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 속으로 사라진 꿈

문과생 성시은의 AWS 정복기

by 혼북헌터 민짱

“그래서 저희 ‘커넥트-AI’는, 기술의 언어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이 더 자유롭게 세상과 연결되도록 돕는, 가장 ‘인간적인’ 솔루션입니다.”


성시은은 등 뒤의 스크린에 뜬 ‘사람을 위한 기술’이라는 마지막 슬라이드를 향해 잠시 시선을 주었다가, 다시 정면을 응시했다.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다. 지난 한 달간 거울 앞에서 수백 번은 더 연습한 클로징 멘트였다.


강남 테헤란로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유니콘 타워’ 32층, VC(벤처캐피탈) ‘넥스트챕터’의 회의실은 바깥의 열기와는 다른 종류의 열기로 후끈했다. 맞은편에 앉은 세 명의 심사역 중, 결정권을 쥔 윤 이사의 포커페이스가 미세하게 흔들리는 것을 그녀는 놓치지 않았다. 지루함에 지쳐 펜만 돌리던 그의 눈에 처음으로 ‘흥미’라는 빛이 스쳤다. 됐다. 이 지루한 오후, 수많은 창업가들의 엇비슷한 돈 이야기와 기술 자랑에 질려있을 그의 마음을, 인문학도 출신인 자신의 이야기가 건드린 것이다.


“성 대표님, 비전이 아주 인상적이네요.”


드디어 윤 이사가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낮고 건조했지만, 무시가 아닌 탐색의 뉘앙스가 담겨 있었다.


“특히 비영리단체를 초기 타겟으로 잡았다는 점이… 뭐랄까, 보통의 AI 스타트업과는 결이 다르다고 할까요. 보통은 돈 되는 시장부터 뛰어드는데.”


“감사합니다.” 시은은 살짝 목례했다. “제가 직접 그곳에서 일하며 느꼈던 어려움들을 해결하고 싶었습니다. 후원금을 모으고, 활동을 알리는 모든 과정이 너무나 비효율적이었거든요. 좋은 기술은 결국 사람을 향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돈보다 중요한 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거니까요.”


“마음을 움직인다… 좋습니다.” 윤 이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마음만으로 사업을 할 순 없죠. 기술적인 안정성은 담보되어 있습니까? 비영리단체라고 해서 사용자가 적은 것도 아닐 테고, 특히 후원 캠페인이라도 터지면 트래픽이 순간적으로 몰릴 텐데. 감당이 가능한 구조인지 궁금하군요.”


예상했던 질문이었다. 시은은 자신감 있게 대답했다.


“네, 물론입니다. 저희 CTO가 그 부분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대비하고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설계했습니다.”


그녀는 그렇게 대답하면서, 지금 이 순간 경기도 지축의 작은 사무실에서 심장 졸이며 대기하고 있을 박서준을 떠올렸다. ‘서준 님, 제발… 버텨줘.’


윤 이사는 만족스러운 듯, 혹은 마지막 관문을 통과시켜주겠다는 듯 말했다.


“좋습니다. 그럼, 백문이 불여일견이죠. 실제 서비스를 한번 볼 수 있을까요? 저희 쪽 테스트 계정으로 지금 바로 접속해서, 부하가 가장 많이 걸리는 콘텐츠 생성 기능을 한번 사용해 보겠습니다.”


올 것이 왔다. 마지막 시험대. 시은은 기다렸다는 듯 미소 지으며 노트북을 돌려 윤 이사에게 보여주었다. 동시에, 테이블 아래로 감춘 손으로는 스마트폰을 열어 개발팀 슬랙 채널에 미리 약속된 메시지를 날렸다.


[성시은] : 서준 님, 지금입니다! ‘시나리오-알파’ 실행해 주세요! 최대 트래픽으로 부탁드립니다!


경기도 고양시 지축역 ‘현대프리미어캠퍼스’. 창밖으로 보이는 북한산의 푸른 능선과는 어울리지 않게, 20평 남짓한 사무실 안은 전쟁터 같았다.


