되는 행보였다.




탁자에의 여성 1929, 캔버스에 유화

왼쪽 작품은 ' 탁자에의 여성' 1929년 작품이다. 

르 코르뷔지에가 사랑했다는 그의 작품이며,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수많은 여성성들을 논할 때 화두가 되는 대표작이라 한다.


회색빛의 풍만하고 둥근 신체를 가진 여성의 무미건조하며 황량한 얼굴 표정과 아래의 뻥 뚫려있는 열쇠구멍을 떠올리게 하는 공간, 그 곳으로 들여다보이는 저 너머의 이면은 마치 닿을 수 없을 것만 같다.

그가 원한것은 여성이 가진 본질의 이성(異性). 그 이질감을 주는 신기하며 성적이고 관념적인 여성으로서의 신체가 가진 부드러운 곡선과 풍만한 나체는 여성의 육욕이라고 단순하게 표현하기엔 부족한, 

또다른 감정을 내재하고 있는 듯하다. 


그가 생전에 충족할만큼 받지 못한 어머니의 애정. 그 끈임없는 갈구는 형에게 집착했던 어머니의 편중된 사랑으로 인해 결핍된 모성에 대한 그리움이 되며 그의 작품세계를 논할때 빠짐없이 등장한다.

편애에 대한 끈질긴 멍에는 그의 삶을 무의식적으로 지배했고, 봉봉(이본느 아내)에게 그 사랑을 보상 받으려 하지만 끝내 그에게 완전한 충족이 되었는지는  미지수다. 이 여성의 열쇠의 모양의 뻥 뚫린 공간은 마치 여성의 성기에 대한 공허함과 갈망, 동시에 채우고자 하는 허수한 욕망마저 느껴져 애잔함을 주기까지 한다.




콘크리트계의 거장이고. 현대 건축의 5원칙을 정립한 건축계의 없어서는 안 될 위대한 인물이었지만

말년을 최소한의 집기와 간략한 동선의 4평 남짓한 오두막집에서 보내게 된다.

콘크리트 전문가가 그의 마지막 집으로 '나무' 집을 택했다는 것이 모순적이면서도 재밌다.

불필요하게 크고 많은 물건들로 가득차 있는 허영의 공간에서 어쩌면 인간의 본질이 흐려질수 있다는 것을 역설하는 것만 같다. 건축학의 거장 이면에 숨겨진 그의 인간적이며 소박한 면모, 곧 그것이 자연으로 돌아가고픈 그의 사유의 종착점이던걸까. 
그의 내면이 어떠한 사람이었는가를 느끼게 했던 그 4평의 아늑한 나무집을 전시장에서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다.


전시장의 나무집 조그만 창문에서 내다보면, 해안가 파노라마 영상과 함께 고요한 명상 음악이 전시장에 울려퍼진다. 르 코르뷔지에가 작은 창문으로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다정한 미소를 짓고 있는 사진도 함께 볼 수 있고, 잠시나마 잔잔한 행복을 느꼈던 선물같던 시간이었다.


많은 이들이 그를 건축업계에 위대한 행보를 남긴 대단한 건축가로 표현하지만 그 스스로는 자신은 화가이고 싶다고 말했다한다. 

그가 생전에 화가로서 걸출하게 인정을 받지 못했다 해도.

르 코르뷔지에는 자신의 삶이 결핍을 채우기 위한 순간의 욕망과 마주하고 있었기에 곧 인간 존재에 대한 따스한 온정을 건축물에 담아낼 수 있었던게 아닐까.

물질과 정신의 결핍은 인간이 가진 벗어날 수 없는 멍에다. 

자만심으로는 결코 알 수 없는 것이 바로 인간에 대한 애정, 휴머니즘이다.



"모든 것은 결국 사라지고 만다.

전해지는 것은 사유.... 뿐이다"


난 오늘 위대한 건축가가 아닌.

그 속은 지극히 인간적이었던 어떤 한 남자의 고독한 내면을.

깊이 들여다 보고 온 것 같다. 


그리고 앞으로 그의 작품을 만난다면,

그의 회화에 따뜻한 눈길을 한 번 더 주고 싶다.






*이 전시회를 이런 사람들에게 추천합니다*


건축과 미술에 관심있는 분들 뿐만 아니라.

차가운 콘크리트의 현대적 공간에서조차 절절한 인간미를 느끼고 싶은 이들에게.

그리고 인생의 결핍이 어떻게 사유와 성찰로 점철된 삶으로 나아가는지를 깨닫고 싶으신 분들에게.

그리고 잃어버렸던 꿈을 상기해내고 다시 쫓고 싶으신 분들에게...




*전시회 일정 : 12.6- 3.26

*장소 : 예술의 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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