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어둠이 가시기까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린다. 아직 오밤중이라고 생각했는데 7시가 다 되어간다. 여전히 밤새 바다를 밝힌 고깃배의 불빛과 나름 도심이라 생각되는 함덕 해안의 번화가 불빛이 함께 반짝인다. 조금전까지 검은 천지를 뚫고 나오던 바다 위와 도시의 불빛이 많이 줄었다. 모두 항구로 돌아오거나 새벽에 빛이 필요없어진 모양이다. 바다의 이정표인지 모를 붉은 불빛만 고정된 채 검의 공간의 중심을 잡고 있다.
하늘빛이 옅어지고 있다. 베란다 문을 열면 한기가 어느 수준까지 다가오려는지 걱정이 되어 여전히 갇혀 있기를 선택한다. 밤이 길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침이 빠르게 치고 올라오는 데는 버틸 재주가 없다. 아침으로 간주해야 할 모양이다. 먼 수평선 끝자락부터 하얀 테두리가 생기며 아침을 맞이한다. 거의 소리가 나지 않았던 차소리도 하나둘씩 빈도수가 늘고 있다.
나는 뭐 하고 있었지. 몸이 찌뿌둥한데 몇 시간을 앉아서 보낸 건가. 2시에 잠이 깨어 의자에 앉아 빈둥거리다 보니 아침이 된 셈이다. 바다가 아닌 맞은 편은 세상의 모든 빛을 다 삼킬 듯 온전히 새까만 하늘이었는데... 그나마 바다에는 빛이 있어 위로가 됐는데 이제 반대의 상황이 되었다. 아침이 치고 오는 게 아쉽다. 밤을 보내고 싶지 않다. 밤새도록 아무것도 한 일 없이 이제야 일기 나부랭이라고 끄적일까 싶었더니 아침이 되었다. 참으로 꿈 뜨고 느린 반응이다.
언제부터인지 낮동안의 활동량을 몸이 버티지 못한다. 저녁을 먹으면 그대로 잠이 들어버린다. 8시가 되기도 하고 9시가 되기도 하지만 언제 잠들었는지 모를 때가 허다하다. 깨어나면 2시나 3시가 되는 경우도 많지만 대부분 뒤늦은 수면제를 먹고 오전 나절까지 억지로 잠을 청할 때가 대부분이다. 오늘은 그 과정을 겪고 싶지 않았다. 잠이 깨어 침대로 향해 눈을 감았다. 금세 올듯한 잠은 오히려 장소를 옮기자 더 말짱한 정신상태로 바뀐다. 뒤척이기만 하는 신경질만 곤두설 뿐 편하지가 않다. 불현듯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책상에 앉았다. 그렇게 유튜브와 뉴스 등을 오가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하루를 다 보낸 느낌이다. 아니다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고 있다.
저기 보이는 섬이 눈에 익숙하다고 생각했는데 섬이 이토록 가깝게 보이는 것을 보니 바다의 가시거리는 좋은 모양이다. 여서도가 커다랗게 눈앞에 놓이는 것이 이제는 당연하듯 생각된다. 옆으로 살짝 청산도가 그림자처럼 앉아있다. 집안 정원의 암석역할을 하듯 이제는 너무 자연스레 자리를 잡고 있다. 용기를 내어 베란다 문을 열었다. 온몸의 시원함이 써늘함으로 바뀌는 찰나 바다를 좀 더 자세히 보려한다. 불과 1~2분의 시간이지만 그래도 몸은 충분히 한기를 느낀다. 그런 계절이 되었다. 특별히 날씨가 추운 점도 있지만 11월이면 한기를 느끼는 것이 당연한 날씨가 아니던가. 더구나 아침시간인데.
몸에서 약간의 무리가 감지된다. 피곤하고 이제야 이불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욕구가 쏫는다. 지금 잠을 청해봐야 잠들지도 않겠지만 편안함을 얻기는 할 것이다. 그래도 곧바로 일어나야 할 테니 포기하기로 한다.
이렇게 바뀐 생활리듬을 한동안 가져가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일찍 자고 일어나서 글을 쓰든 일을 하든 혹은 영화를 보더라도 새벽의 적막을 나의 시간으로 가져올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하니 좋은 기회라 여겨진다. 이참에 늙은 티 내면서 아침형 인간으로 바꿔보는 것도 고려해 볼 일이다.
아침보다 먼저 일어나는 기분이란 어쩌면 약간의 우월감을 줄 수 있으리라. 조삼모사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무엇이든 사소한 변화라도 가져올 수 있는 게 아직 살아있다는 증거일 테니. 하지만 너무 일찍부터 오늘의 할 일을 걱정하는 불편함이 같이 따라온다는 아쉬움은 남는다. 부수효과로 인정할 수밖에 없을테니 겸허하게 받아들이자. 다음에는 일기 말고 다른 무슨 글을 쓸 수 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멋진 아침 풍광에 내가 어디에 살고 있는지 명확히 알게 된다. 나는 농촌의 한 중턱에 살고 있구나. 다시 한번 깨닫는다. 근데 오늘은 가게에 가서 중단된 삽질을 계속해야 하나 마나 고민이다. 아침 풍경 감상이나 조금더 해보고 결정하자. 이 기분을 깰 일이 아니다. 아침은 좋구나. 마치 새소리처럼 신선한 기운을 주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