“왔다! 대표님 메시지!”


이철민이 외쳤다. 그의 자리 위에는 빈 에너지 드링크 캔이 피라미드처럼 쌓여 있었다. 공동창업자이자 CTO인 박서준은 마른침을 삼키며 검은 터미널 창에 마지막 명령어를 입력했다. 그의 등 뒤, 사무실 한구석을 차지한 중고 랙 서버 한 대가 비행기 이륙 직전의 굉음을 뿜어내고 있었다. ‘이노베이트’의 심장이자, 유일한 자산이었다.


“대표님, 서버가 버텨줘야 할 텐데요. 어제도 새벽에 잠깐 죽었잖아요.”


이철민이 초조하게 모니터 속 실시간 CPU 사용률 그래프를 바라봤다. 바늘이 미친 듯이 붉은색 위험 구간을 향해 치솟고 있었다.


“괜찮아. 어제 내가 밤새서 메모리 누수 잡고, 불필요한 프로세스 다 죽여놨어. 이 정도는… 이 정도는 버텨야지. 버텨야만 해.”


서준의 말은 주문에 가까웠다. 그는 낡은 서버를 향해 거의 기도를 하고 있었다. 제발, 딱 10분만. 10분만 버텨주면 우리에게 미래가 생긴다.


하지만 낡은 기계는 신의 응답 대신, 현실의 비명을 토해냈다.


피식.


마치 풍선에서 바람 빠지는 듯한 허망한 소리. 그 소리와 함께, 사무실을 가득 채웠던 서버 팬의 굉음이 거짓말처럼 멎었다. 갑자기 찾아온 정적에 서준과 철민은 서로를 쳐다봤다. 그리고 그들의 코를 찌르는, 익숙하지만 맡고 싶지 않은 냄새. 전자제품 기판이 타들어 가는 매캐한 냄새였다.


모니터 속에서 춤추던 모든 그래프가 얼어붙었다. 서버의 상태를 알리던 작은 초록색 LED가 미친 듯이 깜빡이다가, 이내 모든 빛을 잃었다. 죽었다. 심장이 멎었다.


강남의 미팅룸. 성시은의 노트북 화면에 ‘502 Bad Gateway’라는, 세상에서 가장 차가운 여섯 글자가 떠올랐다. 방금 전까지 부드럽게 움직이던 서비스 화면은 온데간데없었다. 시은의 심장이 32층에서 지하실까지, 케이블 끊어진 엘리베이터처럼 곤두박질쳤다.


“어….”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잠시… 잠시 네트워크 연결이 불안정한 것 같습니다. 와이파이를 다시 잡아보겠습니다.”


시은은 애써 미소를 지으며, 떨리는 손으로 와이파이 아이콘을 클릭했다. 연결 상태는 ‘최상’이었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새로고침 버튼을 연타했다. F5, F5, F5. 화면은 요지부동이었다. 등줄기에서 폭포수 같은 식은땀이 흘렀다.


테이블 아래의 스마트폰이 미친 듯이 진동했다. 확인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확인해야만 했다. 슬랙 앱 아이콘 위에는 붉은색 ‘1’이 떠 있었다. 박서준이었다.


[박서준] : 대표님. 서버… 터졌습니다. 물리적으로요. 연기 나고, 냄새나고… 그냥 죽었습니다. 죄송합니다.


터졌다고? 물리적으로? 연기가 난다고?


시은의 머릿속이 하얗게 비었다. 마치 낡은 텔레비전이 꺼지기 직전처럼, 모든 소음과 생각이 한 점으로 빨려 들어가 사라졌다.


윤 이사의 미소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시계를 한번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슬로우 모션처럼 보였다.


“성 대표님.”


그의 목소리는 방금 전보다 한 톤 더 낮아져 있었다.


