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한 폭의 수묵화 같은 히말라야
롯지에는 종업원 형제가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십 대 후반인 동생은 염색을 하였고 무스를 발라 머리칼을 세웠으며 청바지와 가죽 재킷으로 한껏 멋을 부렸습니다. 인적이 뜸한 히말라야 오지에서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 멋을 내고 있는 것일까요? 하루 종일 창밖을 내다보며 손님을 기다리는 몸과 달리 마음은 히말라야가 아닌 저잣거리를 헤매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히말라야의 보물
햇볕이 잘 드는 자리에 앉아 창밖을 내다봅니다. 멀리 초우유가 고고한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쿰부 트레킹 최고의 선물은 히말라야 8천 미터 급 봉우리 14좌(座) 중에서 4곳을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를 비롯하여 로체(8518m), 마칼루 (8465m) 그리고 초오유(8203m)입니다. 인간의 영역이 아닌 신의 세상을 먼발치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자 행운입니다.
저녁을 주문하였습니다. 투숙객은 우리뿐이지만 형제는 분주하게 움직입니다. 조그마한 화덕 하나가 주방의 전부입니다. 이곳에서 달밧에서 피자까지 동서양 메뉴 모두를 소화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풍요 속의 빈곤’이라면 히말라야 오지는 ‘빈곤 속의 풍요’입니다. 다양한 양념과 조리 도구가 없어도 풍성한 음식을 만들고 있습니다.
해가 지자 동생이 난로에 불을 지폈습니다. 야크 똥을 넣고 석유를 부은 후에 라이터로 점화를 합니다. 불이 타오르자 주방으로 가서 요리를 합니다. 조금 전 야크 똥을 만진 손인데. 순간 당황이 됩니다. 그는 아무렇지 않는 듯 요리를 하고 있지만 야크 똥이 음식을 통해 입으로 들어갈 것을 생각하니 식욕이 없어집니다.
히말라야에서 야크 똥은 귀중한 자원입니다. 집을 만들 때 시멘트처럼 벽에 바르기도 하고 말려서 연료로 사용합니다. 집집마다 야크 똥을 수집하여 빵처럼 납작하게 눌러 말립니다. 땔감이 귀한 고산지대에서 좋은 연료가 되고 있습니다. 냄새가 나지 않고 화력도 좋아 취사나 난로의 연료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야크 똥은 히말라야의 보물입니다.
고쿄(4750m)를 향하여...
돌레(4040m)를 출발하였습니다. 마체르모(4410m)를 거쳐 고쿄(4750m)가 목적지입니다. 마을 어귀에서 야크 떼를 만났습니다. 우리에서 밤을 지낸 야크는 먹이를 찾아 산을 오르고 있습니다. 젊은 부부가 조그마한 돌멩이와 고함으로 야크를 인도하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여섯 번째 높은 초오유를 보면서 걷습니다. 초오유를 기점으로 설산이 병풍처럼 펼쳐 있습니다. 초오유에서 발원한 두드코시 강은 계곡을 따라 세상으로 향하고 있으며 계곡 건너편에는 촐라체(6440m)와 타보체(6367m)가 트레커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뒤를 돌아보면 탐세쿠르(6608m)가 미소를 띄고 있습니다.
다시, 해발 4천 미터를 넘었습니다. 칼라파타르(5550m)에서 고소 적응이 되었기에 걸음이 가볍습니다. 산소가 부족한데도 들숨과 날숨이 일정하여 호흡이 자연스럽습니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다르지 않으며 오직 다음 발자국만 생각하며 걷습니다. 순간순간이 새로운 경험이기에 한 걸음 한 걸음이 경이이며 축복입니다.
고쿄로 향하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칼라파타르에서 촐라를 넘거나 남체(3440m)에서 타메(4800m)를 거쳐 렌조라(5417m)를 넘을 수 있습니다. 아니면 제가 걷는 맞은편 계곡에 있는 톨레(4390m)와 타레(4300m)를 거쳐 갈수도 있습니다. 어느 길을 선택할 것인가는 본인의 판단입니다. 편안하거나 쉬운 길은 없습니다. 자신이 선택한 길이 최선이라는 마음을 걷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 폭의 수묵화
어느 순간부터 사방이 눈 천지입니다. 메마른 능선과 트레일을 눈이 뒤덮고 있습니다. 계곡과 맞물려 있는 실낱같은 능선에 눈이 쌓여 있어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방심하는 순간 책임지지 못할 일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시선이 짙푸른 하늘과 끝없이 펼쳐있는 하얀 눈길로 향합니다. 한 폭의 수묵화를 보는 것 같습니다. 하얀 백지에 검은 먹으로 그림을 그려갑니다. 눈길을 걷고 있는 동료와 야크를 방복하기 위한 돌담이 붓이 되어 구도를 잡고 채색을 합니다. 인간이 아닌 자연이 그려가는 한 폭의 그림은 말을 잊게 합니다.
“저는 산을 오르는 것이 아니라 그림 속을 걷고 있습니다.”
마체르모(4410m)에서 점심 식사를 하였습니다. 마을은 눈 쌓인 능선 사이에 작은 성채처럼 단아한 모습입니다. 볕이 잘 드는 옴팡진 곳에 뒤편에는 설산이 앞에는 두드코시 강이 흐릅며 언덕 위에는 룽다와 타르초가 바람에 휘날리고 있습니다. 풍수지리를 모르지만 며칠 쉬어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쿄(4750m)가 가까워질수록 계곡의 폭은 점점 줄어들고 길은 너덜길이 시작되었습니다. 멀리 고줌바 빙하가 보입니다. 초오유에서 흘러내린 만년설이 세상으로 향하지 못하고 빙하가 되었습니다. 좁은 돌계단을 오르는데 갑자기 거친 물소리가 들립니다. 고쿄의 첫 번 째 호수에서 흘러내리는 소리입니다.
목적지가 지척일 것 같은 바람과는 달리 걷고 또 걸어도 마을은 보이지 않습니다. 사위는 어두워지고 눈길은 끝이 없습니다. 더구나 안개까지 끼기 시작하여 세상이 온통 회색빛입니다. 길에서 한 발작만 벗어나도 눈구덩이입니다.
인내력이 한계가 올 무렵 거대한 세 번째 호수와 마을 모습이 저 멀리서 보입니다. 눈이 쌓여 그 넓이를 가늠할 수 없지만 해발 4800미터에 어마어마한 호수가 있다는 사실이 눈으로 보면서도 믿어지지 않습니다. 호수 옆에 롯지가 옹기종기 모여 있습니다.
고쿄(4750m)에 도착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