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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나 Sep 24. 2019

어떤 비 오던 날들

- 내가 잃어버린 그 많은 우산들은 어디에 있을까.

  어릴 땐 비 예보를 들으면 조바심이 났다. 색색의 예쁜 우산을 든 친구들 사이에서 살이 한 군데쯤 부러지거나 찌그러진, 몸집에 맞지도 않는 큰 우산을 들고 걷는 게 힘들었으니까. 사실 우산보다 부끄러움의 무게가 훨씬 컸던 거지만 말이다. 시골 마을에서 서로 사는 형편이야 빤히 보였지만 그 격차가 어떤 의미인지 온전히 알지 못했던 어린 나로서도 어쩌면 최초로 느낀 가난의 흔적이었다. 어째서 그런 것들은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그렇게 금세 본능적으로 알게 되는 것일까.

  

  할머니는 늘 우산은 비만 안 맞게 해주면 되는 것이라고 하셨다. 없는 형편에 셋이나 되는 손녀들에게 우산, 우비, 장화같은 ‘비 오는 날 3종 세트’를  마련해주기란 어려운 일이었으니 어쩔 수 없으셨을 거다. 떼를 써서 될 일이 아닌 걸 나도 일찍부터 알아서, 비 오는 날이면 그저 너무 부끄럽지는 않을 정도의 우산이 손에 쥐어지기만을 바랐을 뿐이다.

  

  그 날은 어쩐지 양호한 우산이 내 차지가 되었다. 그래봐야 칙칙한 회색빛의 커다란 어른 우산이지만 버튼을 누르면 스륵 미끄러져 잠시 정지한 듯 하다 마침내 통- 하고 펼쳐지는 자동 우산의 그 완전하게 둥근 지붕이 나를 설레게 했다. 새 우산이니 누구랑 바뀌지 않게 조심해서 가져오라고 신신당부하는 할머니의 말을 뒤로 하고 나서는 걸음마저 가벼웠다. 작고 앙증맞은 친구들의 우산과 바뀔 이유가 없었으니까.

  

  문제는 오후에 생겼다.  할머니의 당부에 자신있게 대답했지만 내심 우산이 염려됐던 나는 하교 시간이 되자마자 누구보다 빨리 복도로 뛰어 나갔다. 우산은 얌전히 제자리에 있었다. 안도하며 우산을 집어드는데 늘상 나와 함께 집에 가던 친구가 갑자기 고맙다고 했다. 어리둥절 해서 왜냐고 반문하니 ‘자기의 우산을 집어줬기 때문'이란다. 나는 침착하려고 애쓰면서, 이건 내 우산이고 저것(아침에 함께 올 때만 해도 친구가 쓰고 있었던!)이 네 것이라고 말했지만 막무가내였다. 결국 우리는 우산을 부여잡고 실랑이를 벌였고, 둘 다 울음을 터뜨렸고, 선생님 앞에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당황스러워서 가슴이 빠르게 뛰었다.

  

  제각각 자기 것이라 주장하니 도리가 없던 선생님은 각자의 집으로 전화를 거셨다. 그리고 모두 새 우산을 들고 갔다는 확인을 받았다고 했다. 나의 우산은 짙은 회색, 친구의 것은 검정색, 나의 우산은 이지러진 곳이 하나 없는 동그란 우산, 친구의 것은 한쪽 천이 들려 우산살이 보기 싫게 드러난 것. 내 우산이 어떤 것인지는 분명했지만 나에게 곧 어떤 불행한 일이 닥칠 것만 같았다. 그 예감은 현실이 되었다.


  할머니는 곤란해하는 선생님께 점잖게 아무거나 들려서 집에 보내주시라고 하셨단다. 원체 남한테 아쉬운 소리를 못 하시는 분이기도 했고, 할머니가 키우는 손녀들이라 행여 남들에게 책잡히지는 않을까 늘 염려가 앞서던 분이셨으니 특히나 선생님께 폐 끼치는 것 같아 남사스러우셔서 그러셨을 거다. 그때도 어렴풋이 알았다. 하지만 알아도 서러웠고 알아서 서러웠다. 내 편은 할머니라서 내가 지는 것만 같았다.


  소동은 그렇게 일단락 되었고 서로 미안하다 화해하고 함께 집에 돌아가야 했다. 아무것도 미안하지 않았던 나는 당연히 화해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지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죽어도 함께 가는 것만은 거부함으로써 억울함을 표시하고 싶었지만 그것도 가능하지 않았다. 화해를 한 사이좋은 친구니까, 같이 가지 않겠다는 것은 선생님의 중재를 거부한다는 말이니까. 작은 가슴이 서러움으로 터질 것 같았다. 말 한 마디 없이 나란히 걷다 먼저 집에 당도한 친구가 잘 가라고 인사할 때 대답도 눈길도 주지 않는 것이 내가 할 수 있었던 유일한 표현이었다. 집으로 향하는 길에 참았던 눈물이 또 쏟아졌다. 더 울 기운도 없이 집에 가니 안쓰럽게 보시던 할머니는 이제 새 우산을 들려보내면 안 되겠다고만 하시고 말을 아꼈다. 또 슬펐다. 조마조마할 필요도 없이 반복될 비가 올 날들이.


