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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아주다 Jul 19. 2024

내가 만난 마녀들, 일하는 여자들

독한 마녀, 한 번이라도 불려본 자를 위한

여러분, 마녀를 만나보신 적 있으세요?

저는 정말 많이 만나봤어요.

이제는 마녀사냥보다 단어사냥을 할 때예요.

무슨 소리냐고요?


제가 만난 마녀들의 이야기, 들어보시죠!



좋은 어른, 한 스타트업의 CEO

사회에서 좋은 어른을 만난 적이 있는가? 나에게는 명확히 있었다. 상징적 의미로 ‘나의 아저씨*’라 생각할 만큼 최초의 어른이었다. 그분은 내가 재직했던 한 스타트업 대표님이었는데, 사내 콘텐츠를 만들 때는 물론이고 일상에서 직업적 의미를 찾을 때도 영감이 되는 분이었다.


당시 나는 그분 곁에서 콘텐츠 마케터로서 PR까지 맡아 일하며 브랜드 콘텐츠를 전방위로 관리하고 있었다. 사내 주요 행사가 끝난 후 뉴스 모니터링을 하며 대표님이 스타트업 담당 기자분과 진행한 인터뷰 기사를 발견했다. 기사를 자세히 읽어보니 대표님의 옛 직장생활에 대한 이야기도 언급돼 있었다.


ⓒ arazuda all rights reserved @한국 서울


아이가 있어도 해외 출장을 한 달 넘게 다녀와 창업하기 전 직장에서 ‘독한 여자’로 통했고, 그것이 후배들에게 표준이 되어 ‘마녀’가 됐다는 대표님의 자기 평가가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나는 이미 그분의 이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내가 본 대표님은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은 리더였고,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이 동해 행동으로 이어지게 하는 데 있어서는 귀재였다. 다양성에 대한 표용력과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야심도 직원으로 따라가기에 좋았다. 가장 감명 깊었던 건 ‘약자를 어떻게 도울까’에 대한 생각이 크다는 것이었다. 사실 사업 아이템도 이타심에서 포착한 서비스여서, 일반 소비자들이 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마음마저 있었다.


실제로 대표님께 “도대체 얼마나 일을 많이 하신 거예요?”하고 웃으며 기사를 언급했지만 사실 그 내용을 보고 난 최초의 생각은 “마음이 아프다”였다. 본인을 ‘독한 여자’, ‘마녀’로 칭하는 건 어떤 심정일까? 나는 대신 해명해주고 싶은 사람처럼 다른 별칭을 지어드리고 싶었다.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는 ‘좋은 어른’을 말할 때 언급되곤 합니다.



처절한 자기반성, 김지수 기자

인터뷰 기사는 보통 인터뷰이(Interviewee, 인터뷰받는 사람)에게 관심이 가기 마련이다. 그런데 오히려 인터뷰어(Interviewer, 인터뷰하는 사람) 찾아보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 상대를 열심히 비추는 인터뷰 콘텐츠임에도 인터뷰어로서 작가 색깔이 느껴질 때 그렇다.


나로 하여금 인터뷰 콘텐츠에 입문하게 한 사람은 김지수 기자님이다. 그녀가 다루는 조선일보 <김지수의 인터스텔라>에서는 질문의 깊이와 표현의 남다름을 매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박정민 배우의 인터뷰 <"나도 매일 포기하고 싶다. 그러나..." 박정민의 '버티는 마음'> 편을 보고 이런 감상이 들었다.


‘좋은 질문을 던지고
그 삶을 윤이 나게 정리해 주면
그 말들로 또 몇 년은 잘 지낼 수 있지 않을까.’


