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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성문 Nov 13. 2018

수수께끼, 그리고 상상력

르네 마그리트

사람들은 하늘에 떠 있고, 방에는 거대한 사과로 차있다. 하늘에 거대한 성이 떠있고, 상반신에는 물고기와 하반신에는 사람이 그려져있다. 상상해보라. 하지만 상상을 해도 이상한 광경이다. 이런 상상들을 다른 사람에게 말해본다면, 어린아이가 아닌 이상 그의 세상은 살짝 돌아가있다고 여길 것이다. 현실에서는 막연한 상상이나 꿈보다는 확실한 숫자가 더 먹히기 때문이다. 어린왕자의 삶은 현실의 사람들에게 먹히는 이상이 아니다.




  반대로 예술가들은 어린왕자에 가깝다.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 세상에서 '탈주'하고자 하고, 세상에 대해서 뒤집어 꼬면서 일반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을 즐긴다. 그들은 세상에서 폭탄을 터트리면서 사람들이 놀라자빠지는 것을 보고 배를 뒤집으면서 웃는다. 그러한 까닭은 일반적인 사람들이 보는 세상과 그들이 보는 세상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런 탈주를 하려고 했던 대표적인 그룹이 바로 '초현실주의자'들이다. 초현실주의자들은 대표적으로 '앙드레 브르통', '조르주 바티유', '트리스탄 차라', 그리고 오늘 소개할 '르네 마그리트'가 대표적이다. 이 그룹은 당시의 거대한 충격을 안겨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들은 "초현실주의 선언"이라는 강령을 통해 꿈이 지니고 있는 잠재성을 찬양했다. 이런 정신분석학에 깊은 감명을 받은 이유는 바로 이 당시의 세계대전을 통해서 "인간이 인간을 국가주의의 이름 아래 행해진다는 모순" , "인류 문명에 대한 허무"등이 지배적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이들이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은 "예술이라는 게 다 뭐냐, 결국엔 허위의식 아니냐"라는 논리였던 것이다.


이 초현실주의자들의 강령은


•사회생활이 개인에게 강제하는 금지를 문제삼고, 
•혁명을 통한 자유의 도래를 그려보며, 
•종교적․정치적 신화를 타도하면서 
•사회의 명령에서부터 해방된 개인의 승리를 보장하려 했다. 

   초창기의 그들이 가장 중요하게 선호했던 기법은 '자동기술법' 이었다. 이 자동기술법은 이는 일체의 이성의 통제나 미적, 도덕적 선입관이 배제된 상태에서 행해지는 사고의 받아쓰기의 한 방법이었다. 이런 자동기술법은 어떻게 실행했냐면, 그냥 아무렇게나 적었다... 정말이다.


앙드레 브루통, 자동기술법으로 그린 드로잉


하지만 이런 자동기술법은 커다란 모순을 품고 있었다. 결국에는 이 자동기술법으로 순수한 무의식으로 그리고자 해도 그리는 순간(!) 그 이성(생각)이 조금이라도 들어가기에 순수한 무의식으로 그린다는 것은 모순된다는 것이다. 또한 자동기술법을 통한 회화를 그리는 게 불가능한 것도 한몫했다. 그냥 아무렇게나 드는 생각으로 그려서 그림을 완성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런 모순때문에 '자동기술법' 대신 다른 방법으로 초현실주의를 실현할 수 없을까였고, 그래서 '트롱프뢰유'라는 개념과 함께, 마그리트라는 화가가 등장한다.


마그리트, 그리고 데페이즈망



르네 마그리트는 이러한 모순적인 상황 자체를 좋아했다. 실바도르 달리나 다른 초현실주의 화가들은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불가능한 상황들을 묘사했지만, 자신은 이 모순적인 상황을 전통적인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그러나 전통적인 그림은 생각이 가득 들어간 구세대의 작품이다. 그렇기에 새로운 기법인 '데페이즈망'이라는 기법이 필요했다. '데페이즈망'이란 프랑스어로 '사람을 타향에 보내는 것'과 '환경의 변화', '낯설음'이란 뜻이다. 

르네 마그리트, <빛의 제국>, 1914. 캔버스에 유채.


작품이 보면서 "음, 뭐가 이상하지"라고 생각한다면, 마그리트의 의도에 제대로 걸렸다. 그렇게 느끼는 것도 당연하다. 이전의 바로크시대, 르네상스시대의 그림처럼 매우 자연스럽게 깔끔하게 그려져있기 때문에 자세히 보지 않는다면 모순을 느끼긴 어렵다.


작품에서는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양립을 내세우고 있다. 하늘에는 밝은 구름이 떠 있는데, 땅에는 밤의 어두움이 깔려있다. 이러한 모순을 작품에선 아주 천연덕스럽게 보여주고 있다. 그림의 모습은 현실에서는 실현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그림에서는 가능하다. 이 그림을 통해서 마그리트는 우리들에게 묻고 있다. "우리가 평상시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은 과연 옳은가?", "우리가 이성적으로 생각했던 많은 것들이 과연 의심하지 않을 만한 것인가"라는 데카르트적인 질문이다. 다른 그림들을 보자.


르네 마그리트 <피레네의 성>


이 그림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단단한 성이 하늘을 떠 있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이 그림을 통해 마그리트가 말하는 바는 이렇다. "우리가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거, 다 거짓말이야. 사실은 그런 논리들은 다 뜬구름 잡는거라고!" 라는 것이다. 마그리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이 그림을 통해 19~20세기 당시 이성의 비판에 대해 이 그림은 선고를 내린다. "이성과 논리는 죽었다"


이외에 많은 그림들이 있다. 한번 찾아보기 바란다. 이 그림이 현실에서 가능한지, 과연 이 그림은 현실적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르네 마그리트, <골콘다>, 1953년, 캔버스에 유채


르네 마그리트, 인간의 조건, 1933, 캔버스에 유채



르네 마그리트, 개인적 가치들, 1940, 캔버스에 유채



그 외 다른 분야에서


평범하지 않은 마그리트의 작품들은 다른 분야에서 영감을 주었습니다. 그의 작품들의 상당수는 영화나 광고, 그림등에서 오마주하고 사용하게 됩니다.

  

매트릭스, 스미스 요원


피레네의 성에 영감을 받은 <하울의 움직이는 성>


이외에도 우리가 몰랐던 많은 영화등에서 마그리트의 작품들은 오마주되고 패러디되고, 혹은 사랑받고 있습니다. 유쾌한 그의 그림을 보고 당신도 기존까지와는 다른 영감을 찾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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