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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윤 Dec 14. 2021

수국을 찾아서

은평문예 30호 

엄마는 아빠에게 생활비를 받아서 가계를 꾸려 나가셨다. 

엄마의 장보기는 정해진 일일 식비 내에서 어떻게 하면 입맛 제 각각인 가족들이 모두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찬거리를 고를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엄마의 하루 일과 중 엄마에게 가장 부담이 되는 시간이었다. 그런 장보기에서 선택의 우선순위는 언제나 입맛 까다로운 아빠와 못 먹는 게 많은 나였다. 그렇게 우선순위에 맞춰 장을 보다 보면 엄마가 좋아하는 반찬은 마지막 순서가 되어 장바구니에 담기지 못하는 날이 더 많았다. 

이맘때쯤, 엄마를 따라서 장을 보러 가면 엄마가 시장을 둘러보며 혼잣말로 하시던 말씀 "참나물이네...... “ 

참나물을 딱히 좋아하지 않으셨던 아빠, 쌉싸름한 맛이라면 질색을 하던 나. 그래서 참나물은 매번 엄마 눈에만 담아 오던 찬거리였다. 어쩌다 참나물이 식탁에 오르면 나는 젓가락도 대지 않았고, 다른 가족들은 두어 번 젓가락이 오갔고, 그렇게 남은 참나물을 엄마는 괜히 미안해하면서 "참나물 참 맛있는데..." 하면서 정말 맛있게 드셨다. 


한 달 가계 운영에 딱 맞게 생활비를 받아서 쓰시던 엄마에게 마음에 드는 그릇은 그저 눈 호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돈을 모으셨는지 주방에서 꼭 필요한 스테인리스 김치통 세트나 타파웨어 세트 등등 그 시절 유행하던 머스트 템들을 동네 이웃들과 그릇계로 하나씩 하나씩 장만하는 엄마가 내 눈에는 대단해 보였다,

그런데 그런 엄마가 동네 그릇계로도 사지 못했던 것들이 있었다. 머스트 템(must item)이라기보다는 잇템(it item), 요즘 식으로 표현하면 엄마를 위한 소확행 아이템 테이블웨어였다.

가끔 엄마를 따라서 남대문 수입 그릇 상가에 가면 매장마다 가득한 그릇들 중에서 엄마가 유난히 갖고 싶어 하셨던 그릇이 있었다. 

수국 무늬가 곱고 은은하게 그려져 있는 도자기 식기세트.

밥공기, 국그릇, 접시들의 가격을 하나하나 물어보시고 가족 수만큼 곱셈을 해보시곤 조심스레 내려놓으시던 수국 그릇.

철없던 내가 "엄마, 그렇게 갖고 싶으면 엄마 것만 사"라고 말하니 "어떻게 그래~사려면 온 가족 걸 사야지. 만약 몇 개만 산다면 나중에 냉면그릇이나 다섯 개 사던지"라고 대답하셨다.

그런 엄마를 보면서 나중에 커서 엄마가 갖고 싶어 하시는 만큼 예쁜 그릇을 다 사드려야지라는 마음을 품곤 했었다.

하지만 엄마가 원하는 만큼 예쁜 그릇을 사드릴 수 있게 되었을 때 엄마는 가급적 주방 일을 하고 싶어 하지 않는 나이가 되셨고 무겁고 부피를 차지하는 그릇들은 죄다 처분해 버리고 싶어 하셨다.


코로나19 상황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시행되면서 시작된 나의 '○○마켓'

미뤄두었던 짐들도 정리하고 집콕하면서 생기는 우울감을 극복해 보고자 시작했는데, 그 '○○마켓에서' 우연히 엄마가 그토록 가지고 싶어 하셨던 수국 그릇을 발견하게 되었다. 나의 근처 지역에 있는 이 집 저 집에 한 개, 두 개, 세 개씩 그릇을 받으러 가면서 엄마를 만나러 가는 것처럼 설레기도 했고, 좋은 이웃들 덕분에 마음에 위로를 받기도 했다.

수국 그릇에 대한 나의 사연을 들은 어느 이웃님은 본인이 결혼할 때 어머니가 사주신 그릇이었는데 마음에 들지 않아서 사용하지 않고 넣어두기만 하다가 한 두 개씩 사람들에게 나눠 주기도 했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모두 가지고 있다가 나에게 줄 걸 그랬다고 내 일처럼 안타까워해 주었다. 

택배로 받기로 한 그릇들의 박스를 뜯어보니 배송 중 국그릇 하나가 깨져 있었다. 깨진 그릇을 보고 추억이 깨진 것처럼 얼마나 속이 상했는지 모른다.      

나의 장보기는 엄마와의 소중한 추억을 소환하는 시간이다. 엄마가 잘해주시던 음식, 엄마가 좋아하시던 음식들을 만들기 위한 재료들을 구입하고, 손질하고 조리하는 시간 내내 엄마와 엄마 껌 딱지였던 나만의 내밀한 사연들을 회상하며 미소를 짓기도 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오늘은 엄마의 로망이었던 수국 그릇세트에 엄마가 좋아하시던 메뉴로 상을 차렸다.

엄마가 좋아하시던 담백한 소고기 로스구이에 참나 물쌈과 샐러드, 그리고 시원한 동치미.

엄마의 밥상이 아닌 나의 밥상 위에 놓이기는 했지만, 이 그릇들을 보며 엄마가 좋아해 주시기를, 이제는 쌉싸름한 참나물도 잘 먹는 나를 보며 기뻐해 주시기를 죄송함과 그리움이 어우러진 마음으로 엄마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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