“‘인간적인’ 솔루션도 중요하지만, 그전에 ‘작동하는’ 솔루션이 먼저 아닐까요?”


그 한마디가 비수처럼 시은의 심장에 박혔다.


“오늘 발표는 잘 들었습니다. 결과는… 나중에 연락드리죠.”


그의 마지막 말은 사실상 사형 선고였다. ‘나중에’는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그는 이미 다음 미팅을 위해 머릿속을 정리하고 있었다. ‘이노베이트’라는 이름은 그의 기억 속에서 1분 안에 삭제될 터였다.


그날 밤, 지축의 사무실에는 침묵과 탄 냄새, 그리고 세 젊은 창업가의 절망만이 가득했다. 박서준은 고개도 들지 못한 채, 까맣게 그을린 서버의 파워 유닛을 망가진 장난감처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철민은 평소의 호탕함은 간데없이 구석에서 무릎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대표님.”


서준이 간신히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모래처럼 까끌까끌했다.


“제가… 제가 좀 더 제대로 확인했어야 했는데. 중고로 사는 게 아니었는데….”


시은은 대답할 기운도 없었다. 그녀는 텅 빈 눈으로 죽어버린 서버를 바라봤다. 저 고철 덩어리가 이노베이트의 전부였다. 인문학을 전공하고, 비영리단체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을 쓰던 그녀가, 세상의 비효율을 기술로 해결하겠다며 모든 것을 걸고 시작한 꿈. 그 꿈이 오늘 한 줌의 재가 되어버렸다.


“우리… 이제 어떻게 해요?” 철민이 거의 울먹이며 물었다.


어떻게 하긴. 접어야지. 월세 보증금 빼서 직원들 마지막 월급 주고, 남은 돈으로 소주나 마셔야지. 시은의 입에서 그 말이 튀어나오려는 순간, 서준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대표님.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의 목소리에 시은과 철민의 고개가 번쩍 들렸다.


“사실… 전부터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클라우드라는 게 있습니다. 아마존이나 구글 같은 데서 서버를 빌려 쓰는 방식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서버를 직접 둘 필요 없이….”


“클라우드?” 시은이 되물었다.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들리네요, 지금 우리 상황에. 그거 돈 많이 드는 거 아니에요? 우리 이제 서버 살 돈도 없는데.”


“아니요, 그 반대입니다. 오히려 초기 비용은 거의 안 들어요. 쓴 만큼만 내는 거라….” 서준은 답답한 듯 말을 이었다. “문제는… 제가 그걸 제대로 구축해 본 경험이 없다는 겁니다. 학교에서 배우고, 혼자 토이 프로젝트는 해봤지만… 개념만 아는 거랑 수백, 수천 명이 쓸 상용 서비스를 올리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라서요.”


그는 잠시 숨을 골랐다.


“자칫하면 요금 폭탄을 맞을 수도 있습니다. 설정 하나 잘못해서 한 달에 수천만 원이 청구됐다는 괴담도 들었고요. 보안 설정 한번 잘못하면… 오늘보다 더 큰일이 터질 수도 있습니다. 제가… 제가 그걸 혼자 책임질 자신이 없었습니다, 대표님. 그래서 차라리 눈에 보이는 이 낡은 서버를 붙들고 있었던 겁니다. 죄송합니다.”


그의 고백은 희망이라기보다는 또 다른 절망처럼 들렸다. 그림의 떡. 눈앞에 구명정이 보이는데, 그걸 운전할 줄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때, 철민이 뭔가를 떠올린 듯 벌떡 일어났다.


“잠깐만요! 저 아는 분 있어요! 저희 학교 전설이었는데, 지금은 뭘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 형이라면 알지도 몰라요! 학교 다닐 때 별명이 ‘와룡’이었어요. 제갈량처럼 모든 걸 꿰뚫어 본다고. 졸업하고 네이버 같은 데 갔다가, 실리콘밸리에도 있다가… 지금은 그냥 조용히 지낸다는 소문만 들었는데….”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 아니, 동아줄일지도 모른다.


