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emonfresh Nov 18. 2024

두 학교 이야기

하루씩 수업을 부탁받은 학교가 있어 이틀 새에 두 학교를 가게 되었다.

먼저 학교는 4학년 학급이었다. 그날의 수업계획에 따라 아이들을 가르치면 된다. 아이들은 마치 내가 근무하던 학교의 아이들인 것처럼 바로 래포가 형성되었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보았다면 원 담임선생님과 아이들인 줄 알았을 것이다. 대수롭지 않은 질문에도 아이들 반응이 적극적이고 발표나 활동 결과도 우수했고 아이들도 나도 수업에 만족했다. 십 삼 년 만의 교실 수업에 걱정이 없지 않았는데 그날의 수업은 내가 기대했던 것 이상이었다. 내가 근무하던 학교 아이들도 학습 수준이나 태도나 간에 꽤 좋은 아이들이었다. 그런데 서울학교에 가 본 그날 바로 알게 되었다. 내가 우물 안 선생님이었다는 것을. 나는 (퇴직 전 근무 하던) 우리 학교 애들이 최고인 줄 알았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넓고 좋은 아이들이 많았다. 나는 이걸 알게 되어 무척 기분이 좋았다.


다음 학교는 6학년 학급이었다. 들어가서 인사를 하고 내 이름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아이들 앉은자리대로 이름을 물어 자리표를 만들어 놓았다. 그래야 발표하겠다고 손들은 저 아이는 누구인지, 수업에 참여하지 않고 딴짓을 하고 있는 저 아이는 누구인지, 이름을 불러야 메시지가 정확하게 전달된다. 이 과정은 보통 2,3분 걸리는데 아이들은 그 틈도 놓치지 않고 재잘댄다. 그런데 비교적 조용했다.

"6학년이라서 그런가?"

나로서는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수업에 들어가서도 아이들 반응이 영 따라붙지를 않는다는 것이었다. 먼저 학교의 경험으로 서울 아이들은 다들 하고 싶은 말이 많고 반응이 즉각적인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오히려 선생님 질문에 달근달근 반응을 하는 것이 또래집단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것인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그게 학교의 문화인지 해당학급의 문화인지는 모르겠으되 나는 내 수업이 그런 식으로 흘러가게 내버려 둘 생각이 없었다. 첫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어도 나에게는 네 시간이 더 남아있었다. 두 번째는 수학시간이었다. 그나마 수학은 좀 나았다. 자기 의견을 말하라는 것도 아니고 그룹 토의를 하라는 것도 아니고 문제를 풀고 그냥 숫자로 대답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다음 사회시간도 국어 시간과 비슷한 태도를 보이기에 아까 만들어둔 좌석표를 십분 활용했다. 어차피 수업에 자발적인 협조를 얻을 수 없다면 굳이 요구할 것 없다. 수업에 참여하지 않고 다른 짓을 하는 아이나 아예 책상에 엎드리는 아이, 또는 손을 들지는 않았지만 답 하겠다고 눈빛 신호를 보내는 아이를 찾아 번갈아 지명을 했다.


그렇게 수업을 마무리하고 쉬는 시간이 되었다. 한 남자아이가 아까 수업시간에 보았던 영상을 한번 더 보고 싶다고 내 자리로 왔다. 선생님 컴퓨터에서 실행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모니터를 보여주려는데 내 의자에 같이 앉겠다고 엉덩이를 들이 밀고 걸터앉았다. 집에서 가족들한테나 할 법한 동이어서 웃음이 났다. 덩치는 어른만 한데 하는 짓은 천상 어린애다. 그 바람에 나도 맘이 많이 풀렸다.


어렵게 수업을 마무리하고 끝날 시간이 되어서 내가 피드백을 받고자 아이들에게 물었다.

"오늘 나는 너희들 잘 가르치려고 열심히 했는데 어땠어? 효과가 있었나?"

"선생님 잘하셨어요. 재미있었어요."

"그래? 정말?"

그랬으면 아까 좀 잘하지. 하루 밖에 기회가 없어서 다음에 잘할 수도 없는데.

"그 말을 들으니 반갑다. 고마워!"

아이들을 보내고 교무실에 들러서 인사를 하고 퇴근했다. 좀 전에 하교시킨 아이를 교문에서 만났다.

"ㅎㅅ이, 집에 가니?"

"아뇨. 지금 집에 안 가요."

"그럼 어디? 학원?"

"음, 어디냐면 선생님 마음속?"

무어? 하루종일 시니컬한 대답만 해 대고 다른 애들한테도 핀잔만 날리더니 갑자기 내게 농담을? 하지만 이미 시간 늦었다.

"그래? 알았어. 잘 가라!"

"네. 안녕히 가세요."


이렇게 나의 서울학교 맛보기가 종료되었다. 첫 학교에 갔을 때는 "서울 애들 다 잘하네. 붙임성도 있고." 했던 생각이 두 번째 학교에 가보고는 서울 애들이라고 다 같지 않다는 것, 따라서 "서울 애들"이라고 묶어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두 번째 학교만 경험했다면 자칫 서울애들한테 실망할 뻔했다. 어쩐지 그 학교에서 뒷 마무리가 깔끔히 되지 않은 느낌에 개운하지가 않다. 언젠가 다시 가서 정리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쩌다 서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