위 인터뷰에서는 박정민 배우가 인터뷰 중간에 흩뿌려놓은 강박을 김지수 기자님이 여러 차례 멀끔하게 해석해 준다. 산전수전 다 겪은 중년이, 문 앞에서 벽에 부딪힌 줄 아는 청년을 다독여 주는 것 같기도 하다. 미래에서 온 문전환대(門前歡待)인 격이다. 덕분에 박정민 배우가 자꾸만 뽀득뽀득 윤이 나는 것 같았다. 근사한 타인이 정리해 준 말로 몇 년은 더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이후로 김지수 기자님이 발행한, 혹은 출연한 콘텐츠는 챙겨보게 되었다. 도서 『자기 인생의 철학자들 』, 『자존가들』,『일터의 문장들』은 물론이고 유튜브 동영상도 때때로 챙겨봤다. 개중에는 CBS <새롭게 하소서>라는 기독교 간증 프로그램도 있었다. 신과의 관계를 통해서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풀어놓는 방송이라 그런지,  <아름다움과 눈물겨움의 최전선! 김지수 기자의 간증> 편에서는 기자님의 무척 진솔한 고백들을 들어볼 수 있었다.


ⓒ CBS <새롭게 하소서>


그중 직장 이야기는 ‘이렇게까지’ 솔직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파격적이었다.

“프로페셔널함으로 일에서는 존경받았지만 맞추기 힘든 사람으로 동료로서는 인정받지 못했다. 워커홀릭이자 나르시시스트로 살았다. 독재자 스타일의 악마(Devil) 같은 선배였다. 후배들이 기사를 못 써오면 가차 없는 혹독한 피드백을, 잘 써오면 질투와 시샘으로 며칠 묵혀 사람을 전전긍긍하게 만들었다. 영화 <여배우들>에 실제 기자로 출연할 만큼 대외적 명성은 높아졌지만, 내부 동료들에겐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사람으로 통했다”는 참회가 거침없이 삐져나왔다.


분의 고백은 너무나 사실적이어서, 실제로도 그렇게 직장 생활하셨을 것 같았다. 김지수 기자님의 콘텐츠를 좋아하지만 나도 실제 한 사무실에서 일했다면 대하기 어려운 상사였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르시시스트는 본인이 나르시시스트임을 모른다는 얘기를 줄곧 들었는데, 본인을 나르시시스트였다고 직시한 게 인상깊었다. 과거 지독하게 굴었던 날들을 함구했다면 좋지 않은 소문은 진위를 확인할 수 없는 흐릿한 풍문이 되고 대중들은 김지수 기자님을 우러러만 봤을 텐데, 그녀는 자기 뒷담화를 본인이 하듯 모든 과오를 신 앞에 꺼내놓았다. 그것은 마치 세계 2차 대전 전범국 독일의 반성처럼 끊임없어 보였다. 회개가 몇 번이고 그분을 뒤돌아보게 만들었나 보다.


사실 진짜 무서운 사람들은 ‘나는 꽤 괜찮은 사람이다. 나는 선하다’라고 찰나를 압정 박듯 명시해 버리는 자들이다. 반대로 자기 자신을 부인할수록 옳은 길에 들어설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반성하고 자성하는 인간으로 서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상수가 아닌 변수로 있을 때서야 겨우 상수로 존재할 수 있나보다.


놀랍게도 며칠 뒤 트레바리 강남점 앞에서 김지수 기자님을 뵈었다. 인터뷰에서 박정민 배우를 윤이 나게 해 준 어른처럼, 나긋한 목소리에 친절한 모습이셨다. 지독한 참회로 악마 상사나 독한 마녀의 이미지를 벗은 것 같았다. 나는 여전히 이분의 글이 좋고, 이분의 팬인 내가 좋다.