“연락처… 알아요?”


시은의 목소리가 떨렸다. 철민은 필사적으로 스마트폰 연락처를 뒤졌다. 몇 분 뒤, 그는 ‘안민준(와룡선배)’이라는 이름을 찾아냈다.


시은은 떨리는 손으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몇 번의 긴 신호음 끝에, 모든 감정이 거세된 듯한 무심하고 건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저… 안녕하세요. 혹시 안민준 씨 되시나요? 저는 이노베이트의 성시은이라고 합니다. 이철민 씨 소개로….”

수화기 너머로 잠시 침묵이 흘렀다. 시은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이노베이트… 아, 오늘 서버 터진 회사요?”


시은의 얼굴이 화끈거렸다. 소문이 벌써 거기까지 퍼진 모양이었다. IT 업계는 생각보다 좁았다.


“네… 맞습니다. 부끄럽지만… 맞습니다. 혹시… 정말 염치없지만, 잠깐 뵙고 조언을 구할 수 있을까요?”


“제가 조언할 게 뭐가 있다고.”


거절의 기운이 역력했다. 시은은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30분이면 됩니다. 아니, 10분이라도 좋습니다. 저희가 지금… 벼랑 끝에 서 있습니다.”

한참의 침묵. 시은은 숨조차 쉴 수 없었다. 전화기 너머로 작게 한숨 쉬는 소리가 들렸다. 포기한 듯한 목소리였다.


“내일 오후 2시. 방배동 카페 골목 ‘리빈’으로 오세요. 딱 30분입니다.”


전화가 끊겼다. 시은은 희망인지 절망인지 모를 감정에 휩싸여, 까맣게 죽어버린 서버를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벼랑 끝에서, 아득한 안개 너머로 희미한 동아줄이 내려온 것 같았다.


▶ 1화 기술 TIP

온프레미스 서버 (On-Premise Server): ‘사내 구축형 서버’라고도 합니다. 기업이나 개인이 직접 서버 하드웨어를 구매하여 자신의 사무실이나 데이터 센터에 설치하고 운영하는 방식입니다.

장점: 물리적인 제어권을 가질 수 있고, 내부망에서 운영 시 보안에 유리할 수 있습니다.

단점: 초기 구매 비용(CAPEX)이 많이 들고, 유지보수(전기세, 냉각, 부품 교체, 보안 업데이트 등)를 모두 직접 책임져야 합니다. 서버 성능을 높이거나(Scale-up) 개수를 늘리려면(Scale-out) 추가 구매와 설치에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소설 속 ‘이노베이트’의 중고 서버가 바로 이것입니다.

502 Bad Gateway: 사용자가 웹사이트에 접속하려고 할 때, 사용자의 요청을 최종 서버로 전달하는 중간 문지기(게이트웨이) 서버가, 최종 서버로부터 ‘비정상적인 응답’을 받았을 때 발생하는 에러입니다. 소설에서처럼 서버 자체가 다운되었을 때 흔히 볼 수 있는 메시지입니다. 문지기가 식당에 주문을 넣으려는데, 주방에서 아무 대답이 없거나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는 상황과 같습니다.

기술 부채 (Technical Debt): 소프트웨어 개발에서, 장기적으로 더 나은 접근 방식을 사용하는 대신 당장의 빠른 출시를 위해 쉬운(하지만 제한적인) 해결책을 선택함으로써 미래에 치러야 할 추가적인 재작업 비용을 의미합니다. 마치 급하다고 이자가 비싼 단기 대출을 쓰는 것과 같습니다. 당장은 위기를 넘길 수 있지만, 나중에 더 큰 이자(버그 수정의 어려움, 확장성 저하, 유지보수 비용 증가)를 갚아야 합니다. 박서준이 "일단 되게 만들고 나중에 고치자"고 생각하며 쌓아온 미봉책들이 결국 서버 다운이라는 파산으로 돌아온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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