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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아주다 Nov 26. 2021

[오디오] 입술이, 가장 작은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그런 사람을 안다

강원도 홍천에서 만난 임신한 고양이,

왠지 수다스런 인간의 이야기를 조용히 들어줄 것만 같습니다.

▶ 읽기가 부담스러울 땐 들어보세요. 내레이션은 더 부담스러워요(찡긋 ^.~)


나는 그런 사람을 안다


정말 하고 싶은 말

가슴에 맺힌 말

가장 관심이 많은 말들 대신


공연히

날씨 얘기,

먹는 것 얘기,

사야 할 것 얘기,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얘기로

삶의 변두리에 있는 이야기를 늘어놓는 사람을 안다.


남을 탓하기 전에

괜히 자신을 탓하거나

다른 사람한테 내리꽂는 얘기를

자기반성으로 되돌려 받는 일.

해야 할 말들이 산더미여서

다른 상황들로, 답답한 마음이 새어져 나오는 사람을 안다.


쏟아져 버릴까 꾹꾹 누른 말들...

침묵 속에 숨바꼭질하는

말할 수 없는 사연들은

몇 해가 지나서야 겨우 말하거나

몇 곱절 회오리쳐 아주 다른 이야기로 피어난다.


피우지 못한 꽃 얘기를 한다거나

시원하게 내린 비 얘기를.

어제 읽은 책이라며 사진을 찍거나

지나간 사연을, 노래를 공유하는 일.

택시 기사님과 나눈 만담.

동물들이 멍멍 거리거나 야옹 거리는,

짹짹거리고 귀뚤귀뚤하는 소리를

지금 최고의 관심인 듯 말하는 이.


말의 파장을 아는 이.

누가 들어도 무해하며

뭐라 말해도 온건한

할 말 대신하는 다른 할 말

말들을 골라내다

당당해진 말들이

별로 남지 않은 사람들


하루 중심에 있었던

가장 속상한 이야기들은 제쳐두고

다른 말들로 변죽을 올리는,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가장 작은 사람이 되고 싶다.




[작가의 말]

대학생 때 단편영화 작업에 참여한 적이 있어요. 스태프들은 그 영화의 주연 배우님과 SNS 친구이기도 했는데, 그 배우님은 꽤 자기 의견을 많이 펼치는 분이었어요. 삶에서 느낀 문제의식을 영화에 녹이거나 정치적인 견해를 밝히는 데도 거리낌이 없었죠. 그때는 탄핵으로 세상이 아주 시끄러울 때였거든요. 몇 년 후 꾸준한 열정과 준비된 자에게만 온다는 그 운으로 그 분은 세상 사람들이 더 많이 알아주는 배우가 됐어요. 이름난 사람이 되고 나니 그 분의 SNS의 기조가 조금 달라졌어요. 여느 연예인들처럼 몇 장의 사진과 10자도 되지 않는 텍스트, 한정된 이모티콘으로 일상을 전하시더군요. 보는 눈이 많으니까요.


굳이 연예인을 들여다보지 않더라도 공적인 자리에서나 SNS에서 말을 가지치기했던 경험은, 누구나 있을 거예요.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그 사람'을 아는 이유는

제가 몹시 지치고, 몹시 늦게 집에 가고, 몹시 몸 달아하던 날에

얼마나 많은 딴소리를 했는지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속에서 곪아있는 이야기를 털어놓는 사람들에겐

고해를 받는 신부님처럼

속앓이를 경청하고 들은 걸 함구해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해요.

세상엔 자기 얘기가 부족해서

남의 근황에 열을 올리거나

쉽게 말을 옮기는 사람들이

너무 많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언제나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가장 작은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작은 사람이 되면 말이 새어나가는 통로인

입술도 조그맣지 않을까요?


겨우 꺼낸 신음을 크게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작게 만드는, 별일 아닌 것으로 만드는 사람이요.

수다를 약으로 처방하는, 자격증이 없는 의사요.

누군가의 무거운 숨을 덜어내 스스로를 이해시키고

그것이 그 사람의 살아갈 힘이 되게 하고픈 까닭입니다.


ⓒ arazuda all rights reserved @강원도 춘천

입술이 조그만, 작은 사람들



▶ 제가 '되고 싶은 사람'은요.

작사가, 인터뷰어, 카피라이터, 시인, 작가, 콘텐츠 크리에이터, 포토그래퍼처럼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고 싶고 또... 반가운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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