그 작은 기억이 여전히 이렇게 생생하다.



 

  대학생이 되어 집을 떠난 후 막연히 슬프기만 하던 어느 주말에는 비가 왔다. 휴대폰의 정액 요금제는 이미 끝나 버려서 공중전화로 고향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외롭다고 하소연 할 생각은 없었지만 대학생활이 너무 즐겁다고 할 상황도 전혀 아니었는데, 수화기를 넘어오는 부러움과 격려 섞인 다정한 목소리에 '정신없는 생활이지만 너무 신나고 쾌활하게 잘 지내고 있다'고만 떠들다 전화를 끊고 말았다.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선.

  

  기숙사 로비에 앉아 비 내리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그 길로 지하 매점으로 가서 샛노란 장우산을 샀다. 마침 비가 오고 우산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사실 그때의 나는 딱히 갈 곳이 없었으므로 당장 우산이 필요했던 것도 아니었다. 다만 적막한 마음에 어떤 식으로든 위로가 필요했나 보다. 우산 하나에 위로라니 유치하지만 그래도 그게 뭐라고, 무난하고 어른스러운 우산들 틈에서 쨍한 색을 빛내던 우산을 골라들고 방으로 돌아갈 때 스스로는 밝아지지 못하는 마음이 조금 밝아지는 것만 같았다. 달빛같고 개나리 꽃잎 같은 그 노랑의 빛깔처럼.


  무작정 우산이 좋아졌던 건 아마 그때부터였을 거다. 흔히 좋은 신발이 좋은 곳으로 데려가 준다고들 하는데 나는 우산이 그런 물건으로 여겨졌다. 마음에 드는 우산을 쓰고 비오는 길을 나서면 내가 띄워 올린 그 작은 하늘 아래에서는 좋은 시간만 이어질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다. 그래서 집착하듯 우산 욕심을 냈다. 필요해서 사고, 예뻐서 사고, 부주의하게 잃어버리고 속상해서 더 맘에 드는 것을 찾으려 맑은 날에도 열심히 우산을 구경하고 다녔다. 마음에 드는 우산을 사면 그렇게 흐뭇하고 따뜻한 기분이 들 수가 없어서 자꾸 주머니를 털어 작은 사치를 누렸다.


  많은 우산이 내 손을 거쳐갔다 ㅡ 진달래색 삼단 우산과 날렵한 곡선의 손잡이가 예쁘던 연보라색 장우산, 살이 많아서 바람이 불어도 든든한 느낌이 들던 꽃무늬가 잔잔한 하늘색 우산, 하다못해 편의점의 투명한 비닐우산까지ㅡ 다 나열할 수도 없을 우산들을 하나씩 떠올리다 보면 온전히 그 한때의 감정이 살아난다. 비를 맞는 건 질색이라 이슬비가 와도 우산은 무조건 각자 써야했던 남자친구에게 우산 한 개 한 개가 다 외따로인 섬 같아서 쓸쓸하다고 하니 자기 우산을 접고 내 우산 속에서 함께 걸어주던 때의 기분이라던가, 계속 실패만 하던 취준생 시절 자신없는 마음으로 하릴없이 시험을 치러 갈 때 컴컴한 빗 속이 암담하게 느껴지던 기억같은 것들 말이다. 예쁜 우산은 바람대로 좋은 일만 생기게 해주는 부적이 되지는 못했지만 그렇게 지난 날을 추억하는 특별한 방식이 되었다. 살다보면 잊는 것이 많아 아쉬울 때가 잦은데 역시 고마운 우산이다.



  

  요즘은 전만큼 우산을 신경쓰진 않는다. 좋아하는 우산을 쓰면 여전히 마음이 산뜻해지지만 잃어버려도 전처럼 속상하지 않고 꼭 다시 마음에 드는 것을 찾으려고 애쓰지도 않는다. 정신없이 있다가 잃어버리는 일이, 특히 비가 오다가 개는 날에는 수두룩하다보니, 자연스레 그렇게 된 것 같다(그렇게 좋아하면서 챙기는 것은 왜 그만큼 철저하지 않은지는 예나 지금이나 의문이다). 이제는 비가 오면 피할 수 있는 우산이 손에 있으면 되고 급할 땐 잃어버려도 크게 아쉽지 않을 가격의 우산을 사면 된다고 생각한다. 좋게 보면 더 합리적인 사람, 다르게 보자면 이제는 고작 우산으로는 위로받을 수 없는 닳아버린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비가 오면 한 번씩 또 궁금해진다. 내가 잃어버린 그 많은 우산은 다 어디로 갔을까. 어떤 사람에게로 가서 비를 막아주고 어쩌면 눅눅했을 마음까지도 보송하게 지켜줬을까. 내 손에서는 잠시였지만 망가지고 수명이 다할 때까지 몇 번이고 누군가의 지붕이 되어줬을까. 언젠가 나에게 그랬듯이, 그렇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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