여성 리더의 장점이 집약된 A님

끝을 앞두고 시작된 '진짜 이야기'

평생직장이 없는 시대, 한 IT회사에서 브랜드 커뮤니케이션팀 소속이었던 나는 또 한 번의 퇴사를 결정했다. 그간 함께했던 동료들과 밥 약속을 하며 이 회사와의 절취선을 떼어내고 있었다. 동료들 중에는 개발팀 상사 분(편의상 이하 ‘A님’)도 있었다. 강남역의 유명한 맛집으로 약속 장소를 정하고, A님과 처음으로 일대일 식사자리를 가졌다. A님은 개발팀과의 소통에 창구가 돼 주셨던 분이라 일하며 많은 미팅을 했으나, 퇴사를 앞두고서야 ‘진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대화 중에 ‘내가 회사에서 발행한 콘텐츠에 대한 존중’을 보여주실 때는 그간 해왔던 일에 온전한 이해를 받는 것 같아 그렁그렁 눈물이 났다. 이미 회사에서 비즈니스 아티클 제작을 중단하기로 한 터라 강하게 주장하진 않았지만 ‘콘텐츠의 효과는 계속함으로 배가된다'는 생각은 변치 않았던 터였다. 팀이 계속 축소되고 있는 것도 마음이 쓰였다. 그 와중에 A님이 콘텐츠와 브랜드 철학의 필요성을 언급해 주신 것이다. 누군가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걸 알아준다는 것... 자꾸만 목이 메어 음식은 먹지도 않고 애꿎은 국자만 비비적거렸다.


당신이 팀장이던 시절

그 자리에선 A님이 거쳐간 회사에 대해서도 들어볼 기회가 있었다. 본인의 커리어 지도, 워킹맘이 되면서 꺾였던 마음, 팀장으로 재직할 때의 일화 등이 밥상에 함께 올랐다. A님은 20-30대 때 사장님, 회장님으로 올라가는 보고가 너무 재밌을 만큼 일욕심이 많았고, 그만큼 승진도 빨랐다고 했다. 팀장으로서 거느리고 있는 팀도 있었다고.

그런데 결혼과 동시에 이어진 임신과 출산으로 일에만 집중할 수 없는 시기가 왔고, 커리어에서 승승장구는 강제로 멈추게 되셨다고 했다. 그렇게 ‘되지 않는 시간’을 견디다 보니 팀장이었던 시절 팀원들에게 야박하게 굴었던 것들이 생각난다고 하셨다. 속도를 내느라 푸시만 하고 팀원들을 정서적으로 보듬는 일을 잘하지 못했다며 자조했다. “내가 미친년이지”하고, 남에게는 못할 격한 비난을 본인에게는 쉽게 하기도 하셨다. ‘마녀’라는 워딩을 쓰진 않았지만 본인을 ‘마녀’라고 칭하는 사람들과 풍기는 분위기는 비슷했다. 일을 너무 열심히 하느라 다른 사람들을 챙기지 못했다는 회한이었다.


A님의 첫인상과 끝인상

그런데 이상했다. 나에게 A님은 일찍이 그런 분이 아니었기에 그랬다.


얼른 A님의 첫인상을 전해드렸다.

"마스크 낀 얼굴에 눈만 보였는데, 뭔가 여성 리더의 아우라가 느껴졌어요. 첫 미팅 끝나고 ‘입사한 지 얼마 안 됐는데 일이 많아 힘들죠?' 라는 안부를 물어주신 일로, 어려운 이미지가 쑥 사라졌어요. 당시 수습 기간이라 여유가 하나도 없었는데 잠깐이나마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일하며 감사했던 부분도 전해드렸다.

"제가 텍스트에 민감함이 있어서 보이는 게 많은데, 제 의견을 다 받아서 홈페이지에 반영해 주셔서 감사했어요. 최종본이 아닌 텍스트가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비문이 캡처 돼서 보도자료로 나갈 때마다 마음에 걸렸거든요. 비문과 통일성이 안 보이는 사람들은 제가 유난스럽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서 말하기가 어려웠는데, A님과 같이 한 작업은 더 고칠 일 없이 만족스러웠어요. 제 전문성을 받아주신 거잖아요. 감사해요."


