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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면 Sep 15. 2022

빈백의 요정

도서관의 휴게 공간에 마련된 빈백에 누워 10분 정도 자야지 하고는 꼬박 한 시간을 내리 자고 일어났을 때, 난 좀 당황스러웠다.

집이 아닌 곳에서, 특히 다른 사람들이 자는 모습을 훤히 볼 수 있는 공개적인 곳에서 그리 자본 게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잠버릇이 험한 편도 아니고 만에 하나 침을 흘렸더라도 마스크가 가려줬을 텐데 괜스레 머쓱했다.

친구에게 전화해 수다를 떨다 그 얘기를 하면서 문득 말했다.

"나이가 들었나 봐."

친구는 언뜻 상관관계에 대해 이해가 안 갔는지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음성으로 되물었다.

"나이가 들면 도서관에서 자게 되는 거야?"

"아니, 뻔뻔해지는 것 같아."

그러자 아, 하고 탄성이 들렸다.

그 이후로도 작업을 하다 졸리면 빈백에 누워 낮잠을 잤다.

한 시간쯤 잘 때도 있고 딱 10분 자고 일어날 때도 있다.

엄청 편한 것도 아니고 바로 아래가 어린이 도서 코너라 가끔은 시끌벅적한데도, 그렇게 잔다.

나 외에도 거기서 자는 사람들이 심심치 않게 목격된다.

나이대도 다양하고 각자 자는 모습도 가지각색이다.

그런 걸 보면 나이가 든 내가 뻔뻔해져 아무 데서나 잘 자는 것만은 또 아닌 것 같다.

어쩌면 빈백의 요정이  수면 가루로 사람들을 재우는 건 아닐까.

도서관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열공하니까, 전날에 혹은 그 전전날에도 밤을 새워가며 책을 들여다봤을지도 모른다.

혹은 육아를 하느라 온종일 고되었을지도 모르고.

 먹는 시간, 화장실 가는 시간도 사치라 여기는 그 사람들을 위해 잠시 충전할 시간을 대신 마련해 주는 건지도.

그 위에서 잠드는 모두가 잠깐이라도 아주 기분 좋은 꿈을 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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