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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gsin May 09. 2024

이야기의 비옥성





추상적으로나마 연기와 연극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다. 대학 때 클래식 음악이나 도자기 등에 대해 우연히 관심을 가지게 된 것처럼 아련한 관심일 뿐이었다.


음대나 도예학과 건물에 우연히 들어섰다가 흘깃 실습실 안을 들여다 보고는, 가슴이 쿵쾅거리고 서늘한 땀이 맺히곤 했는데. 그건 정말 설렐 때 한해 나오던 신체화 증상이었다.

 

이도 그런 식의 깊이의 차원이지만. 최근에는 아침이슬을 지은 김민기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배우들의 세계에 더욱 어떤 호기심을 느끼게 되었다. 지금도 그렇겠지만 팔구십 년대의 연극배우들은 눈물이 날 정도로 적은 돈을 받고도 얼마나 진지하고 진정하게 연기에 임하던지.


‘학전’이라는 극단에 들어간 배우들은 다 김민기에 의해 짜인 연기 공부 프로그램을 먼저 이수해야 했다. 판소리부터 몸으로 표현하는 행위예술적 훈련까지. 아무리 경력이 있는 배테랑 연기자라도 그 극단에서 올리는 무대에 서려면 기본적이고 근원적인 연기 공부를 다시 해야 하는 듯했다. 가진 것은 청춘뿐인 그들이 하나 돈도 되지 않는 연기를 대하는 태도가 무척 신비롭고 아름다웠다.


그렇게 연기에 대한 책 한 권 보지 않은 채 나는 또다시 뻔한 영화나 드라마 콘텐츠들을 정크푸드를 먹듯이 소비하곤 했다. 불안을 잊기 위해 질겅질겅 껌을 씹듯이 보던 것들 중에 하나의 극작을 끝까지 본 것은 거의 없었다.


볼 게 없었다. 구독 플랫폼 안에 아무리 많은 콘텐츠들이 있어도 조금 보다 보면 금방 식상해졌다. 그렇게 스팸 메일을 지워나가듯 추천 콘텐츠들을 조금씩 지워나가다가 또 뻔할 것 같은 드라마 하나를 열어보았다.


Her와 같은 류의 근미래 배경의 드라마였다. 아니나 다를까 또다시 식상해지게 하는 포인트가 찾아왔다. 작품에서 적지 않은 비중이 있는 역을 맡은 남녀 배우가 걸어가면서 대화를 하는 신이었다. 발연기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들은 다만 한 테이크만 연습한 듯한 연기를 하고 있었다. 아무리 오십 초 정도의 원 테이크였다고 해도, 작품 전체를 소화했다는 듯한 인상을 찾을 수 없었다. 도무지 내면의 이야기는 찾을 수 없는 멀쩡한 허물뿐이었다.


그렇게 느낀 근거는 배우의 발음이나 발성 톤, 표정 같은 것이었는데. 그것들이 어우러져 하나의 표현으로 드러나고 있었다. 그리고 엉뚱하게도 나는 그런 지점들에서 '책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저들은 보이는 것들의 관리에 에너지와 돈을 쓸 게 아니라 먼지를 뒤집어쓰고 허름한 청계천 책방을 돌아다니며 책을 좀 봐야 돼.


그들의 존재로써 독서나 지적인 소양 같은 것이 이미 다 드러나고 있었다. 등골이 서늘할 만큼 정직한 세계였다. 멀쩡하게 빼입은 드레스. 베스트를 받쳐 입은 부유한 느낌의 슈트. 다 무색했다. 도톰한 입술이나 탱탱하고 광택이 나는 피부나 유럽풍의 컬이나 다 무색했다. 나는 일체 모르지만, 리프팅이라고 하는 것을 받았는지 얼마짜리 시술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다 무색했다. 피트니스로 단련된 상체의 균형감이나 정리된 눈썹이나 진한 눈매나 값비싼 vest나 타이나 다 무색했다.


배우가 책을 읽지 않고 이야기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런 이들의 연기를 통해서 무엇을 볼 수 있는 걸까. 그런 식의 연기가 어떤 한계를 가지는 것일지, 그런 연기의 최대치란 어디까지일지. 다 여실히 보였다.


왜 일부 유럽 문화권에서는 요즘 시끄러운 H사와 같은 대형 엔터테인먼트 회사에서 내놓는 대중음악을 두고 통조림 캔 같은 음악이라고 조롱하는지-까지. 큰 엔터 회사 같은 대형 교회들의 정크 설교들까지. 50초 정도의 짤막한 원 테이크 연기를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옛날 대학로 극단에서 활동하는 배고픈 연극배우의 연기와, 높은 개런티를 받고 연속극에 출연하는 요즘 배우들의 연기는 어떤 지점에서 다른지. 좋은 대중음악은 왜 죄다 옛날 것들인지. 다른 분야 출신의 겸업 배우들이 훈련받고 공부해서 하는 연기는 아무리 매끄러워도 왜 페이소스가 없는지. 대중음악은 클래식과 어떤 차원에서 차이가 있는지. 배우 풀에 전형적으로 예쁜 마스크는 얼마든지 많지만, 아름다우면서도 지적인 마스크는 왜 드문지. 그런 점들을 고민해 보면 방을 정리하는 일부터 살아간다는 거대한 질문에 이르기까지, 거시적인 태도를 고민하고 정해볼 수 있다.


볼 것이 많은 세상이다. 세상의 도파민의 유혹을 이기고, 자기가 말하고 표현해야 하는 분야에 대해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것의 본질을 이해하는데 결정적 기여를 한다. 진득하거나 캐주얼하거나, 무엇을 표현하기 위해 어떤 식의 뜨거운 독서를 하고 눅진한 사유를 하고 사람들 앞에 서는 일은 가장 기본적이고 본질적인 태도에 속한다. 그러니까 정직함의 문제다. 누구도 비껴갈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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