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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근 Jan 05. 2018

[북반구 대륙 횡단]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 D+38

2017.06.24 날씨 더움 / 시카고 총 이동 거리 : 1,875.32 km

여전히 밝은 달이 떠 있었다. 전날 일기예보에서 오늘 기온이 38도까지 오른다고 했기 때문에 선선한 새벽에 일찍 시작했다. 모든 것이 낯설었다. 이 세계가 잠들어 있는 느낌이었다. 바람 한 점 없는 새벽은 보기 드문 고요를 만들어냈다. 국도로 빠져나가기 위해 마을로 들어섰을 때는, 작은 집에서 불을 켜기 위해 들어 올리는 스위치 소리까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고요한 정적이었다. 무엇 때문인지 괜스레 기분이 좋았다. 페달은 가벼웠고, 규칙적인 음을 만들어내는 체인 소리도 경쾌했다. 그렇게 드문드문 이어진 가로등 불빛을 하나씩 따라갔다.


앞서가던 차가 비상등을 켜고 우리 앞에 멈추어 섰다. 처음에는 경찰인 줄 알았다. 사실, 후미등에 배터리가 없어 켜질 못했는데 덕분에 뒤따라오던 차가 몇 번이나 상향 등을 켜 우리를 확인하는 것을 느끼던 중이었다. 혹시 경찰이라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하며 속도를 줄여 천천히 다가갔다. 하지만, 차량의 비상등이 너무 밝아 차에서 내린 사람의 모습을 구분할 수가 없었다. 무엇 때문에 우릴 기다리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솔직히 우리에게 관심 갖지 않기를 바랐다. 경찰이든 우리의 돈을 노리는 강도든 그게 뭐가 됐던 지금은 피곤한 대상이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무언가를 들고 흔드는 흐릿한 실루엣이 보였다. 손전등의 방향을 돌려 비춰보니 한 아주머니 한 분이 손을 흔들며 멈추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앞서가던 성웅이는 그냥 지나가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이었는지 그냥 지나갔고 곧 뒤따라가던 나는 멈추어 섰다.

“안녕하세요. 무슨 일이에요?”

“너 이 조끼 입어”

아주머니가 형광 안전 조끼를 건넸다. 세탁한 지 얼마가 되지 않았는지 달달한 섬유 유연제 냄새가 풍겨 왔다.

“네..? 저 주신다고요?”

“뒤에서 오는데 너희가 잘 보이지 않더라고. 조끼를 입으면 차가 너희를 잘 볼 수 있을 거야.”

안 그래도 오는 길에 조끼를 사서 올 걸 하고 아쉬움이 섞인 말을 성웅이에게 내뱉었던 참이었다. 정말 예상하지 못한 도움이었다.

“아주머니, 정말 고맙습니다!”

고맙다는 말로는 마음을 전달하기가 부족해 안아드리자 호쾌하게 웃으며 어서 가라고 손을 휘저었다. 그녀는 나의 아침을 멋지게 만들어 주었다. 생면부지의 누군가로부터 베풂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은 삭막한 현실 속에 여전히 사랑이 남아있다는 실증과도 같았다. 그렇게 시카고로 가는 길은 그녀 덕분에 모처럼 생기가 넘쳤다. 

