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 쓸 필터를 한참 바꾸어 보았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사진을 올리고, 음악을 고르는데 거의 40분 가까이 걸린 것 같다. 의식을 치루듯 필터도 골라보고 음악도 골라봤다. 인스타에 사진 하나 올리는 게 뭐라고. 미감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내 얼굴은 또, 가려버리고.
그때처럼, 신성한 벽돌 신학책이라도 펼쳐보듯, 경건하게 사진을 고르고 필터를 골라 업로드를 누른다. 마음 같아서는 웨딩 필터를 쓰고 싶었지만, 대신 ‘youth’ 필터를 선택해 본다. 교수님을 생각하고, 나의 한 시절을 생각하면 청춘 만큼 어울릴 이름은 없을 것 같다.
포스팅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과정이 중요했다. 그런 게 교수님의 삶의 방식이기도 했을 것 같고.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내가 교수님께 은밀하게 배운 것은 그런 것이었다. 공부와 배움에 있어, 어떤 고지식하고 정직한 과정 같은 것. 처음 교수님을 뵐 때 그런 면면들을 얼마나 유심히 보았던지. 교수님과 관련된 사진 한 장 올릴 때도 손가락이 떨리는 것은 내게 새삼스럽거나 유별난 일이 아니다.
그는 명문대 영문과를 나오고 역시 세계적인 명문대에서 구약학을 공부했다. 여느 풋내기 신학생들처럼 나도 처음에는 그런 면면을 동경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나는 성공해야 했다. 늦은 나이에 신학을 공부하기 시작해서 내심 더 마음이 급했다. 신학도 이왕 공부하기 시작했으면 높이, 더 높이 올라가야만 했다. 드넓은 하나님을 이야기하는 학문이라는 신학조차, 고작 그런 비좁은 마음으로밖에 바라보지 못했다.
나도 성문종합영어를 다 발라먹고 미국이나 유럽에 가야지. 갔다와서 큰 교회에서 못 들어줄 설교하는 교역자들하고는 뭐가 달라도 다른 사람이 돼야지. 정말 이상한 풍운의 꿈을 안고 있었다.
하지만 생은 내 기대와는 완전히 다른 시간으로 다가왔다. 아주 깊고 무서운 암흑이 오랫동안 잠식했다. 드넓은 공부는커녕 ‘무릎이 벌벌 떨릴 정도로’ 공포스런 현실에 완전히 잠겨버렸다. 타인에게 봉사하는 일은 고사하고 자신의 죄의 현실만 개움질할 뿐이었다. 어느덧 교수님도 학교도 새하얗게 잊었다. 나의 시간은 우주에서 격리되었다.
딱 그런 순간에 교수님의 은퇴 소식이 들려왔다. 연말 홈커밍데이와 함께 하는 회권킴의 은퇴식 소식. 눈을 깜빡이며 한참을 바라보았다. 나는 어디 있고, 누구지. 회권킴이 누구시더라.
행사 시간이 불과 몇 시간도 남지 않았다. 몸도 마음도 천근만근이었다. 그 환한 빛과도 같은 곳에 이 새까만 어둠이 어떻게 가. 숨어버리고 싶었다. 마침 괜찮은 옷도 없었다.
표현할 수 없는 뭉클함 속에서 씻고 주섬주섬 집히는 옷을 입고, 집을 나서서 이발을 했다. 오래된 롱패딩은 왜 이렇게 더운지. 겨울 땀을 흘리며 한참 뜀박질해 학교 주변 케이크집을 찾았지만 가는 곳마다 닫혀 있고, 겨우 프랜차이즈 빵집 하나만 남아 있었다. 값싼 케이크 하나를 골라 허겁지겁 달려가며, 내가 무엇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지 나조차도 몰랐다.
교수님과 관련해서는 유독 히브리어 중간고사 때가 생각난다. 늦깎이 학사편입생이던 나는 시험기간이면 괜히 잔뜩 긴장해서 음습한 지하 도서관에서 밤을 지새곤 했다. 오전 수업의 시험을 앞둔 그날도 혼자 도서관의 큼직한 기둥 옆자리에 앉아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 꼬부랑 히브리어를 외우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날따라 배는 고프고 너무 힘들었다. 존경하는 교수님 과목의 시험이 두렵기도 하고, 몸도 삭아서 거의 온몸으로 울다시피하며 엎드려 있는데, 어디선가 속삭임이 들렸다. ’괜찮아. 그래도 괜찮아.‘
그제야 비로소 하나님을 생각했다. 이내 교수님께 무엇을 배우고 싶어 이 학교에 왔던 것인지와 같은 것들이 떠올랐다. 그렇게 엎드린 채로 영면하듯 거짓말처럼 달게 잠이 들었다. 당연하고도 정직하게 그날 시험은 망쳤지만, 대신 그날 새벽 나는 넓게 보게 되었다. 공부의 깊이와 과정을 온몸으로 가르치시는 교수님의 과목에서 내가 무슨 이득을 찾으려 한 것인지, 자신의 모습을 생각했다.
인문학적 소양을 기르라고. 알바에 고결한 청춘의 영혼을 넘겨주지 말고 공부하라고. 혼자 힘으로 영어 원서를 떼는 고비를 넘으라고, 입이 마르도록 말씀하시던 교수님의 수업을 정말 한 번은 다시 듣고 싶었는데. 넥타이를 큼지막하게 메고, 초록색 스타벅스 빨대를 쪽쪽 빨아대시며 담백한 양복 차림으로 화려한 언변을 쏟아내시던 교수님의 옆머리칼을 사랑했는데. 무척 허전했다. 정리되고 준비되면 돌아갈 수 있을까 기대했는데. 이상하게 사랑하고 추앙하는 사람들은 다 기다려주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