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바다처럼
유명 운동선수였던 한 페이스북 친구의 글을 보며 인생의 교훈을 배웠다. 아니 단순한 교훈이기보다는,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할지에 대한 영감 같은 것이었다고 해야겠다. 그것은 그러니까, 광활한 스페인의 바다처럼, 성실한 파도처럼 살아야겠다고 느끼는 읽기 경험이었다.
야구선수 이만수의 글이었다. 다른 계정이 아닐까, 처음에는 본인이 쓴 것인지 의심했다. 스포츠인의 것이라기에는 글을 너무 잘 썼다. 그것도 한글과 영어로. 그런 의심으로 계정을 더 훑어보니 홈런왕 이만수의 계정이 맞는 것 같았다.
‘삼성 라이온즈 이만수’와 그의 필력이 포개어지기까지는 시간차가 있었다. 한 문장, 한 문장. 그의 글을 읽어내려가는 동안 철썩철썩, 캄캄한 겨울 밤바다에서 파도가 쳐왔다. 나에게는 그 파도 소리가 중요했다.
운동선수는 공부를 못한다는, 우리 세대에는 당연하고 나쁠 것도 없었던 나의 선입견이 부끄러웠다. 더욱이 선입견이 깨진 대상이 손흥민 이정후 같은 요즘 선수가 아닌, 한참 윗 연배의 선수에게라니.
그는 자신의 페북에 글을 쓸 때 위에는 한글로, 아래에는 영어로 써두는 것 같았다. 왠지 번역기를 사용하는 것 같지 않았다. 번역기를 떠올린 것 자체도 나의 유치한 선입견이었을 것이다. 시카고 화이트삭스에서 코치 생활을 했으니 영어 작문 쯤 당연히 잘 할 수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평생 야구만 한 그가 이중언어 작문bilingual writing을 이렇게 잘 하다니. 나에게는 투타 이도류의 오타니보다 훨씬 더 충격적이었다. 그는 산문가로서 아주 훌륭한 이도류였다.
어렸을 적부터 나의 뇌리에서 그는, 투박해 보이기만 하는 홈런왕 아저씨로 각인돼 있었다. 그런 그가 하루가 멀다하고 sns에 글을 쓰는 것을 바라보면서, 나는 묘사하기 힘든 뜨거움을 느낀다. 적어도 그건 ‘영어 잘 하셔서 부러워요’는 아니었다. 타인이 가질 수 있었던 교육의 기회나 능력에 대한 부러움이나 질투는 내게 식상하고 비루해 보이기까지 하는 것이었다. 내 안으로 스며드는 감동은 그런 것보다 훨씬 근원적인 것이었다.
배우로만 알던 차인표가 문학상 수상대에 오르는 것을 볼 때 느낀 인지부조화도 비슷한 성질이었다. 고백하자면 그에게서는 감동보다 먼저, 인정해주기 싫은 마음이 압도적으로 컸다. 틀림없이 못되고 우스운 마음인데.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가령 대형교회 워십팀에서 까불거리는 것만 보던 한참 어린 엠지 청년이 속성으로 교단 인가 야간 신학교를 다닌다는 소식이 어렴풋이 들리더니, 내가 진지한 애정을 품고 다니는 ‘정통’ 신학교의 캠퍼스 예배에 어느날 전도사랍시고 찾아와서 차마 못들어줄 설교를 하며 한껏 힘을 주고 있는 장면을 옆자리에 앉아 지긋이 바라볼 때 느끼는 유대주의자의 마음이었을지도. 평생 연기 하나만 파며 정극 연기를 해온 중견 여배우가 같은 작품에서 덜컥 주인공을 맡은 대형기획사 소속의 아이돌 여배우를 바라볼 때와 비슷한 마음이었을지도. 배우가 순수 문학을. 얼마나 깊겠어. 명랑하고 착하겠지. 지루하겠지.
이만수, 그는 모든 걸 가진 듯한 배우보다 친근해서였을까. 못 배웠다고 생각하는/편견을 가진 사람에게 내가 느끼는 친근감 때문일까. 그의 글쓰기를 바라볼 때는 더 넓은 바다를 보았다. 그가 아직(아직이라는 말을 꼭 쓰고 싶다), 차인표 작가처럼 이야기의 깊이까지 가지지는 못했을 것임이 비록 분명하다고 해도 말이다. 잔잔하고 그윽한 감각이었다. 그것은 그가 이번에 오타니와 이치로에 관해 쓴 글에도 담겨있는 무엇이었다. ‘기록은 언젠가 깨질 수 있겠지만 한 사람이 남긴 인격의 흔적은 사라지지 않는다.’
# ‘내가 만난 이치로, 내가 바라본 오타니, 이만수 선수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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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이만수 선수 페이스북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