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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백 하나 없거나 있어도 던지지 못하는 서른에게.

서른, 이 시기의 행복에 대하여

 봄은 만물이 소생하는 시기요, 여름은 성장하는 시기라고 한다. 사전적 정의에 의하면 푸른 봄, 청춘이란 이십대까지의 시절이랬으니, 서른으로 넘어간 지금은 여름이 분명하다. 허나 단순히 '소생', '살아나는 일'에 그치지 못하고 스스로를 가혹하게 몰아부치며 겨우 맞이한 여름 앞에, 또 성장을 해야한다니. 무엇을 어디까지 더 성장시켜야 하는지, 애초에 내게 그런 잠재력이 있긴 한건지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악보에는 쉼표가, 문장에도 콤마가 있는데 우리 인생에 브레이크를 걸어주는 시기란 정녕 없단 말인가. 어쩌면 삶의 초반부에 쉼을 너무 몰아쓴 탓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 잘못이 아니라 태어나서는 한 동안 의지대로 가눌 수 없는 몸뚱이를 준 어떤 신의 탓이 아니던가. 왠지 억울하다.


 돌아본 나의 봄에는 분명한 행복이 있었다. 다행히 술을 아주 못하는 편은 아니었으므로 캠퍼스의 낭만이 있었고, 사람에게 쉽게 빠져드는 덕에 다양한 빛깔의 사랑도, 실연도 맛봤다. 출판한 세 권의 책 중 두 권은 베스트셀러, 스테디셀러 뱃지를 달았으니 십 대 시절의 꿈도 이루었으며, 네 번의 이직속에서 1인기업부터 대기업까지 직업적으로도 만족스러운 커리어를 쌓았다. 그런데 내 인생이 계속되고 있다. 


 캠퍼스의 낭만 끝에 도달한 직장에서는 낭만따위는 잊은척 살아야 하며, 쌓아온 사랑은 리셋되고 새로운 사랑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되었다. 나는 여전히 무명 작가이며, 돈을 벌기 위해 선택한 직무에 대해서도 여전히 적성이라던가 연속 가능성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서른, 그 시작을 기념하듯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왔다


 나의 떠나간 봄, 그 시절에 힘든 줄도 모르고 달릴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던가. 아마도 어떤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마치 여름 바캉스를 기대하는 직장인 처럼, 안정된 휴식기가 곧 도달하리라는. 달콤한 바캉스란 고작 몇 박 몇일 뿐, 여름의 대부분은 지루한 무더위 또는 장마로 이루어 진다는 것을 망각한 채 말이다.


 서른, 참 유난스런 나이다. 이쯤 되면 뭔가 근사한 세레머니를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직도 결승선이 멀다는 소식에 남은 체력마저 걱정이다. 패기 있게 달리던 트랙에서 문득 '넘어지면 아프겠다' 겁이 나기 시작했다. 주렁주렁 늘어나는 역할들만으로도 버거운데, 믿을 구석이었던 '건강'마저 이제는 모래주머니처럼 꽤나 자주 발목을 잡는다. 내 상태야 어찌되었든 분명한 것은, 그럼에도 나는 여름을 지나 가을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여정이 부디 행복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렇다면 나의 서른, 이 시기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은 적어도 '부와 명예'같은 '정답'은 아닐 것이다. '부'도 '명예'도 천운이나 기가막힌 타이밍이 작용한다면 모를까, 노력만으로는 내 몫이 될 수 없단 것, 어쩌다 내 몫이 되더라도 이것에 있어서 만족이란 존재하기 어렵다는 것을 일찌감치 인정 했다. 


 “어차피 울거라면 에코백이 아니라 샤넬백을 던지면서 울고싶어”, 언젠가 작자 미상으로 떠도는 이 문장을 읽었다. 그의 문장을 반대로 생각해보면 어떨까. 어차피 행복할 수 있다면 내 어깨에 에코백이든 샤넬백이든 상관없어 지지 않을까. 우리는 가끔 수단에 앞서 목적을 잊는다. 기억해야 한다. 내가 바라는 것은 ‘무엇’이 아니라 ‘무엇’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행복’이라는 것. 그러므로 이 여름의 초입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란 '나의 무엇’을 어떻게 정의하느냐 일지도 모른다. 세상의 보편적인 정답과는 다른 '나의 무엇'을 찾아 나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행복했고 행복하며 행복할 수 있는 날들로 만들어 가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샤넬백은 한 번 던져보고 싶다. (그것도 마음 편히)


샤넬백 하나 없거나 있어도 던지지 못하는 

어른이들에게 바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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