문득 떠오른 첫 사수

이렇게 A님이 과거의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해주시는 동안 문득 떠오른 사람이 있었다. 사회초년생 때 만난 30대 여자 사수였다. 어렸을 땐 나의 부족함만 찾느라 몰랐지만 지금은 그 사수가 나를 함부로 대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이제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그 사수를 미워할 필요가 없게 됐다.


그 사수도 지금 직장 어딘가에서, 퇴사를 앞둔 동료 앞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땐 내가 너무 독했어. 내가 미쳤!


아니면 아이등원시키고 엄마들과 대화하며 이렇게 자책했을지도!

“대학 갓 졸업한 한테 담배 뿜으며 훈계하는 건 아니었다. 메신저에 이모티콘(^^) 좀 썼다고 회사에 친구 만들러 오는 거 아니라는 말까지 했다. 내가 너무했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이제는 그 사수의 이름뿐만 아니라 미움도 내 마음속에서 지울 수 있게 됐다. A님은 의도치 않게 나의 과거와 현재를 모두 다독여 주셨다, 어쩌면 미래까지도.


ⓒ arazuda all rights reserved @한국 서울


퇴사의 풍경

며칠 뒤 퇴사일이 다가왔다. 사무실을 돌며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사실 으레껏 하는 인사가 대부분인 시간이다. 워낙 오고 가고, 만나고 헤어지는 사람이 많지 않은가. 그러나 몇몇은, 그리고 A님은 진심으로 아쉬워하는 표정과 몸짓으로 내게 인사를 해주셨다. 그렇게 사무실을 나와 팀 회식을 한 후 마지막 퇴근을 했다. 집에 도착할 즈음 버스에서 A님의 문자를 받았다. “arazuda 작가님의 새로운 출발을 위하여!”라는 메시지와 함께 디퓨저 선물이 도착해 있었다. 퇴사는 곧 ‘같은 목적을 가졌던 사람들과의 이별이 아닌가!’ 하여, 다소 꿀꿀한 밤이었는데 그걸 보고 아쉬움이 다 날아가는 것 같았다. 앞날에 대한 진심 어린 응원을 받고 나니, 내일 아침도 씩씩하게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미래가 기대 돼요"

퇴사 후 몇 개월 뒤 A님이 안부 문자를 보내주셨다. 나는 얼른 자리를 만들어 A님을 뵈러 갔다. A님은 여전히 같은 온도로 나를 응원해 주셨다.


“다른 사람은 계속 똑같은 일을 할 것 같은데, arazuda는 다를 것 같아요. 미래가 기대 돼요. 그래서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요.


나도 여쭤봤다.

“혹시 다시 팀원들을 꾸려 일하는 리더가 되고 싶진 않으세요?”

대답은 한사코 “아니”였다. A님을 포함해 여성 리더의 장점인 섬세함을 재차 말씀드렸지만 “이상한 여자도 많아요(웃음)”라고 하셨다.


사실 의도가 있는 질문이었다. 아니, 질문이었지만 확신이었다. 나는 A님이 이미 어렸던 자신을 갱신하셨다고 생각한다. 다시 팀장이 되신다면 일과 사람, 모두 잡으실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생겨버렸다. A님은 동료를 돌보는 사람으로 변모했고, 본인이 대접받고 싶은 만큼 퇴사자인 내게 마음 써주셨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나는 얼마나 많은 마음씀을 받고 혼자 상심할 시간을 줄였나, 다 헤아릴 수 없다. 나 역시도 이분이 다시 사람들을 아우루실 날이 기대 됐다.



21세기, 새롭게 쓰는 ‘마녀’의 의미

나는 30대 여성을 무서워하는 사회초년 시절을 겪었다. 이후 여러 회사에서 멋진 여성 리더를 많이 만났고 덕분에 40대멋있게 살 수 있겠다는 기대를 채워갔다. 그러나 이분들은 자의든 타의든 꼭 ‘마녀’, ‘악마’, ‘미친년’이라는 별명을 거쳐봤다고 했다. 내가 마녀를 좋아하나? 이쯤 되면 나도 ‘마녀’ 소리 한 번 듣지 못한 게 아쉬울 정도다.


