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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러지

재채기, 콧물, 온도. 그리고 적정함에 대해서

by jungsin



나는 가령 열대어 같은 인간이다. 엔젤 피쉬나 키싱 구라미처럼. 몸 속이 투명하게 보이기도 하고, 숨이 멎을 정도로 신비로운 빛깔을 띄거나 아름다운 줄무늬를 가지기도 한 그들처럼. 물의 온도나 청정함이 조금만 달라져도 컨디션이 기민하게 달라지는. 사료를 너무 많이 뿌리거나 너무 적게 뿌리거나, 며칠만 신경을 쓰지 않으면 수족관의 수면 위로 둥둥 떠버리고 마는 그들처럼 말이다.


겉으로는 여느 남자들처럼 털털하고 무심한 것 같지만, 또 실제로 여러 면에서 그렇기도 하지만. 그보다 비화학적인 감정이나 화학적인 감각에 있어 모두 다, 나는 대체로 무척 기민하고 예민한 편이다. 어릴적 축농증으로부터 성인기의 알러지성 비염까지, 끊임없이 이어져온 호흡기성 질환은 나의 그런 예민함의 신체화일지도 모르겠다. 정신적으로는 강박적이고 성격적으로는 외골수에 고지식한 면면들이 다, 나의 본질적인 성질을 대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짐작한다.


오늘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신체적이고 정신적인 나의 감각의 엔젤피쉬가 배를 드러내며 수족관의 수면 위로 둥둥 뜬 날이었다. 오전 댓바람에 집을 나서서 하루종일 돌아다니는 동안 크리넥스 티슈 1/3 통은 쓴 것만 같다. 올 들어 가장 극심한 비염이었다.


백화점 지하 마트 코너에서는 유모차를 밀고 있던 우아한 한 젊은 여성이 나의 천둥 같은 재채기 기운에 화들짝 놀라며 몸을 움츠렸다. 사과라도 하고 싶었지만 연이어 느껴지는 재채기 전조 증상(콧구멍 끝의 간지러움과 파르르 떨리는 몸)에 서둘러 일본 과자 코너를 떠나야만 했다. 들르는 화장실마다 세면대에서 말간 알러지성 콧물을 쉼없이 풀어야 했다. 재채기가 나오려 할 때마다 재빨리 주머니에서 집히는 대로 휴지 뭉텅이를 꺼내어 코와 입을 틀어막았다.


밖에서 뭘 했는지는 하나도 생각나지 않고. 전쟁통처럼 비염과 온종일 사투를 벌이기만 한 것 같다. 만신창이가 된 몸과 마음으로 석양녘이 되어 겨우 집에 들어왔다. 편한 면티와 칠부 바지 잠옷으로 갈아입고 또 한바탕 재채기를 하고 코를 풀었다. 수건에 찬물을 적셔 목도리 도마뱀처럼 목에 두르고, 방에 들어와 자리를 펴고 앉아 달고 쓴 것들을 집히는 대로 입안에 진탕 들이부었다. 쌍화차 분말에 꿀을 퍼넣은 달디단 차 한 잔, 인도네시아산 수마트라 분말 커피, 베트남산 와플 과자, 일본산 땅콩 카라멜.


마침내 이렇게 무거운 이불을 덮고 누워 글을 쓴다. 비로소 내가 되었다. 신기하게도 투명한 순수 콧물과 호랑이 재채기가 잦아졌다. 이제 불편한 것은 이따금 느껴지는 코 언저리의 간지러움과, 이런 상황에서 눈치 없이 물고 숨기를 반복하며 괴롭히는 늦가을 모기 한 마리 뿐.


잠시 뒤 더 안정이 될 즈음, 따끈한 수마트라 커피 한 잔을 더 타서 라떼 잔에 코를 뭍고 마시면 신비로울 정도로 극성스러웠던 수능날의 비염은 종식이 될 것 같다. 다시 말해 어떤 적정함에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내게도 적정함과 무탈함이란 이토록 어려운 것이다. 귀족적이라든지 아랍 왕자라든지. 비싼 테이크아웃 커피를 달고 다니는 것을 보거나, 맛있는 간식이 가방 곳곳에서 튀어 나오거나. 녹록치 않은 상황에서도 항상 어떤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려 한다든지, 꼭 음식을 따끈한 상태로 먹으려 한다든지. 그런 장면이 목격될 때면 이따금 오해를 받곤 하지만. 그런 편견의 시선은 사람마다 예민한 정신과 몸의 감각이 각자의 방식으로 환경이나 음식, 관계 따위와 미시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잘 모르거나, 실은 자신도 그러면서 타인에 대해서는 애써 모른체 함으로써만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커피, 타자기 키보드와 태블릿, 식빵, 카페 휴지, 바흐와 쇼팽, 라흐마니노프,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 무겹게 가방에 가지고 다니는 책들. 언젠가부터 그것들은 내게 엔젤피쉬의 생존의 조건 같은 것이 되어버렸다. 적당한 수족관의 온도와 물레방아를 타고 올라오는 산소 공급용 물방울 같은 것 말이다.


어제 그렇게 잠을 충분히 잘 자고 나왔는데. 날씨가 그리 춥지도 환경이 유난히 더럽지도 않았던 날. 아아 벤티에, 단 간식들에, 빨아서 준비해 놓았던 깨끗한 옷에. 모든 준비물이 완벽했는데 왜 하루종일 극심한 비염이 멈추지 않았던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수능날 뒤척이며 잠도 제대로 못자다 허겁지겁 뛰쳐나와 다급한 마음으로 택시를 잡아타던 푸른 새벽녘의 추위. 마지막 교시까지 끝나고 교문을 나와 맞던 온기. 먹먹해서 말을 잇지 못하고 입안으로 고기만 우겨넣던 고깃집. 그날의 들끓던 온도가 생각이 나서 온몸이 진동했던 것이라고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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