94번 고속도로 옆 하이킹 트레일 길을 따라 올라갔다. 직선으로 뻗어있는 국도로 가는 것이 좀 더 빠른 길이었지만 낮에는 되도록 국도를 피해서 달렸다. 여기에 개인적인 이유 세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 이유는 사이드미러로 뒤차를 신경 쓰며 달리기에는 체력소모가 너무 컸고 심리적인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두 번째 이유는 뜨거운 햇볕을 여과 없이 받아내야 했기 때문이다. 지나가는 차가 만들어내는 열기와 태양의 열기, 그리고 아스팔트에서 지긋이 올라오는 지열이 합쳐져 견디기가 어려웠다. 더위를 많이 타는 성웅이는 더욱 힘들어했다. 숲으로 달리면 우거진 나무가 그늘막이 되어주어 한결 쾌적하게 라이딩할 수 있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서에서 동으로 불어오는 맞바람을 트레일 길에서는 최소화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바람 또한 주변의 나무가 효과적으로 막아주어 라이딩에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다. 이러한 이유로 국도를 피해 다녔고 결과적으로 우리는 시간적인 부분에서 늘 쫓겼다. 하지만, 그것은 최선의 선택이었고 우리의 몸과 정신을 지킬 수 있는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우리는 점심을 길가에서 대충 먹고 어제저녁에 산 종합 비타민을 입에 털어 넣었다. 그동안 채소를 많이 먹으려고 애썼지만, 결과적으론 라면 국물과 설익은 밥으로 끼니를 때우는 일이 많아 비타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약국과 편의점에서 간편하게 파는 비타민이 있어 우리는 7불이라는 거금을 들여 두 팩을 샀다. 열네 알이 들어있는 거대한 비타민 팩이었기 때문에 세 번에 나누어 삼키며 어제 미처 보지 못한 성분을 읽어봤다. 비타민D, 비타민C, 오메가 3의 등등 심지어, 어떤 알약은 홍삼 성분도 들어있었다. 그렇게 위 속에 비타민 열네 알을 쑤셔 넣으니 속에서 신물이 올라왔다. 코팅된 비릿한 약 냄새와 오메가 3 특유의 냄새가 함께 올라오는 듯했다. 속이 턱턱 막혀 1리터 물 한 병을 다 비우고 나서야 다시 출발할 수 있었다. 

9시간 동안 110km 가까이 달리니 멀찍이 떨어져 있는 시카고의 큰 빌딩이 눈에 점점 들어오기 시작했다. 비록, 눈에만 가까워 보였지 2시간을 더 달려야 했지만 호스텔로 가는 길에 미시간 호를 보니 속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미시간 호는 세계에서 가장 넓은 호수인데 러시아의 바이칼 호와 느낌이 사뭇 달랐다. 바이칼 호는 거친 날것 그대로의 모습인데 반해, 여기는 잘 정돈된 호수 주변을 따라 공원이 형성되어 있었고 휴양지로 개발이 되어 있었다.


우린 계획했던 대로 시카고에서 며칠간 쉬며 도시를 구경하기로 했다.



[북반구 횡단: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 D+39  


2017.06.25 날씨 맑음 / 시카고 

총 이동 거리 : 1875.32km

어젯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곯아떨어졌는데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할 정도로 서로가 피곤했었다. 생각해보니 비타민 팩에 있던 알약 성분끼리 충돌이 일어났었던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 이곳저곳에 검색을 해보니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일찍 잠든 탓에 아침 일찍 일어났고 식사 후에 곧바로 도시를 돌아보기로 했다.

개인적으로 시카고의 야경을 찍어보고 싶었다. 어제 호스텔에 들어섰을 때 거대하게 걸려있던 시카고 다운타운의 사진이 그렇게 멋져 보일 수가 없었다. 어디서 한 번쯤은 본 야경 같아 기억을 더듬어보니 예전에 일했던 게스트 하우스에 다운타운의 사진이 걸려있었다. 빗선 모양으로 특이하게 잘린 건물이 유독 기억에 남았었다. 어디서 찍을 수 있나 검색해보니 12km 정도 떨어진 다운타운 근처에 있는 천문대에 위치해 있는 롱비치였다.

도시를 둘러볼 겸 자전거를 타고 나가 미시간 호수 주변을 따라갔다. 주말이라 그런지 많은 사람이 수영을 즐기고 있었다. 먼 바다에서는 요트 여러 대가 떠 있고 선상 파티를 즐기는 듯했다. 요트에서 흘러나오는 흥겨운 노랫소리와 웃음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호숫가를 지나 밀레니엄 파크로 들어서니 야구장과 농구장 그리고 축구장도 넓게 만들어져 있었다. 많은 사람이 운동을 즐기고 있었고 곳곳에 만들어진 나무 그늘에서 휴식을 취하는 사람도 많았다.

축구장 옆을 지나가다 울타리 옆에 멈춰 축구하는 사람을 지켜보았다. 뭇 남성이 그렇듯 저 친구들의 실력을 가늠해보면서 말이다. 몇 분을 지켜보고 있으니 그 친구들이 나를 의식하기 시작했다. 나는 손을 흔들며 다가갔다.


“나도 축구하고 싶은데 같이 할 수...”