프로페셔널함리더 기질로 주목을 받는 것이 마녀의 삶이던가?

지난 4월, 어도어 민희진 대표님이 하이브 관련 기자회견으로 큰 화제가 됐다. 열심히 일하고 최고의 성과를 냈을 뿐인데 ‘마녀’가 됐다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 뉴스1. 어도어 민희진 대표


난 기자회견을 보며 오히려 민희진 대표님이 순수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순진하다'가 아니라 '순수하다'는 느낌). 사람이 순수하면 마음에 안 드는 것도, 역겨운 것도 많아진다. 지켜야 할 게 있는데 지지 않고 진짜 지키기로 결심했을 때, 사람이 거칠어질 수도 있겠단 생각도 든다. 이때 투사(鬪士)로 만드는 상황은 보지 않고, 투사가 된 사람만 본다면 순수한 사람은 언제고 마녀로 불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뉴진스(NewJeans)’라는 그룹을 세상에 데뷔시키고, 대중들에게 아름다운 창작물을 선보일 수 있었던  순수가 아니면 뭘까? 예술을 사랑하고 사업까지 연계할 줄 아는, 이런 다능인과 일하게 된다면 개인적으로 무척 영광일 것 같다. 매일의 일이 오르막길로 가는 에스컬레이터이고, 내가 하는 일이 대중에게 영감을 주니 월급 외 다른 보람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모든 사람은 장단이 있고 미디어로  인물이니 그 중 일부만 본 것에 불과하지만, 오늘의 내 관점은 그렇다.)


대의에 찬 여성 리더들에게 ‘마녀’라는 호칭을 부르는 걸 멈출 수 없다면 아무래도 ‘마녀’라는 단어에 새로운 해석을 붙여야 할 것 같다. 세상에 호감인 마녀가 너무 많다. 21세기 '마녀'는 사람들에게 길을 제시하고 영감이 되고, 친한 친구를 찾아갈 겨를도 없이 현장에서 즉각적인 위로를 준다. 사변적인 것보다는 본질에 집중하고, 능력도 출중해서 성과는 물론 시대를 풍미하기까지 한다. 내가 만난 마녀들, 일하는 여자들은 그랬다.


악인으로 비유되는 마녀에는 반대말도 없다. 그러나 내가 참을 수 없이 ‘악인’으로 여기는 사람은 표리부동(表裏不同)한 사람들이다. 앞과 뒤의 차이를 숨기지 못하는 사람들. 그래서 참회나 자기반성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확실히 마녀가 아니다. 스스로에게 ‘마녀’, ‘악마’, ‘미친년’이라고 이름 붙여 가슴 아파할 일이 전무할테니 말이다.


그러니까 마녀,

한 번이라도 불려본 자를 위해

단어사냥을 할 때다.




[작가의 말]

이 글은 A님께 받은 응원과 위로를 저도 되돌려 드리고 싶은 마음에서 출발했습니다. 글이 길죠? 그러나 이런 개연성이 필요할 정도로  사람의 선입견을 되돌려 놓는 일이 제게 중요한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스크롤의 길이가 고마운 마음의 크기라 생각해주시면 좋겠습니다.


ⓒ arazuda all rights reserved @한국 인천


“A님, 선물은 잘 받았습니다.
저는 이미 A님이 멋진 사회 선배님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디 자신에 대한 선입견을 푸시길 바라요.
함께 일하는 동안 손 내밀어 주셔서 늘 감사했습니다!”




▶ '알아주다'의 다른 이야기

청춘은 많은 시도를 통해 '처음'을 지워가는 과정입니다. 첫 해외 여행기가, 제 글쓰기의 시작이었음을 고백합니다.


20대를 갈무리한 '아프리카 여행 에세이'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 번 보러 오세요! 당신과 공명하고 싶습니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세요? 저는 이런 사람이 되고 싶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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