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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랑 Oct 04. 2022

말을 아끼게 된 이유

언제부턴가 내 얘기를 '잘' 하지 않게 되었다


상대와 친해졌다고 생각해서 마음 편하게 내 얘기를 한 적이 더러 있었다.

'이 정도 친해졌으면 내 마음에 공감해 주겠지, 내 얘기를 들어주겠지.'라고 순진하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만의 착각이었다는 걸 몇 번의 경험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1. 사실은 나에 대해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언젠가 내 힘듦을 토로했더니 한 지인은 내가 어떻게 버티고 있는지,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 알려고 하지도 않고 무작정 내 힘듦에 대해 무시했다.

일어나지도 않을 일에 대한 걱정과 막상 해보지도 않고서 섣불리 판단한다는 둥, 그 정도는 누구나가 다 힘들어하는 거라고 나의 걱정과 힘듦은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가볍게 대꾸했다.


그렇게 말하는 표정도 그리 좋지 않았다. 굉장히 내가 답답한 사람이라는 듯이, 거의 화를 내다시피 짜증 섞인 투로 하는 말이었다.

그런 사람 앞에 내가 할 말은 더 없었다. 생각지 못한 반응에 당시엔 놀랐다가 시간이 지나고 난 뒤에는 '그 지인은 나에 대해 뭘 안다고 그렇게 말하지?'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친해졌다고 믿고 내 속마음을 얘기했는데 반응이 저러니 그 사람에게 실망감이 들기도 했다.


돌이켜 보니 그 사람은 사실 나에 대해 알았던 시간도 길지 않았고, 내가 살아온 환경, 내가 현재 어떻게 살고 있는지 잘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걸 알면서도 그때는 내가 그 사람의 성격은 좀 온화한 사람이라고 잘못 생각했던 것 같다.

적어도, 나를 잘 모르면 그게 어떻게 된 건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물어보고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일 거라고 혼자 기대를 했던 것 같다.



2. 내 속마음이 누군가에겐 약점으로 보일 수 있다


또 한 번의 경우에서는 내 사정과 상황을 너무 빨리 밝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프라인 교육을 듣는 곳에서 만난 친구였는데 그 강좌를 수강하는 사람들 중 나와 동갑은 그 친구뿐이라 처음부터 급속도로 친해졌다.

빨리 친해진 만큼 이런저런 얘기를 다 했는데 반갑고도 친근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내 얘기를 너무 많이 했던 것 같다.


어느 순간부터 그 친구에게 내가 뭔가를 물을 때마다 그 친구는 대답을 건성으로 하거나 귀찮아하는 투로 얘기하거나 내가 답답하다는 듯이 얘기하곤 했다.

처음에는 그저 기분 탓인가 보다 했는데 그런 일이 반복되자, 나만의 기분 탓만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기분 탓이 아니란 생각이 들자, 그 친구랑은 대화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다.

무슨 말을 했다가 또 짜증 섞인 말투를 들을까 걱정이 들자, 그 친구에게 말을 걸지 않게 됐다.

그랬더니 그 친구도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그 친구가 나의 사정과 환경, 상황을 두고 나란 사람을 판단하고 나를 본인보다 낮게 취급을 해서 그랬는지는 잘 모른다. 

계속 만날 사이였다면 솔직히 터놓고 얘기했겠지만, 그 친구랑은 교육 기간에만 잠깐 만난 사이였기에 서로 거리를 두는 게 전부였다. 

그 친구가 나를 무시해서였는지, 내 사정이 약점으로 보여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게 맞든 아니든,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받는 대화를 할 수 없는 사람이란 것은 확실했다.



3. 좋은 일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는 관계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살다 보면 좋은 일들이 생길 때가 있다. 내가 꾸준히 노력하거나 오래 해왔던 일이 좋은 성과를 가져오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 친한 친구나 지인에게 밝혔을 때, 그 사람이 나의 잘된 일을 얼마나 진심으로 축하해 줄 수 있을까?


물론 모든 사람이 가식으로 축하해 준다거나 질투한다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괜히 질투를 유발할 거리를 만든다든지, 서로에게 실망을 주는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 되도록 '내 자랑'을 하는 일은 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친구나 지인이 잘된 일이 있을 때 진심으로 축하해 주려 노력하고 마음을 다해 응원하려고 노력한다.

그 노력은 '안 되는데 억지로 마음을 쓴다'가 아니라, 누군가의 성장과 발전, 좋은 일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기 위해 나의 마음 또한 성장하고 나 자신을 더 사랑하기 위해 스스로 노력한다는 뜻이다.




몇 번의 경험을 통해, 언젠가부터 내가 서로 완전히 신뢰관계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는 사람들 앞에서 말을 아끼게 되었다.

나는 원래도 낯선 사람들과 금방 친해지는 외향적인 성격과는 거리가 멀어 기본적으로 '내성적'이 탑재되어 있는데 거기에 말수까지 더 줄어드니 어떤 이가 보면 정말 '핵노잼'인 사람일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말을 되도록 아끼자고 결심한 것을 바꿀 생각은 없다. 

완전히 신뢰한다고 생각했던 관계에서도 말실수로 인해 틀어지는 게 인간관계다. 말은 그만큼 조심해서 해야 하고 그건 기본 중의 기본이다.

내가 말을 한마디 더 하는 것보다 상대의 말을 한마디라도 더 듣는 것이 훨씬 이롭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것이 관계를 더 부드럽게 하고, 상대에게 나란 사람을 편한 사람으로, 다시 만나고픈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듯하다. 


어떤 사람과 친해지려고 애써 억지로 대화를 하다가 말실수를 할 수도 있다. 괜히 쓸데없는 말을 해서 긁어 부스럼을 만들 수도 있고 말이다.

책도 많이 읽고, 아는 것이 많아서 달변가가 되는 것도 좋지만 그렇게 되기가 힘들거나 어렵다면 차라리 진중하고 신중한 사람이 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사람의 귀가 두 개고 입은 하나인 이유를 이제는 깊이 공감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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