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도로 돌아와서도 특별히 하는 일은 없었다. 그래서 시간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멍하니 집에 앉아 바다에 내려앉는 노을을 보고 있으면 마음 한켠이 서늘하고 막막했는데 그 느낌의 정체를 몰라 불안에 떨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것은 외로움이었다. 그 시절 나는 외롭다는 말을 입 밖으로 내뱉는 이들을 바보 같다 여겼기 때문에 나의 외로움을 순순히 인정하기 어려웠던 것 같다. 집에만 있는 것이 답답했지만 밖에 못 나가는 병이라도 걸렸는지 도무지 나가지 지도 않았다.
개와 함께 있을 땐 좋든 싫든 산책을 나가야 했다. 이제 보니 내가 아니라 개가 날 산책시켜 준 것이었다. 지금 필요한 건 날 산책시켜 줄 누군가였고 그 누군가와 내가 서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찾아보다가 유기견 임시보호를 떠올렸다. 보호처가 필요한 개들에게 내 빈 시간과 빈 집이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그날부터 유기견 사이트를 열심히 들락거렸다. 게시판은 임시보호처를 찾지 못해 당장 안락사의 위기에 처한 사연들로 도배되어 있었는데 그걸 보며 눈물 콧물 짜면서도 선뜻 신청하기는 망설여졌다. 임시보호하다 정들면 입양 보낼 때 마음이 아프지 않을까. 혹시 입양처가 없으면 내가 거두어야 하지 않을까. 20년 가까이 손길이 필요한 존재를 또다시 책임질 수 있을까. 막상 신청을 하려니 온갖 걱정이 떠올랐고 점점 자신이 없어졌다. 비겁하다 생각되었지만 계속 보고 있으니 마음만 괴로워져 유기견 사이트는 더 이상 들어가지 않기로 했다.
대신 펫시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베이비시터처럼 보호자가 대신 개를 봐주는 일종의 아르바이트였다. 지역 카페에 펫시터 가능하다는 글을 올리자 제법 문의가 들어왔다. 대부분 사교성이 없고 분리불안이 있어 애견호텔에 맡길 수가 없는 처지의 개들이었는데 이들은 사람이 24시간 집에 상주하고 키우는 다른 개가 없는 환경을 찾고 있었으니 나와 여러 가지로 조건이 맞아떨어졌다.
보호자들은 본인들의 개가 겁 많고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라며 맡기고 간 내내 걱정했지만 개들은 주인이 눈앞에 사라지자마자 어떻게 행동해야 낯선 집에서 이쁨 받고 편하게 지낼 수 있는지 바로 알아챘다. 개들이 잘 먹고 잘 놀고 잘 자는 걸 보면서 다행이라 생각하면서도 보호자들은 왠지 모를 배신감과 야속함을 느끼는 모습이 재밌었다.
강아지 손님들 덕분에 나는 아침저녁으로 함께 바닷가를 산책하고 같이 먹고 같이 자고 같이 뒹굴며 조금씩 마음의 안정을 찾게 되었다. 오직 동물들만이 줄 수 있는 이 따뜻하고 애틋한 마음을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싶으면서도 상실에서 오는 충격을 생각하면 감히 추천할 수가 없다.
펫 시터 1호 고객님 웅이
나의 첫 손님 내 껌딱지 웅이
24시간 달라붙어있는 웅이 덕분에 정말이지 무더운 여름을 보냈다.
겁 많고 소심한 성격이지만 집에 낯선 남자가 방문할 땐 갑자기 용맹해진다. 가족 외 인간을 싫어한다고 들었는데 나와 같이 지내야 하니 어쩔 수 없이 좋은 척 해주는 것 같았다.
시터비용은 하루에 1-2만 원 정도로 생각보다 문의가 많았고 생활에도 제법 보탬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