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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May 04. 2023

9. 아직도 채식하니?

몸이 지독히도 안 좋아져 생존의 방식으로 주변에 대고 마구 던진 말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아직도 채식하니?"

채식을 선언하고 주변을 괴롭히기 시작한 지 4개월이 지났다. 요즘은 일부러 들이대고 채식을 이야기하지 않으니 가끔가다 만나는 사람들은 내가 채식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거나 아니면 의구심으로 묻는다. 여태 채식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하냐는 질문이다.

그 질문의 요지는 단순하다. '너 말은 채식한다고 했지만 그다지 오래가지 않을 거야'라는 확신에 찬 믿음이 깔려있었던 게다. 그걸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아직도 채식하냐고 묻는 질문에는 자신만만하게 유지하고 있다고 답한다.


속마음은 어떨까? 조금은 덜 당당해졌다고나 할까. 채식의 종류가 여러 가지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내가 그중 어디에 속하는지는 잘 모른다. 확실한 건 주변사람들과의 관계로 인해 몇 가지는 타협을 하고 넘어갔다는 점이다. 


아직 육고기와 생선회는 먹지 않는다. 육고기라 함은 붉은색 고기인 소, 돼지, 닭 등을 말한다. 집사람은 아직도 오리는 불포화지방산이 있는 고기이니 다른 고기들과 다르다며 계속 먹기를 요구한다. 아직 잘 참았다. 가장 먼저 포기한 건 작은 멸치류와 그걸 재료로 이용한 국물이다. 멸치국물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모든 음식의 맛을 보장할 수 없다고 했다. 받아들이기로 했다.  고기육수 대신이라도 받아들여야 했다. 다행히 아내도 국물을 만드는데 여유가 생겼다. 다음은 계란을 포기했다. 단백질을 흡수하기 위한 콩단백질의 역할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역시 계란이 함께 있으니 선택의 여유가 많아졌다. 


그다음은 뭐가 있지? 맞다. 조개류를 먹기 시작했다. 내가 조개류를 무지하게 좋아하기도 하는 데다가 집에서 해 먹는 다양한 조개요리 특히 바지락찜에 대해서는 내가 워낙 진심인지라 솔직히 조개는 남들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스스로 무너졌다. 그러고 보니 대부분 다시 원위치로 돌아온 셈이다. 특별하게 고기를 먹는 정찬을 즐기거나 바비큐파티 같은 것을 하지 않는다 뿐이지 많은 점에서 예전의 밥상으로 돌아간 셈이다.


오히려 탄수화물의 대표인 밥 양은 대폭 늘어버렸다. 현미잡곡을 먹다 보니 그것도 입맛에 맞아 별문제 없이 넘어간다. 오히려 흰쌀밥을 먹는 게 미안해지고 있다. 


여전히 잘 버티고 있는 건 먹는 음식도 음식이지만 단과자나 빵을 멀리했다는 점이다.  아직 나에게 칭찬해 주고픈 사항이다. 이제는 살이 찌지도 빠지지도 않고 현상유지상태지만 배는 탄수화물의 양이 늘어서인가 계속 조금씩 나오고 있다. 하지만 다행히 당수치가 안정권을 유지하고 있다. 물론 며칠 동안 다시 10~15 정도 오르게 나타나서 긴장을 하고 있지만 얼마 전 병원에 가서는 의사의 칭찬을 받을 만한 상황이 되었다. 그대로 잘 관리하라고 하는 조언을 들었지만 그 이후로 조금 흐트러진 느낌이 들긴 한다.


난 여전히 채식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이제는 솔직히 채식이라는 생각도 잘하지 않게 된다. 습관적으로 혹은 본능적으로 고기류를 피하고 있는 나 자신이 조금 낯설기는 하지만 아직 완전히 예전으로 돌아간 것은 아닌 게 다행이다. 한 가지 더 고백하자면 생선이 들어간 탕중 동태탕은 직원들과의 식사메뉴 선택 때문에 섭취목록에 추가했다. 사실 직원들과 함께 식사하러 갈 경우 가장 어려운 상황은 그들이 고를 수 있는 고기메뉴가 주인 식당을 선택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아무리 편한 대로 고르면 내가 그 안에서 알아서 메뉴를 고르겠다고 해도 사람들이 신경을 쓰는 사실은 벗어날 수 없는 법이다.


제주라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반적인 식당메뉴를 생각해 보고 주위를 살펴봐도 채식이라는 이름을 달고 음식을 고르는 일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매일 점심메뉴를 고르는 일은 어떤 다른 선택보다 어려운 다지선다형이다. 더구나 식당의 숫자와 메뉴도 별로 없는 제주의 산 쪽 마을인 중산간 지역에 위치해 지내면서 그나마 읍내라고 할 약간의 식당이 있는 곳으로 식당을 찾아 나서는 입장에서는 채식을 떠나 식사 자체를 고르는 일이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결국 무슨 수를 써도 먹고사는 일은 힘든 일이다. 그중에서 더 힘든 선택을 하게 됐지만 아직 것 잘 버티는 것으로 하자. 4개월이 지난 자신에게 반정도는 칭찬을 해주고자 한다. 생존을 위한 선택에서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으로 향하고 있다고. 자연스러움은 언제나 편안함을 동반할 경우가 많은 법이다.


그나저나 내일은 또 뭘 먹으려나. 괜히 먹는 이야기를 썼더니 그것부터 걱정이 앞서네. 그때 되면 또 선택이 이루어질 테니 지금 걱정해서 뭐 하리오. 지금 먹을 일도 아닌데. 간식이나 줄여야겠다. 다시 슬슬 늘어나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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