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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이 Aug 17. 2017

황홀한 석양의 섬 코타 키나발루 3

#69. 모녀가 함께한 첫 해외여행

코타 키나발루에 도착한 이틀째 아침이 밝았다. 역시나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커튼부터 걷어본다. 어제 보다는 구름이 조금 꼈지만 그래도 맑은 날씨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이따 오후에 진행될 선셋비치에서 볼 선셋과 반딧불이 투어가 걱정이 되었다. 그래도 흐린 날씨가 아니므로 이따 저녁때를 기약하기로 했다. 



조금은 늦은 오전 씻고 조식을 먹은 뒤 리조트를 산책하기로 하였다. 모든 식구가 아침에 출근을 하기에 아침에 북적북적 이는 것이 당연했는데 이런 여유로움은 굉장히 오랜만이었다. 여유롭게 내려갔더니 조식 식당은 여유롭지 않았다. 늦은 조식을 먹기 위해 사람들이 바글바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식당 직원의 안내를 받기 위해 조금 기다렸더니 직원의 깜짝 인사 '안녕하세요' 정말 놀라워서 나도 모르게 한국말로 인사를 했다. 그렇게 안내받아 들어간 식당에서 조식을 담아와 먹으면서 사람 구경을 시작했다. 확실히 휴양지라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중국인들부터 영어를 사용하는 다양한 외국인들까지. 모든 가족들에 특징이 다 달랐다. '오직 내가 먹을 것만 먹고 나가겠다'부터 임신한 아내를 위해 뭘 먹을지 물어보는 다정한 남편, 아이들 챙기느라 바쁜 엄마들까지. 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바쁘게 빠르게 먹어야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가이드의 말대로 '세계에서 가장 느린 민족'인 말레이시아에 와서 그런 것인지 '세계에서 가장 빠름'을 추구하는 한국인인 우리 가족조차도 빠르게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여유롭게 조식을 먹은 후 리조트 구경을 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흐린 날씨는 아니지만 구름이 많아 해가 많지 않을 거라 예상했던 나의 판단은 잘못된 것이었다. 선글라스는 필수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으며 리조트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해변가에 있는 선베드는 낮에는 해를 가려주며 해변을 바라볼 수 있다는 사실이 매력이었다. 

해변을 바라보며

한참을 앉아서 바라보다 우리가 쓰는 가든 윙이 아닌 오션 윙 쪽으로 가보기로 했다. 오션 윙으로 가는 길은 가든 윙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조용하면서 뭔가 프라이빗한 느낌이 더 강한 숙소였다. 숙소 앞에 가든 윙보다는 조금 작은 수영장이 있었고 근처 사람들이 쉴 수 있는 정자와 놀 수 있는 대형 체스판과 체스 말이 있었다.  가든 윙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오션윙쪽으로 가는길에 있는 레몬그라스 밭(?)
오션윙으로 가는 길은 뭔가 다르다...
오션윙 수영장쪽에서 바라본 해변



다시 우리가 묵고 있는 숙소로 돌아가는 길 해가 점점 뜨거워져 회랑을 통해 가기로 했다. 

가든윙으로 가는 회랑

회랑을 통해 지나가며 본 풍경은 여유로움 그 자체였다. 직원들도 휴양하러 온 사람들도 어느 누구도 바빠서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사람이 없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말레이시아 전통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이 연주를 하고 있었고 사람들은 여전히 조식을 먹기 위해 줄을 서있었다. 위층으로 올라가 기프트샵을 구경하고 방으로 돌아가 수영장을 이용할 준비를 했다.

무슨 악기일지 궁금....



선베드 두 개에 자리를 잡고 신나게 수영장에서 놀고 나니 배가 고파져서 숙소로 올라가서 씻고 집에서 가져간 컵라면을 먹기로 했다. 그리고 오후에 있을 맹그로브 숲 투어와 선셋비치에서 보는 선셋, 그리고 제일 중요한 나나 문 투어(반딧불이 투어)를 위해 긴팔, 긴바지 그리고 모기를 방지하기 위한 모기퇴치 팔찌를 착용했다. 모기퇴치 팔찌는 아로마향이 나는 것으로 혹시나 반딧불이가 죽는 사태를 방지할 수 있는 것으로 착용했다. 먼저 맹그로브 숲으로 가서 보트를 타고 돌아다니며 유명한 긴 코 원숭이를 찾으러 돌아다녔다. 하지만 일반 원숭이만 볼 수 있었을 뿐 긴 코 원숭이를 보는 행운은 없었다. 대신 잘 보이지 않는다던 키나발루 산을 볼 수 있었다. 영혼이 산다고 믿는 키나발루산은 어느 산보다도 신비로워 보이긴 했다.

