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 것과 새 것 사이, 영화 ‘우리도 사랑일까’
사랑은 다양한 빛깔을 가진다. 그 안에는 로맨틱한 핑크나 열정의 레드뿐 아니라 질투의 옐로우나 휴식의 그린, 냉정의 블루와 잿빛의 그레이도 드리워져 있다. 각각의 색깔이 폭죽처럼 터지고 섞이고 엮어나가다 보면 마침내 모든 빛깔은 서서히 제 색을 잃어버린다. 반짝이던 색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바래고 희미해져 하나의 색으로 제 빛깔을 굳혀간다. 그것은 바로 ‘익숙함’이란 색이다.
마고는 남편 루와의 결혼 생활 속에서 일상에 바래진 사랑과 마주한다. 잦아드는 열정이 사랑의 사그라짐처럼 느껴졌던 마고는 희미해져가는 붉은 색에 발을 동동 구르며 조금이나마 남아있는 빛을 붙잡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무엇으로도 강렬했던 사랑의 첫 설렘과 열정을 대체할 순 없었다. 모든 새 것은 언젠가는 헌 것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녔기 때문이다.
예고 없이 찾아온 마고의 또 다른 사랑은 사랑의 ‘첫’을 새롭게 되찾아주는 듯했다. 그 안에는 핑크빛 로맨스도, 뜨거운 사랑의 열정도 각각의 색을 찬란하게 빛내고 있었던 까닭이다. 마고는 30년 뒤로 미뤄놓은 대니얼과의 약속을 더는 미루지 못하고 새로운 사랑이라고 믿었던 대니얼에게로 자신의 사랑을 옮겨간다.
하지만 새롭게 찾아 나선 사랑도 서서히 각각의 색을 잃어버리기 시작한다. 일상을 꾸려나감에 있어 언제까지고 열정적일 수 있는 사랑은 존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랑이 익숙한 빛으로 녹아드는 순간 그 사랑은 집안에 놓여지는 또 하나의 정물처럼 두 사람의 관계를 이끌어간다. 무심한 듯 자연스러운, 편한 듯 익숙한 사랑이라는 일상의 풍경이 끼니처럼 차려지는 것이다.
마고는 결국 알게 됐을까. 그녀의 사랑은 ‘우리’보단 ‘사랑의 첫’이란 감정을 되찾고 싶었던 자신의 마음이었다는 것을. 사랑의 색엔 붉은 빛만 있는 게 아니란 사실을. 샤워할 때 머리에 쏟아지던 루의 찬물세례처럼 사랑은 최선을 다해 서로를 살며 함께 세월을 지나쳐가야 함을. 그게 루이든 대니얼이든, 결국 그 빛바랜 사랑을 채워가는 건 서로의 몫으로 남겨진다는 사실을.
마지막 홀로 놀이기구에 오른 마고의 얼굴 위로 수영장 샤워실의 벗은 몸들이 겹쳐졌다. 육체가 스러지듯 젊고 강렬했던 사랑이 단조롭고 미적지근하게 바랠 수밖에 없는 건 필연적이다. 새 것은 이내 헌 것이 되지만, 지금의 헌 것은 사실 새 것이었다. 발랄하게 울려 퍼지는 ‘Vidio Kill The Radio Star’와 지긋한 ‘Take This Waltz’의 음색이 아름답고도 쓸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