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30일. 그리고 다른날. 가드닝을 생활에 포함시키기
그럭저럭 시간을 흘려 보내지 않으려 했건만 올해도 벌써 반이 지났고 연말이 다가온다. 인생은 어느 덧 후반부 한복판에 와있다. 매일 아침 무엇을 하며 지낼까를 고민하던 시절이 꽤나 오래 계속됐다. 분명 잠이 깼는데 기다리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뿐이고 넘겨야 할 고비다. 그게 사람들과의 관계거나 금전적인 문제이거나 언제나 내 생활에 불편을 주는 일들임은 분명하다. 앞으로도 이같은 부담은 건강이 나빠지고 경제적으로 더 나아지지 않는한 계속될 전망이다. 어쩌면 죽기전까지 그리될 것이고 혹시 그 전에라도 결절점이 생기면 다행이다.
제주에 내려온지 10년이 되었고 제주시 조천읍의 와산리라는 곳에 터를 마련해 바다가 보이는 수려한 풍경을 가진 전원주택을 마련한지도 2년반이 되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전원생활에 2층 서재의 책상에 앉아 있으면멀리 바다가 보인다. 날이 좋으면 남해안의 섬들이 선명하게 보이는 날도 있다. 지도상에는 청산도거나 보길도거나 아주 가까운 여서도거나 그 섬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육지에 딸려있는 남도의 섬들이 반대로 보인다는 사실은 평생을 서울서 살아온 사람의 입장에서는 놀라운 반전이 아닐 수 없다. 그 바다를 바라보는 날의 몇몇은 감동과 감탄으로 뒤덮지만 대부분의 날들은 그저 그런 풍경이 내 눈앞에 익숙하게 펼쳐질 뿐이다. 사치스런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이같은 풍경을 보자고 제주에 오고 유명 관광지에 오는데 그 풍경들이 아주 별볼일 없는 그냥 무덤덤한 생활의 시작이라니. 그래도 어쩌겠는가. 사람이 생겨먹은게 그래서 익숙해지면 소중한 것을 모르는 법인데. 아침의 해돋이와 한밤중의 고깃배의 불빛이 밤새 비치는 이 풍경을 무시하듯 언급하는 나를 혹시라도 우리 집에서 풍경을 본 사람이라면 사치스러운 호사를 부리고 있다고 말할 것이다. 객관적으로 나도 이 풍경때문에 아무런 주저함도 없이 지금의 집을 구입했으니 더 이상할 일이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풍경이 인생을 살아주진 않는다. 풍경이 삶의 풍요로움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난 풍경에 관한한 아직 내가 사는 집을 몹시도 좋아하고 외부의 누군가 어떤 이야기를 해도 제주도내에서 풍경으로 밀릴일은 없다고 자신한다. 그런 집에 산다. 하지만 매우 작은 집이다. 마당도 작고. 그래도 사방에 풀이나 작은 나무를 심을 공간은 있으니 전원생활을 하는 것은 맞다. 어쩌면 전원은 내가 꿈꾸는 삶이 아니었는지 모른다. 나는 나무에 대해 모르고 더구나 흙을 가까이하며 살아온 적이 한번도 없는데 정원이라니. 누군가 잘 가꾸어주면 좋을 것이고 그것도 안되면 마당에 콘크리트라도 깔아야 한다고 농담처럼 강변한다. 마당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가끔 아내가 마당 한켠에 상추나 부추같은 채소를 심고 몇개라도 수확해보자는 작은 노력에 대해 일년에 한두번씩 반응할 뿐이다. 너무 잔디가 길어 벌레와 모기가 가득한 마당은 솔직히 너무 힘든 시간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집에 대한 고해성사도 아니고 내 무지함의 순간과 멋대로의 생활에 대한 이야기는 그만 하련다. 다만 그것이 바뀌는 계기는 참 예상치 못하게 온다는게 이상할 다름이다. 역시 이에 대한 이유도 간단하다. 늙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 정원에 대한 생각이 바뀐 것이라면 조금은 내가 디딘 땅에 솔직해 지는 셈이니 그다지 나쁘다고 할 필요는 없을 듯싶다.
평대리에서 불가피하게 운영을 책임지게된 카페의 뒷마당은 황폐하다. 가져온 돌들도 낮은 담을 쌓았고 그 안에 무엇이라도 채워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 너머에는 가게의 필요상 당근밭이 이어져 있는데 밭과 건물 사이의 마당을 어찌할 것인가. 3년간 아무런 관심을 갖지 않다가 새롭게 내 책임이 되어버렸다. 어찌하면 이 공간에 대해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까. 제주산 송이(화산석)로 깔려서 갑자기 텃밭스러운 마당이 돌밭이 되었고 온실안에 담아두었던 모래를 마당으로 죄다 옮기니 식물을 심어도 잘 자라지 않는 땅도 생겨먹었다. 그럼에도 하루 외면하고 나면 차마 말할 수 없을 정도의 잡초가 난무한다. 더구나 비까지 내리는 날이면 잡조는 웬수보다 더한 무담을 던진다. 이를 어찌할 꼬. 그래도 어쩌다 보니 관심이 생겼다. 정원을 가꾸는 일. 혹은 조경. 아니 다른 일일테지. 마당을 가꾸는 것을 떠나 가드닝이라는 새로운 주제에 관심을 가져 보기로 했다. 이렇게 된 바에야 사람들이 마당을 보기위해 찾아오는 공간을 만들기로 하자. 무엇부터 할 것인가? 하루에 한편이상읜 유투브를 보기로 한다. 정원에 대해 정원에서 피는 꽃에 대해. 가드닝에 관심을 가질 것이다. 매일매일이 새로운 도전이 될 수 있겠다는 희망섞인 생각이 머리속을 지배한다. 화려한 꽃들이 마당을 채울 수 있을까. 스스로 생각해도 웃음이 나온다. 꽃을 키운다고? 왜? 필요에 의해. 필요한 일을 다시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