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lemonfresh
Nov 14. 2024
나는 엊그제부터 서울에 산다. '팔십일 서울살기'가 시작되었다. 딸에게 서울 학교의 기간제 교사에 지원하겠다 하니 적극 찬성해 주었고 마침 불러주는 학교가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 살기가 쉽게 가능한 이유는 결혼한 딸이 서울에 살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대학을 가면서 집을 나간 이후로는 그렇게 길게 같이 살아본 적이 없었는데 이런 게 가능한 일이었다니 참 신기하다.
퇴직하면서 제일 먼저든 생각이 이젠 아이들을 도와줄 수 있겠다는 것이었다. 아들네는 가까이 살아서 무슨 일이 있으면 잠깐 다녀오는 것이 어렵지 않다. 하지만 딸은 서울에 살아서 한번 다녀오려면 미리 맘을 먹어야 한다. 더구나 딸이 결혼을 한 뒤로는 일 년에 몇 번 못 본다. 어쩌다 가보면 애보랴 살림하랴 생활이 여간 복잡하지가 않다. 내가 정기적으로 다닐 수 있다면 집 정리도 해주고 외손자를 봐주면서 딸의 생활을 거들어 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동안 나도 바쁘게 살았고, 딸도 독립적인 성향이어서 그럴 기회가 없었는데 딸네 집에 두 달 넘어 머무르다니, 평소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 아주 쉽게 이루어졌다.
여기서 마음에 걸리는 것은 남편과 사위다. 남편에게는 나의 부재가, 사위에게는 나의 존재가 부담이 될 것이다. 남편은 내가 딸네 가서 얼마간 있겠다 하니 그러라고 하였다. 남편은 내가 서울이 아니라 미국에 간다 해도 찬성해 주었을 것이다. 스스로 생활이 가능하기도 하고 본인 퇴직 후 벌써 삼 년간 만들어둔 생활 루틴이 있어서 나의 부재가 문제 되지 않는다. 하지만 사위에게는 아무래도 불편이 있을 것이다. 이 문제는 딸에게 열쇠가 있다. 사위가 일찍 나가고 늦게 들어오기 때문이다. 딸이 좋으면 좋은 것이고 딸이 어렵다면 어려울 것이다.
나는 딸네 집에 가면 갑자기 부지런한 사람이 된다. 설거지도 바로바로하고 식사준비도 뚝딱 잘한다. 반찬 아이디어도 퐁퐁 샘솟고 맛있게 잘 된다. 내 집에서는 하기 싫던 것도 하나도 귀찮지 않다. 퇴근길에 동네 슈퍼에 들러서 찬거리를 사다가 어린이 집에서 하원하는 외손자와 하원후에도 바깥놀이를 더 하려는 다섯살 아들을 따라다녀야하는 지치고 배고픈 딸에게 저녁을 해 먹이는 재미가 쏠쏠하다. 내가 없을 때는 어떻게 하고 살았는지 모를 일이다. 없는 체력에 지치고 들어와서 언제 밥을 해서 애도 먹이고 저도 먹고 했을까.
그래도 나의 서울 살기에 가장 큰 것은 학교다. 이제 학교에 삼일 출근했지만 벌써 스토리에 올리고 싶은 이야기가 무한생성 되고 있다. 아주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풍경이다. 그동안 늘 학교에 있었지만 교실을 떠난지가 벌써 십삼 년 가까이 되었기 때문이다. 수업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것은 교문이나 복도에서 마나는 것과는 다른 경지가 있다. 이를테면 가끔 만나는 할머니의 입장과 직접 애를 키우는 엄마의 입장이 다른 것처럼.
학교에서 내게 맡긴 것은 3학년 도덕과 4학년 영어 수업이다. 모두 열 네 학급의 수업을 하는데 어제로 모두 한 번씩 만나보았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금사빠(금방 사랑에 빠지는)가 틀림없다. 아이들과의 첫 번째 만남에 바로 마음에 들었다. 나는 아이들도 그랬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렇지 않은 아이가 있다면 두 번째 만남에는 반드시 마음을 얻을 것이다.
추기
앞 글에서 사람이 몸만 늙는 게 아니라 마음도 늙는다, 퇴직을 하고나니 마음이 제먼저 늙더라는 생각을 썼었다. 그런데 마음이 늙는 중요한 원인을 찾은 것 같다. 바로 '일과'가 그 사람의 심리적 연령을 좌우한다. 몸이 늙어서 마음이 늙는 것이 아니고 일과가 늙어서 마음이 늙는 것이다. 일과를 회복하고 나니 마음이 늙고 어쩌고 그런 생각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몸은 다시 젊어지지 않아도 마음은 금방 젊어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