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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스름빛 Sep 04. 2016

[우리는 다시 만나고 있다]

창비400기념시선집

시집을 오랜만에 샀다. 창비300호 기념시선집도 샀었는데 어느새 400호 기념시선집이 출간되었다. 이런 기념시집은 종합선물세트 같다. 읽으며 마음에 드는 시를 몇 개 추려 보았다. 언제나 그랬듯 시보다 시인의 말이 더 인상적이기도 하다.


무허가

                                     -송경동


용산4가 철거민 참사 현장

점거해 들어온 빈집 구석에서 시를 쓴다

생각해보니 작년엔 가리봉동 기륭전자 앞

노상 컨테이너에서 무단으로 살았다

구로역 CC카메라탑을 점거하고

광장에서 불법 텐트 생활을 하기도 했다

국회의사당을 두 번이나 점거해

퇴거 불응으로 끌려나오기도 했다

전엔 대추리 빈집을 털어 살기도 했지


허가받을 수 없는 인생


그런 내 삶처럼

내 시도 영영 무허가였으면 좋겠다

누구도 들어와 살 수 있는

이 세상 전체가

무허가였으면 좋겠다


시인의 말 : 우연히 오게 되었지만...... 이 세상은 참 아름다운 곳이다.


은유가 뛰어나진 않지만 가슴이 뜨거워지는 시가 있다.

도종환 선생님의 시가 그러하듯 송경동 시인의 시도 마찬가지다.

"이 세상 전체가 무허가"라면 우리는 마구 어디든 갈 수 있을 텐데.

시인의 말처럼 나 역시 "이 세상은 참 아름다운 곳"이라고 되뇌일 수 있었을 텐데.


오필리아

                       -진은영


모든 사랑은 익사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흰 종이배처럼

붉은 물 위를 흘러가며

나는 그것을 배웠다


해변으로 떠내려간 심장들이

뜨거운 모래 위에 부드러운 점자로 솟아난다

어느 눈먼 자의 젖은 손가락을 위해


텅 빈 강바닥을 서성이던 사람들이

내게로 와서 먹을 것을 사간다

유리와 밀을 절반씩 빻아 만든 빵


시인의 말 : 소중한 것을 전부 팔아서 하찮은 것을 마련하는 어리석은 습관을 여전히 버리지 못했다.


시인의 말처럼

"소중한 것을 전부 팔아서 하찮은 것을 마련하는 어리석은 습관"을 가진 사람은 시인뿐이 아니다.

무엇을 잃어버린 것인지 헤아려 보면 놀랄 때가 있다.

이제는 돌아올 수 없는 것들을 그리워하진 않으리.

다만 어리석은 지난 날을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랄 뿐.

"모든 사랑은 익사의 기억"만을 가지지는 않길 바라며.



싸락눈

                  -엄원태


고독은 그늘을 통해 말한다.


어쩌면 그늘에만 겨우 존재하는 것이 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늘로 인해 생은 깊어갈 것이다. 고통과 결핍이 그늘의 지층이며 습곡이다.


밤새 눈이 왔다.

말없이 말할 줄 아는, 싸락눈이었다.


시인의 말 : 이 어둠이, 새벽이 동트기 직전의 미명(未明)이기를 바란다.


"그늘에만 겨우 존재하는 것이 생"일지라도

"그늘로 인해 생은 깊어갈 것"이니 절망만 하지는 말자.

더욱이 "이 어둠이" "미명"일지로 모르니까.

동트기 직전이 가장 어둡다는데 이것이 가장 어둡겠거니, 했지만 기대는 늘 배신당한다.

더 어두울 수 있다고 가르쳐준다.

어쩌면 삶은 그렇게 어두움의 연속이자 반복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서 그 언젠가의 새벽을 기다리는 '희망'까지 모두 꺾을 수는 없으리라.



밤의 공벌레

                     -이제니


온 힘을 다해 살아내지 않기로 했다. 꽃이 지는 것을 보고 알았다. 기절하지 않으려고 눈동자를 깜빡였다. 한번으로 부족해 두번 깜빡였다. 너는 긴 인생을 틀린 맞춤법으로 살았고 그건 너의 잘못이 아니었다. 이 삶이 시계라면 나는 바늘을 부러뜨릴 테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처럼 하염없이 얼음을 지칠 테다. 지칠 때까지 지치고 밥을 먹을 테다. 한그릇이 부족하면 두그릇을 먹는다. 해가 떠오른다. 꽃이 핀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면 울고 싶은 기분이 든다. 누구에게도 말 못하고 주기도문을 외우는 음독의 시간. 지금이 몇 시일까. 왕만두 찐빵이 먹고 싶다. 나발을 불며 지나가는 밤의 공벌레야. 여전히 너도 그늘이구나. 온 힘을 다해 살아내지 않기로 했다. 죽었던 나무가 살아나는 것을 보고 알았다. 틀린 맞춤법을 호주머니에서 꺼냈다. 부끄러움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시인의 말 : 나는 그 개의 이름을 모른다. 매듭이 이름인 것처럼 목에 걸려 있다.


"온 힘을 다해 살아내지 않으려" 해도 "틀린 맞춤법"으로 써 놓은 "부끄러움"을 잊을 수는 없다.

"죽었던 나무가 살아나는 것"을 보았으니. 여전히 모두 잊을 수는 없는 법이다.

설사 그것이 "너의 잘못은 아니었"대도. "부끄러움"은 남는 법이니까.

그러니 이제 힘을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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