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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gsin Jun 27. 2024

생을 생으로



힘들었던 순간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너무나 아름답고 행복했던 시간이었다는 것을 깨달을 때가 있다. 옛날에. 이제는 기억도 잘 나지 않는 누군가와 헤어진 지 이제 몇 달 차가 되었던 어느 새벽. 그날들은, 왜 그랬는지. 그 사람과 자주 만나던 동네를 어물쩡거리다가 이제 집에 지하철을 타려면 발걸음을 서둘러야 하는 시간이 되었을 때였다. 하지만 어쩌다 막차도 놓치고, 버스도 놓쳤다. 남은 건 새벽 심야 버스 뿐이었는데, 왜인지 그냥 새벽을 그 지역에서 새고 동이 트면 지하철을 타고 가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야 버스가 너무 많은 정거장을 거쳐가야 했기에 힘든 버스에 몸을 싣고 싶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날은 그냥 좀 여유를 갖고 카페 같은 곳에서 쉬다가 집에 가고 싶었던 것 같다.


기억나는 것은 너무나 외롭고 스산했던 감각들 뿐. 혼자였다.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는데, 그날 새벽따라 혼자라는 감각에 몸서리를 치면서, 한편으로는 울렁거리는 피곤함을 견디면서, 작은 휴대폰 화면으로 미 비포 유라는 영화를 밤새도록 보았는데. 너무 축축했다. 피곤하고. 마음도 몸도 날씨도 기분도 미래도 너무나 축축하기만 했다. 그렇게 손님도 거의 없는 한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싱겁게 감동적이었던 것으로 기억되는 영화를, 두 시간 내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보았고. 지하철이 시작되어 새벽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던. 아주 평범했던. 그저그랬던 한날이었다.


그런데 문득 그 축축했던 새벽이 그리웠다. 지금 서 있는 날에서 보면 그날이 얼마나 행복했던 날이었는지. 가슴이 사무치도록 다가왔다. 알고 보면 지금도 행복한 날들이라는 뻔한 교훈. 그러니까 오늘을 최선을 다해서 살라든지. 지금의 힘든 날들도 미래에서 돌아보면 돌아가고 싶을 행복한 날들 중 하루라든지. 그런 말들보다, 이제 내가 깨닫는 것은. (오늘의 우울하고 음습한 이 날들도 훗날 그렇게 기억되리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은 너무나 고통스럽고, 미래에도 이 고통은 조금도 희석되지 않고 잊히지 않는 날들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제 내가 깨닫는 것은. 얼어있지 말자는 것. 축축한 것을 느끼고, 눅눅한 것을, 절망과 고통과 괴로움을 다 느끼며 살자는 것.


많이 웃고, 처절하게 울고. 생을 생으로 대하자는 것. 무엇보다 남다른 시선을 갖자는 것. 사람과 인생을 바라보는, 남다른 시선을 갖자는 것. 자신을 아프게 바라볼 줄 알고, 그런 시선으로 다른 사람들을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이 되자는 것. 영혼의 가난이 무엇인지 똑바로 바라보자는 것. 고난과 고통을 통해 넓고 깊은 마음을 갖을 줄 알게 되고, 그렇게 후회 없이, 살아있는 동안 사랑하자는 것.


무엇이든지 껴안자는 것. 껴안고 살다가 껴안고 잠들자는 것. 생을 생으로 대하자는 것. 강인하게, 철저히. 강압적으로라도 사랑해야 한다는 것. 그게 생의 명령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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