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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 J Mar 03. 2017

묻혀진 X세대의 한국미술을 찾아서

< X - 1990 년대의 한국 미술 > 이 흔치 않은 전시.

부제 : X 세대라 통칭된 한국의 80-90년대의 미술전시의 회고록




서울 시립 미술관의 < X : 1990년대 한국 미술 > 전시회가 2월 19일로 막을 내렸다.

한국의 1987년-1996년의 한국의 현대미술을 조명한다는 의도로 기획된 전시였다. 90년대 후반의 금융위기가 도래하기 직전의 이 시대는 60-70년대 단색화풍이나 민중 미술로는 정의 내릴 수 없는 여러가지로 모호한 개념이 혼재된 시기였다. 특징적으로 신세대라는 뜻의 X세대라는 별칭이 기업의 홍보적 전략으로 새로이 등장했고, 자의가 아닌 타칭 “X세대”들이 새로운 미술을 시도한 흔적들이 출현했지만 제대로 연구되지 않고 지금에 이르렀다.

 그 시절의 X 세대 작가들이 점차적으로 발전하여 현재 한국 현대미술의 하나의 축을 이루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쉽게도 여태껏 이 시기를 재조명하는 전시는 없었던터라 이 전시는 좀 더 특별하게 다가왔다.


Sasa[44], <1996 (문학의 해)>, 347x1800cm, 2006, 2016년 재제작


전시장에 들어서면 이불 작가의 퍼포먼스 때 착용되었던 의상 <무제 (갈망)> 이나 SaSa [44] 작가의 <1996 (문학의 해)> 작품이 눈길을 끈다.  X세대의 후배작가인 SaSa(44)작가가 재구성한 작품은 90년의 이슈를 뽑아 연대기적 컬렉션을 선보였는데, 문화적 센세이션을 가져오거나, 역사적으로 기념비적인 사건으로 재구성되어 있었고, HOT 같은 아이돌 1세대의 사진의 구성이라든지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웃픈? 신문의 기사거리들도 볼 만 했다. 필자가 그 시절 고등학교 학생었기에 공감할 수 있는 아재식 코드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경험에 의존해 관람객들의 향수를 자극해 과거를 회상하는 데만 그친다면 이 전시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역사는 재구성하고 재조명되면서 의미를 얻어 곧 의식이 된다. 현재가 답답하고 미래가 불안할 때는 과거를 되돌아보면 위안이 된다 했다. 그것이 인간의 삶은 결국 삶이 계속되고 어느정도는 반복된다는 지리멸렬한 이유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런 의미로 멀고도 가깝게 느껴지는 이 80-90년대를 현재 스무살이 갓 된 청년들이 바라본다면 태어나기도 직전의 이야기일터인데 과연 어떤것을 느끼고 돌아갈까 호기심이 일렁거렸다.



 - 결집력이 강하지 않은 소그룹들


90년대에는 뭉쳤다가 흩어지는 식의 느슨하게 운영되는 소그룹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1987년 <뮤지엄>의 등장은 과거에서 탈피한 새로운 양식이었고, 최정화와 이불등의 멤버들은 서구의 문명을 받아들이는 포용력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안타깝게도 이 전시에서 최정화 작가의 작품은 만날 수 없었지만 이불의 파격적인 의상 전시와 자료사진만으로도 그 당시 얼마나 파격적 문화 쇼크를 주었을지 상상하니 언어도단이랄까.


또한 전시장 한켠에 존재감을 확연히 드러내고 있는 홍익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30대의 여성들 10명으로 이루어져 있는 <30캐럿> 이름의 그룹 작품 전시가 눈에 들어왔는데, 이들의 작품 주제가 여성의 삶을 표현하려고 했다는것이 흥미로웠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가 여혐, 남혐의 젠더화 담론으로 한참 달구어진 2017년의 초입이기에 더더욱.