이제 선셋보러 가자
멀리 보이는 키나발루 산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버스를 타고 5분 거리에 있는 선셋 비치로 향했다. 다만 구름이 너무 많아 예쁜 선셋을 볼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도착한 선셋! 그런데 웬걸 이 곳은 소를 막 풀어놓고 키운다. 그래도 소들이 집에 잘 들어간다고 한다. 문제는 이들이 도로 위를 점령하고 있어 차들이 다니기 쉽지 않고 해변가는 소똥들 천지라 잘 보고 걸어 다녀야 한다. 그렇게 어렵게 걸어서 도착한 해변가. 하지만 구름이 많아도 너무 많다. 예쁜 노을을 보기는 틀렸구나 싶었다. 그래도 노을이 완전히 질 때까지 버티고 서서 보면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역시 하늘은 우릴 버리지 않으셨다. 갑자기 멋있는 선셋이 보이기 시작했고 우리 모두는 급히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선셋이 나오기 시작했다!
다들 사진 찍기 바쁘다...


달이며 노을이며 아주 죽여준다!



그렇게 멋있는 선셋을 본 후 안으로 이동하여 저녁 식사를 하고 이제 진짜 중요한 반딧불이 투어를 하러 맹그로브 숲으로 돌아갔다. 반딧불이를 보기 위해서는 핸드폰 카메라는 절대 꺼내서는 안 된다. 반딧불이를 불러들이는데 핸드폰 불빛은 최악이라고 한다. 또한 반딧불이를 불러들이는 기술을 가진 사람을 방길 맨(? 적어둔다고 적어놨는데 정확하지가 않네요ㅜㅜ)이라 하는데 이 사람이 요구하는대로 그리고 호응을 많이 보여주면 더 많은 반딧불이를 볼 수 있다. 그렇게 반딧불이를 보기 위해 배를 타고 출발. 야맹증이 있는 나로서는 어둠은 쥐약이다. 긴장 속에서 불빛이 사라지고 맹그로브 숲 안으로 들어가자 정말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수많은 별들과 은하수를 볼 수 있었다. 그 순간부터는 어둠 속이라는 사실을 잊고 즐기기 시작했다. 정말 그렇게 많은 별을 보기 위해서는 한국에서도 산속 깊은 곳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이 곳은 조금만 떨어진 곳으로 와도 별천지였다. 그렇게 하늘에 감탄하고 있을 때 방길 맨의 반딧불이 유혹이 시작되었고 방길 맨의 요청대로 '하나, 둘, 셋'을 외쳤고 그와 동시에 우리 모두는 신세계를 경험했다. 반딧불이들이 일제히 불을 밝혔고 배 쪽으로 날아들었다. 말 그대로 '한여름의 크리스마스'였다. 그 이후로 <'mari mari -> 마리마리'는 '어서어서' 또는 '어서 오세요'라는 뜻이라고 한다. > 마리마리를 외치며 반딧불이를 볼 수 있었다. 배에 다가오는 반딧불이를 잡아 볼 수도 있었는데 정말 신기했다 주먹 안에서 불을 밝히는 반딧불이가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반딧불이를 보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신나는 일이었다. 돌아다니면서 보다 보니 어떤 것이 반딧불이인지 별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보는 내내 시원함과 신기함 그리고 왠지 모를 감동이 밀려왔고 '한여름에 크리스마스는 이런 느낌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신기한 경험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가이드가 얘기하기를 코타 키나발루는 적도 근처의 섬이라 맑은 하늘도 이렇게 많은 별을 보기도 쉽지 않다고 했다. 심지어 우리가 가기 전에 있던 팀은 비가 엄청 많이 와서 거의 내내 숙소에만 있었다고 한다. 그 얘길 듣고 나니 우리가 얼마나 복 받은 여행을 하는 것인지 새삼 감사했다. 그리고 가이드가 본 책 중 노마 할머니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그 말들 중 하나가 가슴에 새겨졌다. 

'지금 현재를 살아라!' 현재를 산다는 것은 쉬운 것 같으면서도 어려운 일이다. 지금 현재를 온전히 산다는 것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한테는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숙소에 도착했고 감동이 가시기 전 숙소에서 마지막 밤을 한국에서 가져간 소주와 과자들로 마무리를 했다. 



오늘 하루 또한 여유로움에 감사했고 여유로움을 즐겼으며 여유로운 생활을 했다. 비록 맹그로브 숲에서 유명한 긴 코 원숭이는 못 봤어도 못 볼뻔한 멋있는 석양을 보고 즐겼으며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과 반딧불이로 인해 뜻하지 않게 한여름의 크리스마스를 즐겼다. 비록 반딧불이와 밤하늘의 별 사진을 찍진 못했으나 그 멋있고 신기한 풍경은 내 기억 속엔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 

역시 잘 모르는 곳을 여행한다는 것은 두렵고 무서운 일이지만 설렘과 기쁨 그리고 뜻하지 않은 경험까지 평소엔 하기 힘든 것들을 경험해볼 수 있는 어느 누구에게나 추천해주고 싶은 중요한 활동인 것 같다. 90세의 노마 할머니가 얘기한 대로 지금 현재를 산다면 여행하면서 느끼는 것들 경험하는 것들을 평상시에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확실히 여행은 단순한 관광이다.
여행은 삶에 관한 상념들이 계속해서 일어나는
깊고 영구적인 변화이다.
- 미리엄 비어드(Miriam Bear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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