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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May 31. 2023

10. 채식과 초심

채식을 선언하고 실천해 보겠다고 나선지도 6개월이 지났다. 거창하게 시작한 완전채식에 대한  도전은 둑에 구멍이 나듯 하나씩 무너져 나갔고 지금은 어느 것이 채식인지 잘 모르는 상태가 되었다. 이전글에도 언급했듯이 이제는 채식이라는 용어를 쓸 수 없을뿐더러 스스로 쓰지 않기로 했다. 딱히 육식으로 돌아간 것은 아니지만 채식을 실천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도 힘들다.


처음의 노력이 시간이 지나면서 무뎌지는 경우는 매우 흔한 편이다. 수술을 하고 갑작스럽게 발병한 당뇨수치 급등으로 인해 탄수화물과 단 음식에 대한 극도의 경계심을 체화하려 했고 조심을 한다고 했지만 지금은 그렇게까지 경계를 하면서 음식을 멀리하는 삶을 살지 않는다. 아주 중요한 몇 가지를 지키려고 애쓰고 있는데 사실 악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은 다른 데서 오는 경우가 더 많은 듯싶다. 순간순간 갑자기 당 수치가 급등해 어쩔 수 없이 의사에게 달려간 경우도 나의 음식조절보다는 생활의 불규칙성과 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어쩌면 정작 중요한 요인에 대한 관심을 멀리하고 덜 중요한 것에만 집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것도 이 같은 경험이 여러 차례 발생했기 때문이다.


육식으로 돌아간 것은 아니지만 채식을 실천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도 힘들다

비단 음식뿐 아니라 글을 쓴다거나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한다거나 할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뭣이 중한디?라는 누군가의 대사처럼 정작 중요한 요인을 잘 못 파악하는 경우 처방은 물론 그로 인한 결과도 엉뚱하게 나타나게 된다. 물론 그 원인에 대한 해석도 제멋대로가 될 것이고.


다시 채식으로 돌아가 육고기에 대한 거부감은 나름 꽤나 뼈에 각인시키려 했고 이는 어느 정도 성공한 듯싶다. 아직 것 한 번도 고기를 입에 대보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6개월이 되도록. 허나 주변에 수없이 널려있는 동물성 음식류에 대한 섭취는 어느 정도 내가 눈을 감고 넘어가지 않으면 결코 홀로 된 생활을 유지할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많은 시간을 이로 인한 고민에 빠졌지만 최근 들어 초심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몇 개월 전의 결심도 초심이지만 내가 살면서 나름 합리적인 이성이라는 것을 가지고 인생을 살았다고 생각하기 전 인생의 목표와 방법론 등을 새워놓은 것이 있었다. 물론 금세 잊었고 까맣게 잊힌 상태로 30~40년이 지나고 말았다. 


이런저런 이유로 생활에 대한 회의도 많이 들고 재미라는 요소 측면에서는 그다지 볼 것이 없는 인생이 되었다. 그래도 불현듯 생각나는 초심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아직 어린 시절, 모든 것에 대해 희망과 낙관적인 전망만 가지고 있던 시절 내 인생을 이렇게 살아야겠다는 원칙을 세웠다. 지금이라도 기억이 나서 다행이다.  채식도 그 정도는 아니어도 가능하면 죽기 전까지 어느 정도 초심의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한다. 앞으로 어느 시점에서는 내가 채식을 시도했노라는 사실도 잊을 수 있겠지만 작년 말 채식을 선언하던 간절함이 초심의 역할을 하면 순간순간 기억나기를 바란다. 그러면 다시 한번 마음을 가다듬고 나를 돌아볼 수 있을 테니.


채식에 대한 내 생활의 이야기는 이로서 끝이다. 채식을 한다고 도전했었고 더 이상 채식주의자라는 용어를 나에게 적용하지는 않겠지만 노력은 계속될 것이다. 목표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나와 함께 늙어가는 삶의 작은 원칙 중 하나가 되기를 희망할 뿐이다. 역시 먹고사는 일은 매 순간순간 힘들다. 단순히 돈을 벌어 잘 먹고 잘 산다는 이야기를 하지만 그 잘 먹고 잘 사는 게 뭘까. 고기를 먹는 게 당연히 잘 먹고 잘 사는 것으로 여겨지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며 그 기준이 얼마나 어이없는 것이었음을 새삼 느낀다.


건강하게 사는 길을 택하자. 그게 답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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