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쓴지 몇일만에 상황이 확 바뀌었으니 조금은 느낌이 다르긴 하지만 그래도 시절에 맞는 글이니 기록해두어야지.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이야기를 하면 식상하겠지만 초미의 관심이니 어쩔 수 없다. 뉴스를 볼 때마다 급격한 확진자 확산에 두려움이 앞선다. 질병으로 인한 인류의 문명이 망가질 거라는 비관적 상상이 아니다. 메르스와 신종플루, 사스, 에볼라 등 전염병이 많은 사람들과 지역을 공포에 몰아넣었을 때도 인류 문명은 별 탈 없이 지속되리라는 희망에는 의구심이 없었다. 역사상 수없이 발생해온 역병을 통해서도 인류가 발전의 꿈을 접거나 좌절했던 적은 없었다.
이번에도 그러리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의 걱정은 확진자의 증가가 아니다. 고립이 걱정이다. 전염병창궐로 지역 간 상호교류의 단절, 사회구조의 붕괴 등 극단적인 결과를 상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1917년가 1918년 사이 2500만명에서 최대 5000만명의 사망자를 낸 스페인 독감의 사망자가 1차 세계대전 사망자의 3배에 이른다고 하지만 역사적으로 1차 대전의 영향을 이야기 하지 스페인독감의 영향과 의미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만큼 질병이 인류의 의지를 좌절시키지 못했다는 점을 뜻한다.
문제는 각 나라마다 빗장을 잠그는 일이 유행병처럼 번져가는 일이다. 중국발 비행기의 입국거부가 일반화되고유럽에서 동양인이면 모두가 멀리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중국 우한이나 인근 도시의 통행금지나 통행차단행위는 말할 것도 없다. 전 세계가 그 어느 보호무역도 성공하지 못했던 국경차단의 신속함이 현실화되는 분위기다.
세계화가 일반화되면서 가장 많은 변화중 하나가 관광객들이 전 세계를 메뚜기떼처럼 휩쓸고 다니는 모습일 게다. 오버투어리즘이라는 용어가 생길만큼 거주민보다 관광객들이 우선되는 웃지 못 할 도시의 모습이 보인다. 그런 교류의 상징인 관광 역시 한 순간에 올스톱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역시 일시적이겠지만 고립의 현실화는 치명적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내게는 거시적인 교류 중단이나 관광객의 감소 말고 사람들 간의 만남과 인사 그리고 수다떨기가 사라져버리는 상황이 더 우울하다. 우스게 소리로 중국관광객들이 길거리를 다니며 이토록 조용했던 적이 있었던가.
인간의 중요한 장점중 하나인 소통과 사회화가 잠정적으로 차단되고 현상. 온라인을 통해 생필품 구매가 극단적으로 증가하는 일, 집회나 모임의 취소가 당연해지고 사람들이 집안에 머물면서 나오려하지 않는 상황이 걱정이다. 외부와 단절된 각자의 공간에서 생필품을 공급받으면서 자연스런 교류의 장도 온라인 속으로 숨어버렸다. 이제 남은 일은 일조차 서로 만나서 하지 않도록 틀거리가 짜여지면 되는 일이다. 통신기기도 완비되어 있겠다 디지털 노마드가 직장에서 실현되기만 하면 인간은 완벽히 고립된 비사회적이고 파편화된 존재로 남을 준비가 착착 진행중이다.
이 또한 지나겠지만 사람들은 통신에 의한 간접소통과 외부단절의 가능성에 한 걸음 더 다가갈 것이 분명하다. 굳이 우울한 상상의 연습이 아니어도 현실세계에서 혼자만 살아가는 디스토피아는 가능성을 높이고 있는 셈이다. 역으로 많은 인간들이 외로움으로 몸부림칠게다. 가상세계와 새로운 쾌락을 찾는 일에 더 몰두하게 되지 않을까. 상상의 날개는 끝이 없고 실현가능성이 높아질 것 같아 맘은 여전히 찜찜하다.
상상이 현실이 되는 시대에 살고 있는데 디스토피아의 상상마저 현실이 되면 어쩌지. 코로나19라는 복병 앞에서 휘청거리는 사회를 보며 생각한다. 사람들을 편하게 만나서 소통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참으로 좋은 일이구나. 마스크를 쓰지 않고 침 튀기면서 이야기하고 논쟁하는 일이 이토록 좋은 일인 줄 그동안 잘 몰랐다니.
당연함의 소중함이랄까.
이재근/제주도 도시재생지원센터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