염주경 ; 무제 1994, 2016년 재제작

여인네의 옷고름을 형상화 한 이 작품에서 길게 드리워진 흰 천들이 마치 무당굿을 하는 나무에 오방색으로 색색이 걸려 있는 천이 흔들리는, 혹은 원한을 푸는 고풀이*의 매듭을 푸는 듯한 장면을 연상시키게 한다. 한국적 전통미와 더불어 여인네 가슴속에 겹겹이 서린 한(恨)이 느껴지는 묘한 느낌이었다.


*고풀이 참조 : 진도 씻김굿의 한 절차로 이승에서 풀지 못하고 저승으로 간 한과 원한을 의미하는 고를 차일의 기둥에 묶어 놓았다가 이를 하나하나 풀어가면서 영혼을 달래주는 대목굿이다.

하민수 <金氏가 李氏를 낳고, 李氏가 河氏를 낳고, 河氏가 申氏를 낳고...> 500x260cm, 1994


바느질로 한 땀 한 땀 이루어진 이 작업은 김씨가 이씨를 낳고, 이씨가 하씨를 낳고, 하씨가 신씨를 낳고.... 라는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여성의 삶은 결혼과 출산으로 인한 가족화, 즉 자식의 성씨로 투영된다. 여성이 혈족안에서 타자화 되는 소외감을 드러내는, 삶의 대물림에 대한 내러티브다.




- 장소에 대한 화두 <압구정동>



한국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은 작품 자체의 비평적 해석보다 오히려 전시와 담론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그 중에서도 <압구정동 ; 유토피아 / 디스토피아> 전 (갤러리아 백화점 갤러리, 1992)는 1990년대 일어난 포스트모더니즘 열풍 자체를 담론으로 상정한 전시로 평가받았다. <압구정동> 전시는 자본의 신전 안에서 상품과 작품을 동등한 자격으로 비교하는데, 포스트모던을 지시하는 상품과 작품을 선보인 이 전시는 감상을 위한 모던한 전시가 아니라 상품과 작품의 비평적 시각을 통해 이데올로기를 위한 예술이 아닌 현실문화 비판의 기제로서의 가능성을 드러냈다. 서구 모더니즘에 대한 반발과 동경이 뒤섞인 한국 미술계의 공전에서 벗어나 이념보다 문화를, 이상보다 실제 장소를 창작과 비평의 토대로 삼았다는 점은 곱씹어 볼 만한 접근이 아닐 수 없다. <글로벌 아트마켓 크리틱, 정현 미술비평가>
 


<박불똥 ;

애초 시립 미술관을 찾을 때 몇 가지 염두 한 것이 있었는데. <X - 1990년대의 한국 미술> 의 전시속의 전시를 회고하는 <압구정동 :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에 집중 할 것과 서울 시립 미술관 2층에 위치한 <가나아트 앤솔로지 전시회> 까지 깨알같이 관람하고 가자. 라는 이 두 가지 목적 이었다.

 압구정동 전시회는 한국현대미술을 되돌아 볼 때 90년대에 손꼽히는 전시로 필자가 접하는 미술관련 서적에서 회자되는 전시였기에 더욱 그랬다. 압구정동의 90년대의 향락 소비적 비판의 이미지로 이 곳의 장소적 담론이 시작되었고, 이를 다각적으로 분석하고 각계각층의 전문가들이 관련된 미술과 광고를 실어 글과 함께 장소를 평한 전시회를 열었다는 것. 그렇게 장소적 문제가 시각화 되었다는것이 현재까지 이 전시에 의미를 두는 이유일 것이다.  



- 곳곳의 보물찾기들

이재용, <한 도시 이야기>, 2채널 비디오, 2016


 입구에는 감독 이재용의 1994년 서울 <이재용, ‘한 도시 이야기’, 2채널 비디오, 2016.> 라는 영상이 쉼없이 돌아가고 있었는데 꽤 많은 사람들을 인내심있게 끝까지 보게끔 하는 마력이 있었다.  아마도 1994년 서울의 다소 촌스럽지만 우후죽순 변화하던 그 시절의 서울 풍경에서 많은 아티스트의 시각으로 본 제각기 다른 서울이 담겨 있었고, 이는 귀중한 자료가 될 것임에 분명했다.

