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영도 정착기
오랫동안 썼던 가방 끈이 해졌다. 인터넷에서 남포동 국제 시장 안에 가방 수선 장인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국제시장 (또는 깡통시장)이라 불리는 이곳은 좁은 골목골목들이 미로같이 이어진 곳이다. 낡고 해진 건물들 사이사이 낡고 해진 물건들이 가득 쌓여 있는 낡고 해진 것들을 위한 곳. 이곳에 도착하자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산더미처럼 쌓어진 구제 옷들 더미에서 마치 보물을 캐듯이 바닥에 앉아 옷들을 퍼올리고 있었다. 걸린 옷은 5천 원 바닥에 쌓인 옷은 1-2천 원으로 뒤져보면 상태 좋은 옷이나 고가 브랜드 옷을 득템 할 수도 있다고 한다. 신기하고도 이색적인 광경이었다. (그 중에서 가장 신기한 건 내가 맘에 들어 집어든 옷들은 다 만원이 넘는 다는 사실)
수선집의 정확한 위치를 몰라 골목을 헤매다 낡은 건물 지하 1층에 자리 잡은 수선집 하나를 발견했다. 좁은 계단을 내려가니 구석구석 오랜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작은 공간이 나왔고 엄청나게 두꺼운 돋보기안경을 쓴 할아버지가 재봉틀 앞에 앉아계셨고 장인의 냄새가 폴폴 나는 것이 나는 보자마자 이곳이구나를 직감했다.
그래서 가방을 냉큼 맡겼는데…!
수선을 마친 가방은 뭐랄까… 해졌지만 해지지 않은 것만 같은 묘한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어떻게 수선한 것인지 물어보니 가방끈을 새로 갈면 비용이 많이 들 테니 해져서 희끗하게 보이는 부분에 검은색 매직을 칠했다고 했다.
네....? 매직을요…?
아니, 이런 창의적인 수선법은 처음인데…?
수선비는 0원이라고 해서 대신 할아버지와 친구분들께 국제시장표 길다방커피를 대접하고 나왔다.
덧,
매직을 칠한 가방끈은 얼마 후 다시 칠이 벗겨졌다. 아예 끈을 교체하려고 백화점에 갔더니 비용이 20만 원이라고 했다. 20만 원이면 같은 가방을 새로 살 수 도 있을 것 같은데…
수선집 영감님이라면 또 다른 신박한 방법을 알고 계실 것 같아 재수선을 맡겼다. 못 쓰는 가죽재킷을 잘라 손잡이에 덧대어 감싸주었는데 손으로 한 바느질이 몹시 삐뚤빼뚤했다. 장인이 맞나 의심이 들긴 했지만 삐뚤한 바느질 모양이 귀여워서 나는 꽤 맘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