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양선생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emonfresh Jul 24. 2023

서이초 사태를 바라보는 입장

우리 사회를 어떤 사람들로 채울 것인가


서이초 사태는 그 자세한 사정이 어떠한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동안 곪을 대로 곪은 교육현장의 문제를 터뜨리는 도화선이 되었다는 것이다.


뉴스 끝에 앵커가 '불신지옥으로 변해버린 학교현장'이라던 말이 가슴에 꼭 박혔다. 선생님들을 자기 자녀의 돌보미쯤으로 아는 학부모, 자녀의 문제를 보려 하지 않고 학교를 나무라는 학부모, 교사의 지도를 아동학대로 신고하고 경찰을 대동하고 오는 학부모, 상대편 아이 또는 교사의 잘못을 밝혀내겠다며 CCTV를 보자는 학부모, 이런 것들이 TV 뉴스에나 나오는 것이 아닌 내가 직접 겪고 있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학교에 그런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학생들과 학부모에게 학교는 고마운 선생님들이 대견한 우리 아이들을 가르치는 소중하고 아름다운 공동체이다. 이번 학기말에도 아이들에게 통지표를 내보내면서 아이들이 생각한 학교생활과 선생님이 바라보는 그 아이의 학교생활을 적어서 같이 보냈다. 아이들과 선생님들의 을 읽으면서 감동과 보람을 느꼈다. 대부분은 그렇다.


어느  교육감이 하는 말이 뉴스에 나왔다. '앞으로 학교장은 교사의 의사와 상관없이 교육청에 신고를 하고 교권보호위원회도 의무적으로 개최해야 합니다.' 교사의 의사와 상관없이 라니 이건 또 뭔지 모르겠다. 지금까지 교사들은 '교사의 의사와 상관없이' 아동학대 신고도 당하고 학부모의 항의도 받고 해 왔다. 이제는 또 '교사의 의사와 상관없이' 교육청에 신고하고 교권보호 위원회를 열어야 한다고 한다. 왜 교사의 의사와 상관이 없어야 할까? 교사는 아무 의사도 가지지 못하고 이리 리고 저리 리는 존재여야만 하나? 지금까지 학교의 문제를 수수방관하면서 학생인권을 존중하라고 교사들의 손발을 묶을 때는 언제고 이제는 갑자기 교권수호에 앞장을 서서 교사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교권보호위원회를 열어야만 한다고 소리를 높인다. 


실제로 우리 학교에서도 교권보호위원 개최를 고려한 적이 몇 번 있었다. 교감선생님이 선생님에게 의사를 물었는데 선생님들은 하지 않겠다고 했다. 교장실에 와서 한참을  하루이틀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교실로 들어갔다. 그 아이 때문에 너무 힘들다는 것이지 그 아이를 혼내주자는 게 아니었다. 그리고 선생님이 힘을 낼 수 있었던 결정적 요인은 학부모의 인정과 지지였다. 그것이 서이초와 우리학교 경우의 다른 점이었다. 참말로 다행한 일이다. 지금은 무사히 여름 방학을 맞이했다. 선생님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은 존중과 감사이지 신고와 위원회가 아니다.  그러니까 내 말은 교권보호위원회가 필요 없다는 이 아니라 그걸로 우리 사회가 교권을 존중하고 보호하고 있다고 쉽게 치부하지 말라는 것이다.


오늘도 퇴근 무렵 시끄러운 소리가 나서 나가 보았다. 학교는 방학이고 캠프에 참여한 아이들도 진즉에 돌아갔을 시간이어서 누가 아직 학교에 있는지 나가보고 집으로 돌려보낼 생각이었다. 나가보니 중학교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이 나를 알아보고 '교장선생님'이라며 반색을 하였다. 어떤 아이는 직전 근무교 졸업생이고 어떤 아이들은 현재 우리 학교를 졸업생이며 한 아이는 인근 초등학교를 졸업했노라고 자기를 소개했다. 유리창이 즐비한 건물 가까이에서 축구공을 튕기고 있어서 거기서는 안되고 운동장에서 공을 차는 것은 무방하니 그렇게 하라고 했다. 그런데 아이들이 서로 자기 말을 하면서 매우 소란스러웠다. '교장선생님, 여기로 오셨어요? 00 학교를 배신하셨네요?' '저희 물 좀 주시면 안 돼요?' '김 0 아세요?' '화장실 좀 가면 안 돼요?' 그러면서도 공을 계속 튕기고 있었다. 화장실에 가고 싶다는 아이들에게 내가 있는 동안 화장실을 쓰라고 했더니 신발을 신은채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신발' 하고 주의를 주었더니 신발을 벗어 들었던 옆의 아이가 '저 잘했죠?' 하기에 '그래. 잘했어.'하고 응대해 주었다. 들어가서도 자기들끼리나 주고받을 말을 하면서 시끄럽게 굴기에 내가 조용히 시키고 예의를 지키라고 했으나 그 효과는 3초도 채 못 갔다. 그리고는 생수 3병을 가져다주면서 나누어 마시라고 하였더니 '내 물은?'이라며 각자 자기 몫을 찾았다.