전시장 대각선 한켠에는 생목으로 불러지는 그 시대의 유행가가 공명했다. 대중가요를 연대기적으로 정리해서 표로 만들고 인기곡을 반주없이 재녹음한 실험적인 작품이라고 했다. 필자가 전시장에 머무는 동안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 듀스, 신해철의 곡들이 울러펴졌고 그래서 일까... 전시장을 떠나면서 애잔하면서도 정리되지 않은 불안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 느낌은 마치 폭풍전야의 어스름 짙은 새벽을 걸어가는 기분이었다. 곧 다가올 1997년 IMF와 겹쳐지는 경제적인 타격의 불안감을 고스란히 앉고 줄줄이 귀국하던 유학생들의 허탈감과 서구 문물이 유입되기 시작하면서 깊이있는 미술, 학문적 소양을 갖추지 못한 채 더듬더듬 코끼리 다리를 만져가면서 혼란속에 작품을 만들어내던 소위 지식인 이자 예술가로 불리우던 이들이 함께 모여 ‘신세대적 욕망 표출’이라는 넘지못할 과제에 직면한 느낌이었다. 386 세대를 지나쳐 88만원 세대라는 비정규직의 두려움과 IMF에 맞서는 위기를 청소년기에 겪은 이 세대들의 고요한 외침이 겹쳐졌다.



2층의 천경자 화백의 전시장 오른편에는 상설전시로 <가나 아트 앤솔러지 전>이 열리고 있었는데, 이곳은 70- 80년대 한국의 민중미술을 살펴 볼 수 있다.



더불어 3층에서는 <SeMa 전시 아카이브 1988- 2016 ; 읽기 쓰기 말하기 >가 프로젝트 갤러리에서 선보여지고 있었는데 8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의 시립 미술관의 자료들이 연대순으로 일목요연하게 깔끔하고 잘 정리되어 있는 창고형 전시였고 미술관의 정책과 맞물려 운영되었던 미술관의 업적은 물론이고 의도치 않은 행보?를 본의아니게 느낄 수 있어서 좀 안타까웠던 건 사실이었다.

김홍희 관장님 수고하셨습니다.


개개의 전시가 저마다 다른 생각을 말하기 보다는 이 세 전시장 (1,2,3층) 이 모여 서울시립미술관 건물 자체가 하나로 응축되어 외치는 것 같았다. 현시국의 믹싱 볼 같은 어지러운 이 시점에서 잠시 달리기를 멈추고 지나 온 길을 되돌아 보라고..


앞으로 펼쳐질 미래를 불안보다는 스릴로 받아들이는 여유로 받아들이라고. 그런 의미에서 혼잡했던 당신들의 포스트 모더니즘의 깃발이 갈팡질팡 스러지던 90년대를 되돌아보라고. 전시장을 나서는 이들이나 이 글을 읽는 독자나 모두 잠시 떠올리게되는 과거의 기억이 과오든 승리든 시행착오로 얼룩진 되새김질이라도 일단 시도는 해보라고.


서울 시립 미술관도 과거를 재조명하는 이 전시를 김홍희 관장의 퇴임과 맞물려 기획했을 것이며, <읽기 쓰기 말하기>라는 3층의 전시 아카이브도 그 뜻을 함께 할 것이다.


전시는 이미 막을 내렸지만, 이 글을 읽는 이들이 저마다의 인생사를 돌이켜보고 과거의 특정한 시기를 재조명하는 흔치 않은 기회와 함께 내일을 디딜 수 있는 여유를 갖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글 : 이윤진 (Yoon 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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