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기 아빠가 아프다가 돌아가셨는데 도와주세요. 단백질, 자일리톨, 목캔디.
다들 고개를 숙이거나 먼 산을 바라본다. 오늘 며칠이지? 라는 수학 선생님의 서늘한 물음을 들은 중학생들 같다. 나도 눈길을 피하려 했다. 하지만 지하철에서 걸인쯤 만났다고 고개까지 숙이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마주 보려던 것도 아니었다. 그냥 고개를 들고 전체의 풍경을 조망하려 했다. 구체적인 그녀의 눈길과 마주치기를 원한 것은 아니었는데.
이런 경우 애매한 분위기를 드러내는 일 자체가 긍정의 의미인가 보다. 관성적으로 지나치려던 그녀가 기가 막히게 방향을 돌려 나를 향해 다가온다. 사선을 향해 있는 내 눈길의 멱살을 붙들고 눈빛을 마주치려 한다. 결국 마주치고 만다.
사람은 참 신기한 동물인 게 눈빛이 마주치면 더 이상 차가워질 수 없다. 그래서 다들 필사적으로 눈맞춤만은 피하려 했던 걸까. 하는 수 없다는 듯 알 수 없는 미소가 세어나왔다. 완전한 승복의 의미였다.
얼마에요?
도와주세요. 두 개 삼천 원이에요.
도대체 언제적 것이었는 지도 기억나지 않는 디자인의 껌 두 개가 눈 앞에 내밀어졌다. 때묻고 찌든, 두터운 사각형 모양의 옛날 후라보노 껌. 저 후라보노를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였지. 이십 년쯤 되었을까. 도와주기를 자처한 입장에서도 모순적인 정의감이 발현된다. 이건 아닌 것 같았다. 눈동자가 흔들리며 통하지 않을 핑계가 흘러나온다. 잔돈이 없는데…
제가 다 거슬러 주죠.
천원 짜리 한 다발을 꺼내는 그녀. 나보다 현금이 많았다. 안 쓰는 카드와 영수증으로 가득한 지갑에 들어있는 전재산 현금 만 원을 꺼내어 건넨다. 재빠르게 거슬러주는 실력. 그러고 보니 애 아빠를 운운하기에는 나이가 많아 보인다. 애아빠 같은 사위가 있어도 어색하지 않을 연배다.
다른 거 주시면 안되나요.
뭐 드릴까. 단백질, 자일리톨.
단백질(&)자이ㄹ…
내심 다른 손에 들고 있는 두 개가 세트로 삼천 원이길 바랐다.
이윽고 차갑게 건네지는 단백질 바 하나. 그렇지. 내가 지금 편의점에 온 게 아니었지.
거래가 끝났다.
맞은편 자리쪽에서 누군가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 같다. 바닷가의 해풍에서 소금끼가 느껴지듯, 왜인지 시선에서 웃음끼가 느껴진다. 용기내어 눈을 마주쳐 보았다. 맞은편의 중년 남자들 두어 사람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어두움과 흐뭇함이 동시에 엷게 배어 있다. 그 두 개가 뒤섞이기가 쉽지 않은데. 무슨 의미일까. 자애로운 사람이군-이라든지, 잘 했어-는 아닌 것 같다.
가녀리게 초롱거리는 망채의 의미를 가만히 해석해 보니 으이구 당신 당한거야- 하는 눈빛 같다. 나는 당한 걸까. 이내 그 분은 다음 칸으로 가셨다. 맞은편 사람들이 다시 눈을 감는 모습이 왠지 한결 마음 편해 보인다.
누군가 져야 했던 삼천 원짜리 십자가였다면 내가 지는 것도 그리 나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녀가 건너간 뒤 우리 칸의 공기가 공기청정기를 돌린 것처럼 맑아졌다. 다들 떳떳하게 고개를 들고 있다. 한 사람이 팔아줬으면 됐지. 일종의 집단 면죄부 효과가 작동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많은 사람들 중 파고들 만한 품을 기가 막히게 알아보고, 눈길을 추적해서 마침내 마주치고, 능숙하게 계산을 마치는 그분의 솜씨를 생각하자 입가에 알 수 없는 웃음이 배었다. 다 말라비틀어져 버린 줄만 알았던 내 영혼에도, 과연 물기가 남아있던 것인지. 아기가 잠결에도 기막히게 엄마 품을 찾아내 파고들듯, 어떤 모성과도 같은 일말의 따듯함이 내게 아직 남아있던 것이었을지. 그렇다면 정말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세계는 하나의 덩어리로 연결되어 있고, 누군가는 항상 당해야 한다. 당해줄 수 있는 사람은 늘 큰 사람이고, 어쩌면 결코 당하지 않는 사람보다 훨씬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평생 당해주고 싶은 사람을 가졌던 이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