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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랑 Oct 03. 2022

'질문'하지 않았더니 생기는 일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13회의 미란과 은희를 보고

"나는 너를 믿는데,  너는 나를 안 믿는구나." 


방송이 끝난 지는 좀 되었지만,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를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그중 한 장면에 대해서 글로 얘기해 보고 싶은 부분이 있어서 정리해 보려 한다.




관계에 있어서 상대방의 언행이 이해가 안 되고 납득이 안 되고 자신에게 상처를 주는데도 싫은데 좋은 척, 무슨 일이 있는데 없는 척, 안 괜찮은데 괜찮은 척을 할 때가 있다.


직장생활에서는 보통 그건 감정을 외면한 '척'이 필수적이고 때로는 이성적이라고 판단할 때가 많지만 일반적인 친구 관계나, 가족 관계에서 그런 감정은 다른 생각을 하게 한다.


그런 가까운 관계에서는 그런 '척'들이 괜찮지 않다. 내 마음의 소리를 외면하고 그냥 사람 좋은 척 웃어넘기고 했던 일이 나중에는 곪아서, 쌓여서, 반복돼서, 불필요한 상처와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하니까 말이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당장 싫은데도 넘어가고 자신의 감정을 지워버린다. 상대방의 언행에 대해 '왜'라는 이유 한 번을 묻지 않고 자기 멋대로 상황을 해석해 오해를 만들거나 오해였는지도 알지도 못한 채 그대로 자기 무덤을 쌓기도 한다.


그렇게 되면 그 관계는 어떻게 될까.

 



"네가 나를 믿으면 왜 그렇게 생각하냐, 이유가 뭐냐, 물으면 돼."


미란은 자신을 믿지 않던 오랜 단짝 친구 은희에게 말한다. 물으면 된다고. 질문하면 된다고. 

그랬다면 미란은 은희에게 사실을 더 간편히 설명해 줄 수 있었는데 은희는 질문하지 않고 자기 멋대로 판단하고 사실이 아닌 것을 믿어 버린다.


때로는 눈으로 봤어도 그 앞뒤 상황을 모르면 눈앞의 사실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 은희는 눈앞의 한 장면만 보고 앞뒤 상황을 알려고 하지 않고 멋대로 판단해 버리는 우를 범한다.


은희는 극 중 의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친구지만 사실은 남들에게 자신이 의리 있게 보이기 위해 미란이 싫으면서 좋은 척, 안 괜찮은데 괜찮은 척하며 미란을 살뜰히 챙긴다. 겉으로는.

그러면서, 미란에게 자신이 상처받은 일들을 상처받았다고, 미란에게 드러내지 않고 그때 왜 그랬냐고 미란에게 한 번을 묻지 않고 고스란히 혼자 앙금을 품으며 오랜 세월을 '마음에 묻어만 둔다.'


은희가 진정 미란을 친구로 생각했다면, 미란을 진짜 의리 있게 대하고 싶었다면 한 번쯤은 미란에게 '왜'라고 물었어야 했다. 적어도 한 번은.


미란에게도 나름의 사정이 있었다. 미란이 다 잘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은희가 질문해서 미란에게 답변을 들었다면, 둘이 불필요한 오해로 몇십 년의 우정을 갉아먹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누구나 사정이 없는 사람은 없다. 다만, 사정을 '알려고 하는 사람'과 모르는 척 '피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다 지난 일 덮어 두자게. 다 늙어 얘기하면 뭐 할 거라? 괜히 구차하고 치사해지지."


은희는 미란에게 다 지난 일 얘기해서 뭐 하냐고 구차하고 치사해진다고 말하지만 정말 그럴까? 


나는 그 관계의 농도와 깊이는 결국 상대에 대한 '관심'이 결정한다고 생각한다. 상대에게 무언가를 묻는 '질문'은 결국 관심에서 시작된다. 

상대의 생각을, 행동을, 말에 대한 질문을 하는 것, 궁금하지 않고 상대가 뭘 하든 관심이 없으면, 잠깐 보고 말 사람이라면 그 사람에게 굳이 '왜'라는 질문을 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얘기하지 않고 묻지 않고 '척'만 하고 지내는 얄팍한 관계가 더 이기적이고 구차하고 치사한 관계라고 생각한다.

딱 그 정도의 손익을 따져가며 더 깊은 관심을 갖지 않고 서로를 궁금해하지 않으면서 필요에 따라 만나는 관계.


사이가 좋은 가족과 친구 관계일수록 잘 싸운다는 말이 있다. 포인트는 그냥 싸우는 게 아니라 '잘' 싸우는 관계라는 게 중요하다. 나 이렇게 생각했다고, 나 이렇게 상처받았다고 터놓고 얘기하면서 왜 그랬냐고 묻고 따지고 할 수 있는 싸움 말이다.


그럴 수 있는 관계에서는 그렇게 대화가 주고받고가 되는 관계에서는

적어도, '폭발해서 한 번에 극단적으로 파탄 나지' 않고

적어도, '앙금이 남아 더 큰 오해와 더 큰 상처를 남기지' 않는다.




한편으론 지난 나의 사람들과의 관계가 생각났다.

내가 떠난 사람들. 나를 떠난 사람들. 내가 오해를 했든, 내가 실망을 했든, 상처를 받았든 나한테서 상처를 받았든, 실망을 했든, 오해를 했든


모두 다 '질문 없는 관계'였다는 걸.

모두 다 겉으로는 '한 번도 상처받지 않았다는 듯 괜찮은 척' 했다는 것을.


나도, 그 사람들도 그렇게 질문할 관심도, 애정도, 용기도, 미래도 없는, 딱 거기까지의 인연이었으리라 생각하니 씁쓸하면서도 무거워졌다.


내가 이렇게 관계에 있어 소심해지고, 깨질까 두려워 괜찮은 척하고, 아프지 않은 척하고 그렇게 척만 하다 '질문할 용기'조차 갖지 못하고 '질문할 관심'도 지워 버리면서 사람들과의 관계를 끊어 냈던 게 언제부터였는지.

그 정도의 감정 소모조차 하기 싫고, 여유가 없다는 이유로 관계를 끊는 것이 더 편하다 여긴 건 아니었을까.


그중 몇몇 사람들에게는 내가 '왜 그랬냐고' 한마디만 했더라면, 그 사람들이 내게 '왜 그랬냐고' 한마디만 했더라면, 그럴 용기와 관심이 있었다면, 내가 잃은 관계의 절반은 적어도 다른 결말을 맺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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