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책을 좋아한다. 그런데 이 좋아한다는 감정이 객관적으로는 모호하다. 평소 책을 많이 읽지도 않고, 집중해서 빨리 읽는 능력도 이제는 현저히 떨어졌다. 책을 좋아한다기보다는 ‘책을 읽을 수 있는 분위기를 좋아해요’, ‘책을 읽을 수 있는 여유가 좋아요’가 어쩌면 더 적합한 표현일 수도 있겠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책을 좋아해요’라고 말하기에는 매우 민망하기도 하고 주저하게 된다. 아마도 요즘 일어나는 독서 트렌드도 나와 같은 감정의 소유자들이 아닐까? 지식추구형으로 독서를 하기보다는 일종의 힐링추구형의 독서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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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에 책은 어떤 형태로든 계속 함께해 왔다. 아주 어린 학창 시절에는 책을 많이 읽는 편이었고, 글짓기도 잘했다. 글을 잘 쓰는 사람에 대한 동경이 늘 있었고, 의미를 논하는 것에 흥미를 느끼는 성향은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는 방향으로 이어졌다. 국문과를 가고 싶었는데 엄마의 반대로 영문과를 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내 뜻대로 국문과를 가지 않은 것이 손꼽히는 후회 중 하나다. 국문과를 가서 작가를 했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외국어가 아닌 모국어에 대한 지식, 혹은 문학을 파고드는 일을 했어야 했다. 사전을 만드는 일도 재밌었을 것 같은데…
어찌 됐건 나는 장르로 따지면 문학을 좋아했고, 이외에 또 읽게 된다면 에세이였다. 지금도 서점에 가면 일단 문학 코너로 간다. 자기 계발서는 돈 주고 잘 안 사고, 보게 되더라도 세부적인 내용은 안 읽고 휘리릭 넘기며 핵심 몇 줄만 파악하고 넘어간다.
한동안 (생산적인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하면서 나의 과거 관심사를 다시 돌아보기로 했다. 그 마음을 먹고 처음 구입한 책이 <나에게 시간을 주기로 했다>이다. 제목도 요즘 내 마음 상태에 딱 맞는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일러스트레이터 오리여인의 그림과 일상적인 짧은 에세이가 쉽고 빠르게 읽혀 마음이 편했다.
“[비움과 채움] 마음이 바스러질수록 나는 채워졌다. 슬펐던 만큼 글을 읽거나 노래를 들었다. 후회한 만큼 나를 되돌아보았고 살폈다. 사랑을 잃었을 땐 다시 나에게 더욱 집중했다. 그러고 보면 비워지는 것은 잃는 것이 아니다. 어떤 식으로든 어떤 것으로든 비워진 그곳을 채우고 있었다.”
“(에필로그 중) 하지만 그 시간을 견디고 나니 일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대충 때우던 끼니는 싱상한 식재료로 만든 요리로 대체되었고, 가보고 싶었던 미술관도 거의 다 다녀왔다. … 책도 왕창 읽고 음식도 먹고 운동도 다녔다. 내가 하고픈 일, 즐거운 일을 했다. … 혼자서는 생각할 시간도 없던 그때와 달리 나의 시간을 온전히 지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