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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잇아웃 정PD Nov 10. 2019

완도 신흥사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곳

첫 템플스테이를 할 곳으로 정한 사찰은 완도에 있는 신흥사이다. 앞 글에도 적은 것처럼 '바다를 볼 수 있는 곳'이란 말에 혹해 결정했다. 어차피 사찰은 산에 있을 테니, 바다를 볼 수 있으면 산과 바다를 한꺼번에 경험할 수 있지 않을까. 결과적으로, 잘 선택했다.



추천

1) 산과 바다를 함께 경험하고 싶은 분

2)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싶은 분

3) 완도 및 주변 섬들 관광을 함께 계획하는 분


특징

1) 오션뷰가 가능한 숙소 (단체방)

2) 크지 않은 규모

3) 시내와 가까운 거리



무엇인가 알아볼 시간적 여유가 많지 않아, 전날까지 어디를 갈지 정확히 정하지 못했었다. 아침에 일어나 신흥사에 가기로 최종 결정하고, 가는 방법을 찾았다. 고속터미널에서 하루에 4번 완도로 가는 버스가 있었고, 터미널에서 신흥사까지 멀지 않았다. 자리가 많이 남아 있어, 따로 예매하지 않고 대충 가방만 싸서 출발했다. 가방에는 속옷과 반바지/긴바지 하나씩, 양말, 수건, 그리고 명상에 대한 책 몇 권을 넣었다.  


버스는 한 번 쉬었는데, '정안알밤 휴게소'라는 이름의 휴게소였다. 크진 않았지만, 밤이 유명한 곳인지 밤과 관련된 제품들이 있었다. 그중 '공주 밤빵'을 사 먹어봤는데, 맛있었다. 겉표면은 바삭하지만 너무 딱딱하지 않았고, 방금 만든 빵 속 앙금은 따뜻하면서도 밤 특유의 향이 잘 살아있었다. 호두과자 중에서도 아주 맛있는 것들과 비교해 더 맛있으면 맛있었지, 덜하지 않았다. 혹시 지나가게 된다면 함 드셔 보시길.


정안알밤휴게소의 공주밤빵


4시간 반 정도 걸려 완도 터미널에 도착했다. 터미널에서 신흥사까지는 택시로 5분 정도 걸린다고 되어 있었으나, 완도 구경도 하고 늦은 점심도 먹을 겸 걸어가기로 했다. 태풍 '링링'이 오고 있어 날씨가 흐렸고 비도 오락가락했지만, 새로운 곳에 도착한 것 만으로 즐거워하며 점심식사를 하러 출발했다. 


터미널 근처 오래된 가게들과 재래시장을 지나며 먼 곳으로 왔다는 걸 실감했다. 첫 번째 목적지는 내려오는 동안 찾아본 백반집과 순두부집. 찾아갈 때 까지는 즐겁게 걸었지만, 도착한 곳들은 모두 영업을 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식당이 오후 2~5시 사이 영업을 하지 않으니, 식사시간이 아니면 꼭 전화해보고 가시기를. 더운 여름에 가는 곳마다 영업은 안 하고, 바닷가에 비까지 내려 습해 힘들었다. 근처 영업하는 식당 아무 곳이나 들어가 빨리 먹고 신흥사로 출발했다. 


시내에서 신흥사 가는 길은 멀지는 않았지만, 계속 오르막길이었다. 보슬비 정도였던 비도 굵어졌다. 신흥사 바로 앞은 꽤 경사도 있는 길이어서, 도착하고 나니 땀과 비로 흠뻑 젖었다. 그렇게 첫 템플스테이를 경험할 완도 신흥사에 도착했다. 




신흥사는 그렇게 큰 사찰은 아니다. 보통 사찰의 입구를 구성하는 일주문, 천왕문 등도 없고, 건물도 4,5개 정도. 그나마 대웅전은 공사 중이었다. 상주하시는 분은 스님 3분 포함 5분 정도. 3박 4일 지내는 동안 템플스테이를 하러 온 사람도 나 혼자였다. 하지만 덕분에, 템플스테이가 뭔지도 잘 모르고 갔음에도 큰 어려움 없이 많은 도움을 받으며 잘 지낼 수 있었다. 


