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말의 아르누보의 보헤미안
이상과 현실
세상 모든 사람들의 고민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택할 것인지, 아니면 자신에게 원하는 것을 택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예술계도 다르지 않다. 어떤 작가들이던 순수미술과 상업적인 미술을 택할지 고민한다. 순수한 아름다움을 끝까지 추구하되 대중들에게 외면받을지, 아니면 대중들에게 호흡할 수 있는 그림을 택하고 높은 평가는 받지 못하던지. 두 선택지 모두를 성공적으로 얻은 작가는 많지 않다. 극소수의 작가들만이 그런 행운을 가진다. 오늘 말하고자 하는 작가는 두 가지 행운을 모두 누렸다. 하지만 그가 얻은 행운은 그뿐만이 아니다. 1894년 파리의 크리스마스에 얻은 특별한 행운. 그 누구도 얻지 못할 특별한 행운을 가졌던 화가, 그가 바로 알폰스 무하다.
체코 모라비아 지방의 이반 체체라는 작은 마을에 태어난 무하는 요즘 말로 흙수저였다. 말단 공무원인 아버지와 가난한 집안 사정, 자기 위에 많은 손윗형제들로 인해 그에게까지 교육의 기회는 오지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성가대원으로 활동하며 수도원에서 성화를 공부하면서 그림에 대한 재능을 깨닫는다. 그러나 성가대원도 잠시, 변성기라는 넘을 수 없는 벽으로 그는 수도원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고향으로 돌아와서 어찌어찌 재판소 서기 자리를 얻었으나 그에게 재판소 서기 자리는 따분한 자리였다. 성가대원 활동과 더불어 성화에도 재능과 흥미를 보였던 그는 그림이야말로 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임을 깨닫고 혈혈단신 파리로 상경한다.
지금도 파리라는 도시는 사람을 끌어당기지만, 그때 당시의 파리는 지금보다 훨씬 더 높은 위상을 가진 도시였다. 당시 파리는 '벨 에포크' 시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도시였다. 기회가 넘쳐나던 파리는 모든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마력의 도시였다. 알폰스 무하도 넘쳐나는 기회를 보고 노력하나 경쟁률이 너무 높은 이상 기회란 게 그리 쉽게 올리가 없다. 설상가상 이전부터 그를 꾸준히 지원해주던 쿠헨 백작도 지원을 끊어버린다. 생활인과 예술가의 고민 속에서 그는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잡지에 간단한 삽화를 그리며 살아가게 된다. 어릴 적부터 그림으로써 성공해 거장이 되겠다는 마음가짐을 성인, 그것도 30줄까지 유지하기는 쉽지 않았을 거다.
왼쪽부터 <카멜리아> , <지스몽다>, <메데이아>
행운을 붙잡다
1894년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기 전, 알폰스 무하는 친구에게 포스터 작업을 대신해주라는 부탁을 받는다. 당시 아무런 일도 없는 무하는 기꺼이 그 일을 맡게 된다. 그 일이라는 것은 바로 파리의 유명 배우인 '사라 베르나르'가 새해에 걸 포스터를 주문하는 일이었다. 그에게 맡겨진 포스터 작업은 그가 한 번도 하지 못한 석판화였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해본 적 없지만 해보겠다고 말했고, 일은 그에게 떨어졌다. 일할 사람이 없는 크리스마스 전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일을 맡겼다는 게 적절할 것이다.
새해가 찾아오고 뮤지컬 '지스몽다'를 광고하는 포스터가 파리에 붙여졌다. 그 이후 알폰스 무하는 벼락 스타가 된다. 이전까지의 포스터보다 훨씬 큰 길이, 여러 색깔을 조합한 파격적인 디자인, 아름다운 색감, 화려하게 치장된 배경들은 이전의 포스터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다. 만족한 사라 베르나르는 그에게 6년간의 전속 계약과 더불어 인기 배우인 그녀가 여러 곳으로 순회공연을 하면서 그의 포스터가 방방곡곡 뿌려지고 자연스럽게 그에게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의뢰가 들어오게 된다. 행운을 붙잡은 것이다.
행운을 잡고 난 이후, 알폰스 무하는 세상을 장식할 만큼 많은 양의 장식화와 삽화들을 그렸다. 그가 그렸던 수많은 걸작들 중에서 황도 십이궁은 그의 최고의 걸작이라고 할 만하다. 삽화의 중심에는 아름다운 머릿결을 지닌 여인과 황도 12궁의 별자리를 상징이 그려져 있다. 그림 아래의 좌우에는 별과 달의 문양이 아름답게 표현되어 있으며 파스텔톤의 부드러운 색감은 다른 그림들을 전혀 방해하지 않고 그들 스스로를 온전하게 주장한다. 여인이 착용하고 있는 장신구들은 다이아몬드, 오팔, 수정, 루비가 장식된 왕관과 목걸이로써 화려함의 극치를 달린다.
황도 십이궁(1896, 석판화, 65X48.2cm, 프라하, 무하 박물관)
세상에 살면서 누구나 느닷없이 찾아오는 행운을 한 번쯤은 꿈꾼다. “갑자기 나타난 꿈같은 사랑”, “갑자기 찾아온 엄청난 돈”, "누구나 부러워할만한 명예" 등, 행운을 꿈꾸는 건 매우 행복한 일이다. 그러나 그런 행운들은 쉽게 오지 않는다. 오래전 이야기에서 행운이라는 놈은 앞머리는 매우 많은데 비해 뒷머리는 아예 없기 때문에 앞에서 오는 행운은 잡기 쉽지만, 행운이 앞서서 가버리면 뒤의 자신은 아무리 잡으려고 해도 잡을 수 없다는 이야기처럼 말이다. 알폰스 무하의 크리스마스의 기적을 들어보면 그에게 찾아온 행운은 뉴스에서 나오는 우연한 행운 같아 보인다. 하지만 그런 운은 행운이라는 놈이 언제 오는지 앞에서 우직하게 기다렸던, 화가 그 자신의 고집이었다.
그 외 다른 분야에서
알폰스 무하의 작품들은 여러 만화가들이나 작가들이 즐겨 차용하고 오마주하고 있습니다. 이름만 들으면 다 아는 세일러문, 카드캡터 체리 등 일본의 만화, 특히 여류 만화가들은 모두라고 해도 좋을 만큼 알폰스 무하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만화나 디자인등에서 무하의 영향은 크고 지대하니 다른 그림들과 꼭 비교해서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알폰스 무하, 복권포스터, 1899>
<원령공주, 지브리 스튜디오,>
<로도스도 전기, 이즈부치 유타카>
p.s 그는 성공한 이후에 체코의 민족주의 운동에도 참여했으며 이후 아르누보 양식에서 빠질 수 없는 걸작들을 남겼습니다. 혹시 알폰스 무하의 사진들을 더 찾아보고 싶으신 분은 구글에 'alphonse maria mucha poster'를 검색해서 찾아보세요^^
혹시나 무하에 대해 알고 싶으신 분들을 위한 책은 <무하, 세기말의 보헤미안, 장우진, 출판사 미술문화>이라는 책을 강력히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