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애를 처음 껴안아 본 것은 3학년 때였다. 아니 마지막이라고 해야겠다. 그 이후로 ‘여자애’를 껴안아 본적은 전혀 없었으니까 말이다.
사건의 발단은 이랬다. 나는 3학년, 아홉 살이었고. 그때 우리들 대부분은 눈을 좋아했다.
아직 점심도 되지 않은 오전. 수업과 수업 사이, 평온하기도 하고 무료하기도 했던 쉬는 시간이었다. 친구 중 누군가, 멍하니 창밖을 보다 나지막이 먼저 외쳤다.
어, 눈 온다.
자연히 나의 시선도 창밖을 향했다. 3-6. 담임 선생님은 이영순 선생님. 삼 층쯤 되는 높은 교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창밖을 보니 거짓말처럼 하얀 눈이 소리없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아직 운동장에는 하나도 쌓이지 않았고, 마침 이제 막 내리기 시작한 찰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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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의 세상이 완전히 하얬다. 몇 초쯤 하늘에서 하얗게 내리는 눈을 보던 나의 눈도 하얗게 반짝였다.
마약을 한들 그것보다 흥분할 수 있었을까. 아홉 살 한평생, 그렇게 설레는 순간은 내게도 처음이었나 보다. 나는 일순간 부풀어오르는 벅찬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만.. 옆에 있던 여자애를 껴안고 말았다.
정용순. 지금도 그 애의 이름 세 글자를 쓰면서 오글거릴 정도로, 우린 아무 사이도 아니었다. 용순이는 동그란 안경을 쓰고, 꽤 키가 크고 말랐었다. 꼭 아홉 살에 누군가를 껴안아야만 했다면 용순이가 나쁜 상대는 아니었다. 잠깐 껴안고 두 번쯤 덩실거렸을까. 용순이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얼어붙었던 것 같다.
그 시절 나의 행동이 얼마나 충격적인 것이었는지를 설명하기는 꽤 까다롭다. 전두환 시절이었고, 골목에서 놀다가도 동사무소 확성기에서 애국가가 흘러나오면 엄격하게 멈춰서서 가슴에 손을 얹던 때였다. 그러지 않으면 잡혀가는 줄 알았고. 일요일 아침에는 같은 골목 친구들과 모여 학교 숙제로 골목 청소를 했다. 아홉 살에 이미 남녀칠세부동석이란 말이 귀에 익었다. 어떻게 설명해도 지금 아이들과는 비교할 수 없이 교실 안팎에서 남녀가 유별하던 시절. 나는 아마 전교 1등으로 여자애를 껴안아 본 남학생이었을 것이다.
곧이어 제정신이 돌아와 용순이를 놔주고(?), 2초쯤, 꽤 길게 느껴진 아이 컨택이 있었다. 그 애 눈은 놀란 토끼 눈 같았고 나의 눈에는 많은 말들이 담겨 있었다. 당황과 몰려오는 부끄러움, 미안함, 아직 남아있는 설렘과 흥분.
잠깐 시간이 멈춘 듯했다. 뜻밖의 순간 뜻밖의 나이에, 찰나와 같던 영원을 느껴버리고. 용순이를 더 쳐다보지 못해 먼저 고개를 돌려버렸다. 자신의 행동에 대해 누구보다 부끄러웠던 건 나였다. 사과를 할 수도, 안 할 수도, 놀라면서도 언뜻 설레 하는 듯한 친구를 보며 어떤 말도 덧붙일 수도 없었다. 이제 어색해진 공기로 내리는 눈을 계속 감상할 수밖에.
이후로는 그 감격적인 첫눈을 아파트 엘리베이터의 층수 표시를 보는 어른처럼 다소 초점 잃은 눈으로 보게 되었지만, 나는 그 짧은 순간의 느낌들을 지금까지도 기억한다. 망가진 레코드 판처럼 세차게 튀는 생의 그런 순간들은 나이를 들면서 점점 더 희귀해졌다.
슬픔 외에는, 살아있는지 꼬집어 보고 싶을 정도로 모든 감각이 마비된 듯한 시간이 지속된지 아주 오래 되었다. 얼음이 되어 그대로 그 자리에 있었다.
어, 눈 온다.
천사인지, 육반 누군가의 속삭임이 땡을 해주었는지 최근에는 옛 시간들을 한번씩 여행해 본다. 살아있었던 시간을 답사하듯 영혼 없는 마음으로 걷다 사진을 찍어둔다. 하나님은 침묵하고 나도 그 침묵에 시위하듯 입도 벙긋하지 않으며 그렁그렁 눈물만 안고 있다.
‘몸속에 이미 어떤 사람도 없는 것 같은 느낌이었지요.’
내 이름은 안제이일까, 마리안이 분명해. ‘일을 아주 많이, 빨리 하는 사람’ 얀은 출장길에서 자기 이름을 잊어버린다(토카르추크, 잃어버린 영혼). 얀은 정신과 처방으로 한곳에 앉아 자기 안의 소년을 기다린다.
대림절은 메시아의 탄생을 표현하기 어려운, 신비로운 구원의 대망으로 기다리는 절기다. 내게 기다림은 하나도 어렵지 않다. *지금처럼 가만히 얼어붙어 있기만 하면 되는 것이니까. 그렇지만 사유할수록 성탄이 신비롭다면 그건 오늘, 지금 우리 인간의 죄의 현실과 애통함과 억압에 땡을 해줄 수 있는 능력이어야 한다는 항변을 포기하기 어렵다.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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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사의 눈으로써 시간은 과거로부터 미래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미래로부터 현재로 도래하는(advent) 것이다. 구원은 시간의 신비 속에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