나는 일부의 특수한 경우도 문제지만 이런 일반적인 상황도 문제가 크다고 생각된다. 그 아이들은 나름 교장선생님을 반길 줄도 알고 더구나 예의를 어길 생각은 없었다. 그냥 평소의 모습이 그런 것이다. 언제부터 대한민국의 학생들이 선생님을 대하는 모습이 그렇 되었을까? 더구나 학교 안에서 말이다. 농담으로 대하고 지켜야 할 예의의 기준을 모른다. 공을 치기에 알맞은 장소, 아는 선생님을 뜻밖에 만났을 때의 인사방법, 남의 건물 안에 있는 화장실을 사용하는 방법, 마실 물을 얻는 적절한 방법,  걸레 청소를 하는 실내를 들어갈 때의 예절 등 그 짧은 시간에 가르칠 것이 아주 많았으나 최소한의 대화예절도 지키게 하지 못했다. 초등학생도 아니고 중학생들 아닌가, 마치 유치원 아이들 같다. 동방예의지국의 아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대부분의 아이들이 학교와 선생님을 고마워하고 학교교육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데도 왜 학교는 위기를 느낄까? 특수한 케이스의 한 두 명이 그렇게 문제일까? 내 대답은 '그렇다'이다. 문제는 그 한두 명이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는 것이다. 특히 선생님들에게 끼치는 부정적인 영향이 너무 크다. 그리고 연중 그 한두 명의 문제가 끊이지 않고 일어난다는 것이다. 선생님들은 놀라고 당황하고 억울해하고 무력한 자기 자신을 용납할 수 없어서 괴로워한다. 이런 상황이 꼭 학교에서만 일어날까?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선량한 사람들의 삶이 특수한 몇몇 사람들에 휘둘리고 있으며, 그러한 사건은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은 사회에서도 일어나며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학교에서도 일어난다.


현장에서 느끼기에 상황이 더욱 나빠지고 있다고 생각되는 것이 있다. 지금까지는 학부모들이 변호사 운운했다면 언제부턴가 선생님들이 교권보호 보험에 가입을 하고 있다. 본인들도 변호사를 사서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교장실로 찾아오는 학부모들이 자신이 법률사무소에 있다, 도청 감사실에 있다, 가족이 교육청에 근무한다, 경찰에 신고한다, 기자에게 알리겠다 등등 여러 가지 행태를 보여준 바가 있다.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면서 국어 수학만 배우는 것이 아니다. 세상 살아가는 방법도 은연중 배운다. 이러한 환경에서 나쁜 것은 쏙 빼고 좋은 것만 배우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이번 서이초 사태를 계기로 우리 사회의 다음 세대를 길러내는 문제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번 서이초의 일은 학생의 인권과 권이 상충되는 그런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요즘 들어서 교권의 침해는 교사로서 아이들을 교육할 권리뿐 아니라 교사의 인권 침해로 까지 볼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현상이지 원인이 아니다.  원인은 우리 사회에 대한 애정과 책임, 나아갈 방향의 정립 등 철학이 부족한 데 있다고 생각한다. 교육은 우리 사회 구성원을 길러내는 일이고, 학교는 현재 그 유일한 체제이고 현장이다. 우리 사회를 어떤 사람들로 채울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건실하고, 너그럽고, 예의 바르고, 끈기 있고, 참을성 있는 사람, 또는 상대방의 입장은 없고 내 인권, 권리는 절대로 침해당할 수 없으며 신고든 제소든 변호사를 고용해서라도 자기가 옳다는 것과 상대방이 그르다는 것을 밝혀내고야 마는 똑똑한 사람들, 누구를 길러내야 할까. 오늘의 대한민국에서는.

매거진의 이전글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