“물론이지! 어서 와!”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 친구들은 흔쾌히 환영해주었다. Mike와 Thomas도 서로가 오늘 처음 만났다고 했다. 결국, 오늘 처음 만난 사람끼리 축구를 하기 시작했다. 골키퍼를 선호하는 Thomas 덕분에 Mike와 둘이서 발을 맞추며 공을 찰 수 있었다. 오랜만에 뛰니 조금 힘들었지만 기분이 정말 상쾌했다. 똑같은 땀을 흘리지만 자전거를 탈 때와는 사뭇 다른 기분이었다. 어쨌든, 땀을 흘리는 행위에서 축구보다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은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대학교에 들어와서 축구를 할 시간이 점점 적어졌지만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매일 축구를 하며 하루를 보냈었다. 그 당시를 고백하자면 사실, 수능을 보는 주에도 축구를 했다. 주변에서는 분명 미쳤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만큼 축구를 좋아했다. 그렇게 공을 Mike와 차며 간단히 서로 통성명을 하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래서, 넌 여기서 공부하고 있는 거야?”

“아니, 난 여행 중이야 자전거로”


그는 웃음을 터트리며 물었다.

“자전거로? 어떻게 자전거로 여행을 한다는 거야!?”


“자전거로 횡단 중이야. 뉴욕에서 왔어”

“세상에! 미쳤어! 진짜 용감해!”


그는 Thomas에게 뛰어가며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자신이 금방 들었던 얘기를 뱉어냈다. Thomas가 놀라며 다가오더니 구체적으로 물었다. 하나씩 설명해주며 내가 왜 이 여행을 하고 있는지 답 해주었다. 그때 화장실에 갔던 성웅이가 돌아오는 것이 보였다. 

성웅이에게 손을 흔들며 오라고 손짓을 하며 말했다.


“저기 오는 내 친구랑 같이 시작했어”

“니들 진짜 멋있다. 사촌 형도 자전거로 남미를 종단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는데 너희들 연락처 알려줘도 될까?”


“물론이지. 언제든지 연락하라고 해”


페이스북을 알려주며 그동안 여행했던 사진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축구를 이어나갔다. 둘 다 공부를 하기 위해 나이지리아에서 그리고 멕시코에서 중학생 때 건너왔다고 했다. Mike는 시카고 생활이 너무 만족스럽다는 말과 함께 한 가지 당부를 곁들였다.


다운타운까지는 괜찮지만, 너무 남쪽으로 그리고 링컨 파크 기준으로 북쪽으로 가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을 했다. 하루에 총기사고로만 13명씩 사망자가 발생하는 곳이 시카고이며 미국 50개 주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로 불린다고 했다. 워낙 치안이 좋은 한국에서 살다 보니 와 닿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생각했다. 여기에 와서부터 사이렌 소리를 몇 시간 주기로 계속 들었기 때문이다. 혹시나 해서 여기가 배트맨에 나오는 고담시티의 모티브냐고 물으니 맞다고 했다. 다운타운을 연결하는 다리가 어쩐지 눈에 익어 보이는 이유가 있었다.


네 명이서 공을 차고 있으니 축구 동호회 사람이 몰려왔다. 심판과 부심도 준비돼 있는 팀이었다. 함께 축구경기를 하지 않겠냐는 말에 기쁜 마음으로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멤버를 둘러보니 여성도 두세 명 있었다. 속으로 의외라고 생각했다. 보통 남자와 경기를 하기에는 신체적인 열세가 있을 수밖에 없는데 상대적으로 달리기가 빨라야 하는 포지션에 있었고 거친 몸싸움이 필요한 포지션에서도 뛰고 있었다. 함께 뛰어보니 성별의 큰 차이를 느끼기 힘들었다. 몸싸움과 기술이 남자와 큰 차이가 없었고 오히려 더 정교한 축구를 하는 듯 보였다.


두어 시간 동안 경기를 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들을 보고 같이 경기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먼저 들었다. 그것은 나의 선입견이었고, 내 머릿속은 세상이 만들어 낸 이미지로 여전히 가득 차 있었다. 더욱이 모두가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상식조차도 그저 미디어와 교육이 만들어 낸 한낱 편견에 불과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내가 가진 하나의 선입견이 완전히 부서지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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