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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gsin Jul 22. 2024

젤리 팬티 장마

소년의 순간




배터리는 팔 프로밖에 없다. 나는 나의 방앗간에 있고, 하리보 젤리를 먹고 있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다. 힘든 날들을 보내기 시작한 이후로 가장 많은 비였다. 접이식 우산을 썼지만 바지 밑으로, 거의 치골 선 아래로는 다 젖었다. 엉덩이와 로퍼 안까지 축축해졌을 정도다.


김광민이 좋다. 역시 세상에서 사라져버리고 싶을 만큼 힘든 날이나, 비오는 날이나, 그 두가지가 겹친 날에는 김광민만한 것이 없다.


https://open.spotify.com/track/1AZ6GSyLfzgqUwq0FdvXGz?si=ECZcYiR2TgqYukA8G5HDrA&context=spotify%3Aalbum%3A6izhZttjFPtEYoPrslDae4




좋은 소식 하나는 방에 에어콘을 달았다는 것이다. 이제 맥도날드나 스타벅스로 도망가지 않아도 된다. 적어도 더위 때문에는 말이다.


하지만 도망쳐야 할 이유는 얼마든지 더 있을 수 있다. 가령 사랑하는 가족의 잔소리 같은 것. 그러니까 나쁜 소식은 좋은 소식과 겹치는데. 에어콘을 설치하면서 옮긴 책장과 책과 박스들의 처치와 정리에 대해, 인생 사전에 융통성이란 단어란 없는 아버지의 잔소리가 격심해져 필자가 일일 난민이 되었다는 것이다.


지친 몸을 쉬게 하고, 이제 막 정리하려고 했는데. 마음 잡고 공부하려고 하는 순간, 공부하라는 잔소리가 덧입혀지던 학창시절에서 어쩌면 이토록 한 치도 달라지지 않았는지. 어떤 생의 빼곡함과 일관성 같은 것이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그렇게 더위보다 더운 더움을 피해 나는 안에 별것도 들어있지 않은 백팩을 그대로 메고, 눈에 가장 먼저 보이는 접이식 우산을 들고 도망치듯 집을 뛰쳐나갔다. 이렇게 많은 비가 내릴 줄 모르고 말이다.


앞으로, 앞으로. 몇 백 미터쯤 걸어나가자 노아의 홍수처럼 비가 내렸다. 너무 많은 비였다. 무릎 아래로는 순식간에 다 흠뻑 젖어버렸다.


이미 많이 젖었지만 잠시라도 비가 안 내리는 곳을 지나고 싶어 지하철역으로 올라갔다. 지하철역 출구 계단에는 우산을 손에 든 사람들이 질서정연하게 줄을 서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 장면이 미웠다. 이상하게도 그랬다. 한심하고, 답답하고, 어리석게 느껴지기도 했다. 고작 비 때문에 지하철역에서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사람들. 겁쟁이들 같으니라고.


비를 두려워한다는 것은 행복하다는 뜻이다. 영혼이 캄캄한 사람은 비를 의식할 만큼 마음이 한가롭지 않다. 옷이 다 젖을 만큼 비가 내려도 알아채지 못한 채 멍하니 앞으로 걸어가곤 한다. 비를 의식하고 피하려는 것은 그 자체로, 비에 몸이 젖는 것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보다 상대적으로 행복한 상태에 있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


또 그것은 안일하다는 뜻이다. 평화를 얻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 한가롭게 비를 기다리려고 하다니. 종합적으로, 그러니까, 그들은 안일한 행복만 추구하는 안일한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라는 식의 과장된 의식에 사로잡혀 미워진 것이다. 또는 지금은 잘 떠오르지 않는 모종의 경험이나 이유로 인해 그렇게 빗속으로도 뛰어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모험심이 없는 사람들을, 나는 좋아하지 않게 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보란듯이, 한 치의 멈춤도 없이 줄까지 지어 멀뚱하니 서있는 사람들 사이로 걸어나갔다. 그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씩씩하게. 씩씩거리며. 당신들은 겁쟁이들이라는 듯. 고작 좀 많이 내리는 비를 두려워하는 애송이들이라는 듯.



https://open.spotify.com/track/7nkig3LgIo9ItHGAG8BEwi?si=z5F7WbVlTnagZ0g_LWXybA&context=spotify%3Aalbum%3A6izhZttjFPtEYoPrslDae4



겁쟁이들은 까맣게 모르는 것이 있는데. 세상에서 가장 두렵지 않은 것이 비다.


그러니까 내 안에는 이런 의식의 반대편 저 끝에 소년 시절의 순수와 열정이 아로새겨져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많은 비가 내리는 날이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풍요로운 유년의 날들 중 한날의 기억.


아마 열세 살 때였을 것이다. 여느때처럼 친구들과 친구 형의 친구인 형들과 함께 축구를 하던 여름날.




오늘처럼 그날도 별안간 장대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비를 피해 공을 들고 운동장 한 구석의 학교 현관으로 달려갔다. 소나기일 줄 알았던 비는 한참을 기다려도 그치지 않았다. 스마트폰도, 날씨 앱도 없던 때였으니까. 더구나 그런 것이 있다고 해도 째째하게 날씨예보나 보면서 축구를 할 우리들도 아니었던. 그런 때였으니까. 그것이 소나기일지 며칠 동안 그치지 않을 장맛비일지, 우리는 알 수 없었다.


