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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양선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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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monfresh Mar 06. 2024

비 온 후 갬

어려움에 처한 A에게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에 들어갔더니 모니터 화면 한쪽에 지역 날씨가 떴다. ‘온양5동 비 온 후 갬’ 위치기반 서비스인 모양이다.


지금 날씨는 바짝 흐렸다. 빗방울도 한두 방울 떨어진다. 그래도 예보 상으로는 ‘비 온 후 갬’이라고 한다. 나는 일기예보가 맞을 거라고 생각한다. 적중률의 높고 낮음을 떠나서 비가 온 후에는 반드시 갠다. 그 시간이 언제인가는 모르더라도 개는 것만은 분명하지 않은가?


갠 날의 풍경을 생각한다. 환한 빛과 따스한 볕, 비가 씻어 낸 말끔한 공기, 맑은 하늘의 흰구름, 그리고 언제까지나 좋은 날이 지속될 것 같은 희망, 나는  풍경 마음속에 훤히 떠올릴 수 있다.


살다 보면 인생도 맑은 날과 흐린 날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늘 맑을 것을 바란다. 흐린 날에는 좌절하고 우울해한다. 다시 맑은 날이 올까? 날씨는 흐려도 다시 맑아진다는 확신이 있는데 우리 인생에 있어서는 그런 확신을 가지기가 지 않다.


우울을 다스려야 상황이 좋아지는 것인가, 상황이 좋아져야 우울이 물러가는 것인가. 나는 후자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나는 상황론자, 환경론자다. 이를테면 성선설이나 성악설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인간이 어떤 본성을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처해진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라고 본다.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이를 대하는 태도도 본래 긍정적이라든가 본래 부정적인 성품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좋은 상황에서는 긍정적인 사람이 되고 어려운 상황에서는 부정적인 사람이 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현실에서 맞닥뜨린 우울에 대해서는 마음을 다스리는 것보다 환경이나 상황이 좋아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 물론 긍정의 가치를 폄하하지는 않는다. 긍정적인 시각은 비 오는 날의 우산과 같다. 우산이 있으면 최소한 흠뻑 젖는 것은 피할 수 있다. 비록 우산으로 날씨를 개이게 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잔뜩 흐린 날의 ‘비 온 후 갬’이라는 일기예보를 믿듯 인생의 흐린 시기 뒤에도 반드시 갤 것이라는 희망이 필요하다. 일기예보처럼 인생예보가 있다면 ‘비 온 후’에는 ‘갬’이 따라오는 것이 당연지사가 아닐까? 그리고 다시 갠 날이 오면 흐렸던 날의 기억은 까마득히 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 일이다. 다만 우산은 언제 또 올지 모를 흐린 날을 대비해 잘 간직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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