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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연 Feb 12. 2016

그림으로 보는 이방인 뫼르소

부서진 흑백의 태양, 호세 무뇨스의 『일러스트 이방인』

흑백의 일러스트로만 그려진 『이방인』은 작열하는 태양처럼 강렬하게 시야를 파고들었다. 줄글로 읽어냈던 책 속의 장면들이 팝업북처럼 펼쳐진 듯한 느낌이랄까. 거친 터치에 더해진 군더더기 없는 붓맵시와 비어있는 듯 채워진 여백의 공간이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흑백의 색감을 선명하게 자아내고 있었다.  


『일러스트 이방인』(알베르 카뮈, 호세 무뇨스 그림, 김화영 옮김, 책세상 ,2013)



까뮈의 얼굴이 연상되는 뫼르소의 표정에선 무심함 뒤에 숨겨진 무기력한 일상이 그대로 배어나왔다. 특히 눈동자 없이 감긴 듯 그려진 뫼르소의 눈은 그의 내면이 그대로 투영된 듯했다. 갑작스런 부고로 휴가를 요청하는 그를 탐탁찮게 보는 사장에게 “그건(어머니의 죽음) 내 탓이 아닙니다”라고 말하는, 까발림에 가까울 정도의 솔직함이나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진솔할 대로 진솔한 감정은 닫혀있던 그의 눈에 일축돼있었다.


그러나 아랍인이 단도를 뽑아 태양에 비춰 겨눴던 그 때, 뫼르소는 빛의 칼날을 향해 마침내 눈꺼풀을 들어올린다. 힘겹게 치켜 뜬 눈동자에선 전에 보이지 않았던 복잡한 표정들이 굵은 땀방울의 명암과 함께 드리워져 있다. 그리곤 내리쬐는 태양을 직면한 채 어리석은 발걸음을 내딛기에 이른다.



모든 것이 기우뚱한 것은 바로 그때였다. 바다는 무겁고 뜨거운 바람을 실어왔다. 온 하늘이 활짝 열리며 불을 비 내리듯 쏟아붓는 것만 같았다. 나는 온몸이 긴장해 손으로 피스톨을 힘 있게 그러쥐었다. 방아쇠가 당겨졌고, 권총 자루의 매끈한 배가 만져졌다. 그리하여 짤막하고도 요란스러운 소리와 함께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나는 땀과 태양을 떨쳐버렸다. (…) 그것은 마치, 내가 불행의 문을 두드리는 네 번의 짧은 노크 소리와도 같은 것이었다. (p.77~78)


이후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시선은 적의나 조소의 빛으로 일그러져 있거나 차갑게 정면을 향해있다. 이제야 표정이 드러나기 시작한 뫼르소의 얼굴엔 그의 미래를 예고하는 듯 짙은 음영이 주름과 미간에 두드러져 있다. 이야기에 맞춰 호흡하듯 내달리는 강렬한 일러스트와  텍스트들의 비선형적인 배열은 뫼르소의 생을 압박함과 동시에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누군가의 생을 좌지우지하는 부조리함을 노골적으로 담아낸다.


그렇다면 살인의 이유를 태양 때문이었다고 답한 뫼르소의 행동에 대한 재고의 여지는 없는 것일까.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았단 이유로 그를 부도덕한 사람이라고 치부할 수 있는가. 신부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단 사실만으로 그는 이단자인가. 뫼르소는 극히 즉물적이고 순간적인 현재적 삶을 살아왔지만 거짓 감정을 거부하는 극한의 진솔함으로 사람들의 위선적 허위를 철저히 배격한다. 



나는 보기엔 맨주먹 같을지 모르나, 나에게는 확신이 있어. 나 자신에 대한, 모든 것에 대한 확신. 그보다 더한 확신이 있어. 그렇다, 나한테는 이것밖에 없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이 진리를, 그것이 나를 붙들고 놓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굳게 붙들고 있다. 내 생각은 옳았고, 지금도 옳고, 또 언제나 옳다. 나는 이렇게 살았으나, 또 다르게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런 것은 하고 저런 것은 하지 않았다. 어떤 일은 하지 않았는데 다른 일은 했다. 그러니 어떻단 말인가? 나는 마치 저 순간을, 내가 정당하다는 것이 증명될 저 신새벽을 여태껏 기다리며 살아온 것만 같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중요한 것은 없다. 나는 그 까닭을 알고 있다. 그 역시 그 까닭을 알고 있는 것이다.(p.137)


이방인처럼 살아온 그는 기실 그 누구보다도 자신의 실존과 정면으로 부딪치며 살아온 것일지도 모른다. 다만 어떤 상황을 맞닥뜨림에 있어 그에 맞는, 이미 사회적으로 관습화된, 도의적 반응이나 당연시되는 감정에 반응하지 않았을 뿐이다. 마땅히 해야 하는 겉치레나 예의를 가장한 가식 따위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자신의 진솔한 실존에 충실했던 삶의 결과가 죽음이라는 결말은 역시나 섬뜩하게 다가왔다. 과연 뫼르소는 진심으로 ‘세계의 정다운 무관심’에 마음을 연 것일까. 그 알쏭달쏭한 긍정은 여전히 물음표로 남아있다.


어찌됐건 호세 무뇨스의 붓끝으로 새롭게 탄생한 『일러스트 이방인』은 남다른 감회와 설렘을 안겨주었다. 각각의 개별 작품에 가까운, 완성도 높은 그림들은 원작에선 맛볼 수 없는 색다른 질감과 깊은 풍미를 선사한다. 큰 사이즈에서 기인한 곳곳의 하얀 여백과 어우러진 문단들의 자유로운 배치도 재밌고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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