비는 점점 거세져 어느새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내리고 있었다. 그렇게 꼼짝없이 초등학교의 현관에 갇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할 즈음이었다. 누군가가, 골탕먹이기 게임을 제안했다. 드리볼을 할 때 거미처럼 손으로 공을 가리는 기술을 쓰던 현덕이형이었을까. 다른 어떤 형의 제안이었을까. 그 시절 우리가 하던 대부분의 장난과 게임의 주제는 골탕먹이기였으니까. 우리는 그 순간에도 자연스럽게 그것을 주제로 떠올렸다. 무엇을 하든 누군가를 골탕먹여야 선명한 재미가 있을 것이란 깔대기적 사고 방식은 우리 모두의 신성한 공동체 의식이었다.




형식은 가위바위보를 해서 1등 한 사람이 공을 들고 운동장으로 뻥- 차면 꼴등을 한 사람이 주워오는 것이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팬티만 입고-였다.


팬티가 룰이었는지, 자발적 선택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한치 앞도 안 보일만큼 비가 내리던 날. 옷을 최대한 벗고 달려가야지 그나마 비가 그치고 집에 갈 때는 덜 젖은 몸으로 집에 갈 수 있을 것이고, 우리는 부끄러운 것도 두려운 것도 하나도 없었으니까. 옷을 벗고 빗속으로 달려가는 것이 우리에게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첫 가위바위보를 했고. 그 게임은 우리 모두와, 각자의 역사에 남을만큼 재밌는 게임이 되었다. 제일 먼저 가위바위보 1등을 한 누군가가 공을 뻥 찼다. 꼴등을 한 아무개가 처음에는 떼를 썼던 것 같다. 정말 가야 하냐느니, 한 번만 봐달라느니. 몇 번을 되물으며 한참을 주저하고 망설이다가, 봐줄 기색이 전혀 없는 우리의 기운에 밀려 뒤돌아섰다.


이윽고 한동안 운동장을 바라보더니 훌러덩 옷을 벗고, 빗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솨-

다다다다다다-




그 모습이 너무나 웃겨 우리 모두는 배가 아프도록 웃었다. 팬티를 입고 운동장 한가운데, 몇 걸음 앞이 안 보일 정도로 내리는 빗속으로 뛰어가는 친구의 뒷모습이 그렇게까지 웃긴 장면이 될 수 있으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우리 중에 아무도 없었다. 그것이 수십 년 후 힘든 어떤 날을 치유할 수 있을 것이란 것도, 소년의 날들의 나는 전혀 알지 못했다.


누군가가, 그것도 모르는 사람이 아닌 친구가, 헐벗고 운동장 복판으로 달려가 공을 주워오는, 생생한 현실이 주는 감동은 어떤 해외 여행도 대신할 수 없는 장쾌함이었다. 정말 뼛속까지 속이 다 시원했다.


초등학생과 중학생이라고 왜 세상에 대한 두려움과 답답함이 없었으랴. 우리 모두가 같은 것을 느꼈을 것이다. 무언가 속에 맺힌 것들이 뻥 뚫리는 느낌 같은 것. 온 몸과 영혼이 울리는 듯한 페이소스.




새로운 꼴찌가 달려갈 때마다, 배의 앞가죽이 뒷가죽에 닿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우린 웃었다. 너무 웃긴 순간은 슬픔과도 오묘하게 맞닿아 있는 것인지. 이제 웃다못해, 거의 다 울고 있었다.


꼴찌는 하나도 부끄러워 하지 않았다. 어차피 운동장 밖에서는 우리가 누군지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비가 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또 내리는 비가 너무 시원했기 때문에. 너무 웃겼기 때문에. 너무 호쾌하고 신났기 때문에. 부끄러음 같은 것은 이제 아무것도 아니었다.


현관 앞에서 내다보이는 광활한 진흙탕의 운동장과, 운동장 한복판을 지나 수십 미터 너머 운동장 구석까지 치달아가며 떼굴떼굴 굴러가는 공과, 몽환적으로 느껴질 만큼 새하얀 장대비. 그 장엄한 전경이 암담해 보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은 묘하게도, 거부하기 어려울 만큼 우리를 유혹하는 자연의 한 장면이었다. 그것을 지긋이 바라보다가 이내 내달리지 않는 친구와 형은 한 사람도 없었다.


여름 장맛비에 생쥐처럼 젖은 우리는 어느새 윗니와 아랫니가 드드드드 부딪히고 몸이 오돌돌돌 떨리면서도 게임을 지속했다. 한 명이 젖기 시작한 이상, 아마 거의 모든 친구가 빗속으로 뛰어들어갈 때까지 해야 했을 것이다.


그렇게 나의 순서도 왔다. 지금 저 운동장으로 내달려 뛰어들어가지 않으면 어쩌면 평생 후회할 것이란 생각을 했다. 묘한 도전 의식이었다. 형들과 친구들 모두 다 같은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 인생에 이렇게 완벽히 소년적인 순간이 이제 다시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말이다.


그런 일은 정말 인생의 마지막이었다. 인생은 온통 두려움뿐이었다. 내 영혼에 녹아든 그날의 경험을 꺼내 쓰는 일이 너무도 빈번히 절실했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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