완도 신흥사에서 바라본 완도 전경

신흥사에서 가장 기대했던 건 바다와 산을 함께 경험하는 것이었다. 개인실은 숙소에서 바다가 보이지는 않아, 그 부분은 조금 아쉬웠다. 여러명이 함께 간다면 꼭 바다가 보이는 숙소에 묵으시길. 바다와 산이 한꺼번에 보이면서 조용히 앉아있을 수 있는 장소를 계속 찾았고, 한쪽 구석에 딱 맞는 장소가 있었다. 그 곳은 새소리, 벌레소리, 파도소리를 함께 들을 수 있고, 멀리 완도 앞바다와 많은 섬들, 완도 시내와 주변을 둘러싼 녹음 우거진 나무들을 시원한 바람과 함께 경험할 수 있는 곳이었다. 마치 하늘에 떠 완도와 주변 광경을 굽어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완도가 어떤 곳인지 오감을 통해 느끼게 해주는, 완도에서 반드시 가봐야 할 곳이다. 다시 완도를 가게 된다면, 그 장소 때문이다.


완도 전경


빼어난 풍광과 함께, 인간적인 따뜻함도 느낄 수 있었다. 며칠 동안 혼자 있는게 불쌍해 보이셨던지, 식당에 계신 보살님께서 간식을 챙겨 주셨다. 괜찮다고 했다가, 배가 좀 고픈 느낌이 있어 조금만 부탁드려요 했더니, 간단히 챙겨주신다고 주신 게 정말 한가득이었다. 한 명이 아니라 한가족 간식으로도 넘칠 것 같은 양이어서, 감사함을 남기기 위해 사진을 찍고, 과일은 다시 돌려드렸다. 과자는 두고두고 조금씩 소중한 간식으로 사용했다.


보살님이 챙겨주신 1인분(?) 간식


신흥사에 머무는 동안, 태풍 '링링'이 지나갔다. 목포 옆을 지나간다고 했는데, 당일 아침 예불을 위해 일어나니 바람 소리가 온 산을 뒤덮고 있었다. 도시에서 경험하는 태풍과 산에서 경험하는 태풍은 그 실감의 정도가 달랐다. 온 산의 나무들이 흔들려 서로 부딪히며 내는 소리는  도시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경천동지'가 무엇인지 조금은 실감했다. 온 산이 흔들리는 듯한 소리와 함께 아침 예불을 마치니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가 오전 내내 완도를 뒤덮었고, 오후부턴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아침 안개에 뒤덮인 완도


템플스테이 기간 동안 (보통 저녁식사 이후) 스님들과 '차담' 시간을 가졌다. 차를 마시며 스님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다. 정말 엉뚱하게도, 이번 템플스테이에서 느낀 것 중 하나는 '나도 이제 나이가 들었구나'라는 사실이었다. 어린 시절 몇 번 봤었던 내 기억 속 스님은 아주 나이가 지긋하시고 굉장한 위엄이 있는, 나와는 아주 먼 곳에 계신 분들이었다. 하지만 템플스테이 기간 스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스님들도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절을 방문하는 여러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안타깝게도, 이제는 그렇게 많은 나이 차이가 나지는 않는 듯 보였다.


저녁 완도 전경
파노라마로 찍은 완도 전경


3일간의 템플스테이를 마치고 해남 미황사로 이동했다. 일주일 스케줄이었기에 한 곳에서만 지내는 건 아쉽다는 생각이 들어 주변의 다른 사찰도 찾아보았고, 마침 멀지 않은 해남에  '템플스테이 추천' 이란 키워드로 검색하면 많이 나온 곳 중 하나인 '미황사'가 있어 가기로 했다. 거리가 멀지는 않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해 이동하기는 만만치 않았는데, 주지스님께서 갈 일이 있으시다며 차로 태워주셨다. 덕분에 반나절은 족히 걸릴 곳을 한 시간도 안되어 도착했고, 차에서 완도와 종교에 관한 많은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마지막까지 좋은 기억으로 남은 생애 첫 템플스테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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